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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동체 20110607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도시라고 한다. 인류의 문화에 어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도시가 담당했다고 하는 이 말의 전제에는, 도시는 자연적으로 태동된 게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며 또한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도시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잉여생산물의 교환설이 유력하다. 자기 집에서 경작하고 재배한 생산물의 양이 자급자족 수치를 넘게 되자, 다른 필요한 물자와 바꿀 목적으로 조성된 장소가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都市)라는 우리 말이나 중국의 도시인 성시(城市)라는 단어에 공유되어 있는 시(市)라는 글자가 도시의 물물교환적 성격의 중요함을 나타낸다.

도시의 역사는 약 일만 년으로 추정하는데, 이스라엘의 제리코(BC 9000년 경)나 터기의 챠탈휘크(BC 7000년 경)에서 발굴된 공동 주거지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이다. 이 일만 년의 도시역사 중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 인류의 10%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도시집중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오늘날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2050년이 되면 4분의 3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만큼 도시는 매력적이다. 도시에는 수 많은 기회와 동기가 있으며 욕망과 기억이 교차하고 성공과 좌절이 순간마다 존재하여 전혀 새로운 삶을 살수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고도 했다. 또한 도시는 생물체와 같다. 항상 성장과 퇴조를 거듭하면서 변화하는 존재여서, 도시의 완성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몰락을 통해 완성된다고 했던가.

도시를 의미하는 영어에는 시티(city)와 어반(urban)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같이 도시를 뜻하지만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 그리스어 civtas에 근거하는 시티는 일종의 사회적 성격이 강한 반면, urbs에 어원을 가진 어반은 그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물리적 환경을 의미한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적 목적을 공유하는 어떤 사회와 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적 구성이 합쳐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는 시티는 소프트웨어고 어반은 하드웨어다. 그런데 이 건물들의 집합인 어반은 만들기가 쉬운 반면에, 시티는 대단히 어렵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각개의 특출한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규칙에 합의하고 공유해야 하는데, 이를 이루기가 여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종시가 그 좋은 예다. 아직도 여러 문제가 잔존해 있지만, 세종시가 왜 그렇게 뜨거운 이슈가 되어 국론을 사분오열 시켰을까. 정파적 이해의 논리가 다분히 있긴 하여도, 아마도 우리의 도시 만들기 역사상 최초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종시의 인구 40만은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리 큰 숫자가 못 된다. 50만 명의 분당을 불과 4,5년 만에 만들었으며, 일산이나 평촌이나 산본 같은 수 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뚝딱 만들어 온 게 우리의 실력이다. 이제는 자고 일어나면 전 국토에 걸쳐 거대규모의 신도시가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이런 천편일률적 신도시들이,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한 결과로 건설된다면, 이 속도는 완벽히 불가능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이 논리로 따지면, 이들 신도시들은 죄다 물리적 환경만 구축한 '어반' 일 뿐이며 우리가 살고자 하는 '시티'에 대한 합의가 전혀 없이 그냥 주어진 것이다.
문제는, 물리적 환경 뿐인 이런 '어반'에서 사람이 살게 되면서 그 '어반'이 가정한 어떤 사회적 모습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 가정된 사회라는 게, 불행하게도 이미 서구에서 실패로 끝났던 마스터플랜 - 통계적 숫자를 근거로 평균적 인간을 목표한, 계급적이고 분파적이며 효율과 기능만이 중시되는 거주적 기계로서의 도시이니, 거주자들은 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공동체 속에 삶을 살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딜 가도 똑 같은 우리 시대의 신도시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말이어서, 지방의 정체성 찾기란 지극히 난망한 일이다.

도대체 지난 수십 년 간 전 국토에 걸쳐 유행처럼 건설된 그 한 가지 사회의 정체는 무엇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바로 부동산 공동체이다. 자기 스스로의 사회적 인간상을 형성하는 기반인 거주를 늘 돈으로 환산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동산으로 파악하여 이를 획득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고 내몰리는 유목민적 삶을 살게 하는 그런 도시가 부동산 공동체의 사회이다. 그런 떠돌이들의 사회에 문화가 정착될 리가 만무하다. 물물교환의 성격을 나타내는 도시의 어원에 집착하여 부동산만 교환하는 이 땅 우리의 도시가, 일만 년 전의 제리코나 차탈휘크 보다 더 못난 도시라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