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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 그 집합의 아름다움-페즈(Fez) 20040213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내가 유리씨즈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언제 어느 페이지를 들춰 읽든 그 책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이처럼 내가 어디에서 시작하건 그 도시 전부를 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의 말을 풀이하면 좋은 도시는 한 모퉁이에서도 그 도시의 특성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즉 도시를 구성하는 작은 부분이나 하나의 개체라도 도시 전부에 비해 결코 못지 않아야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전체의 구조가 더 중요한 봉건적 도시를 질타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가만히 살피면 그 구조가 상당히 계급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선 도로체계가 계급적이다. 광로나 대로로 불리는 간선도로나 중로 소로 골목길 등의 이름이 그렇다. 각 급에 따라 속도나 교통방식이 다르다. 땅도 주거지역이나 상업, 공업지역 등 기능별로 그 등급이 주어지고 그에 따라 건축행위가 달라져 결국 우리가 사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더 노골적인 것은 도심이니 부도심이니 변두리니 하여 계급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중심 상업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은 변두리 근린생활시설에서 사는 사람보다 어쩐지 귀해 보이고 높아 보인다. 뿐만 아니다. 중앙공원이나 중앙로, 중앙광장 같은 이름이 붙는 곳은 다분히 우월적이며 권위적이어서 봉건시대의 중앙집중적 도시구조와 다를 바 없다. 가히 계급도시 아닌가.
요즘 만드는 신도시들은 죄다 이 모양으로 그 얼개를 갖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옛 도시들도 재개발의 구호를 내세워 그런 계급적 방식의 구조를 덧씌워서 개조한다. 마치 도시는 으레 그렇게 계급화된 구조로 되어야 합리적이며 기능적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과연 도시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건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도시를 계획하고 만드는 교과서가 편파적이며 낡은 것일 따름이다. 인구밀도계획, 교통계획, 토지이용계획 등 그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이런 항목은 계량적 수치를 동원하여 마치 과학적인 것처럼 보랏빛 도시를 그리지만 우리를 계급적 사회에 예속시킬 위험이 있다. 어찌 우리의 오묘한 삶이 그렇게 기능적으로 정량화 되어 예측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도시와 견주어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곳이 있다. 아프리카 모로코에 있는 페즈(Fez)라는 도시이다. 서기 789년에 최초로 건설되었으니 일천 이백 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천 년의 古都이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모로코의 문화와 종교 지식의 중심지로서 영광을 잃지 않는 도시요, 모로코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하는 이슬람의 도시이다.
787년 이슬람 세력권의 분열로 시아파를 이끌던 마호메트의 후손 술탄 이드리스가 수니파의 압박을 피해 모로코로 이주하여 이드리스 왕조를 창건한 곳이 모로코의 첫 이슬람 도시 페즈이다. 아틀라스 대륙의 교통 요충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14세기에 절정의 황금시대를 이루기까지 줄곧 번성하였다. 많은 사원이 세워져 종교적으로 성지가 되었고 스페인으로부터 학자들을 유치하고 대학을 세워 학문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으며 지리적으로도 교역의 중심지여서 중요한 상업도시로도 번창하게 되었다. 12세기에 이미 십 이만의 가구가 살았으며 공예품을 만드는 공장수만 3,500개에 달할 만큼 세계적 문명도시였다.
이 도시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최초의 도시인 ‘페즈 엘 발리’와 그에 이어져 왕궁과 사원 구역을 만든 ‘페즈 엘 예디드’가 구도시 지역이며 프랑스 식민시절에 지은 유럽풍 도시가 덧대어 전체 도시를 이루고 있지만 페즈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은 역시 가장 오래된 메디나 지역이다.
이 도시를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가운데 중정을 가진 ㅁ자형의 집들이 마치 벌집처럼 붙어 있다. 특별한 형상의 집은 아무리 찾아도 없고 모두가 고만고만한 풍경을 이루고 있는데 사원 같은 공공건물로 쓰이는 부분이 다소 큰 중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센트랄 파크 라든가 중앙광장은 있을 리가 없고 주작대로나 간선도로도 결코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하니 도시의 축도 없고 도심이나 부도심이 있을 수 없다. 당연히 주거지역이나 공업, 상업지역 같은 구역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삶부터 애초에 그런 구분이 없는 듯하다.
이들이 믿는 이슬람이 기독교와 다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 아래 성직자 평신도에 이르면서 많은 위계를 가진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의 알라 아래는 모든 이들이 평등하며 계급이 없다. 이슬람교의 교회인 모스크의 내부구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는데, 성소나 지성소 같은 높은 곳 없이 모든 신자가 평등하게 예배를 보도록 그냥 텅 비워져 있다. 모두에 대해 모든 이가 평등한 삶, 그런 믿음이 그들의 건축과 도시를 그렇게 만든 것일 게다.
이 도시를 방문객이 안내자 없이 들어갔다가는 언제 나올 수 있을 지 모른다. 거의 모든 길들이 한 길 남짓한 폭의 미로를 형성하고 있으며 시작점도 없고 끝나는 곳도 없다. 관광객과 뒤엉켜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이 좁은 길을 메우고 있는데 이 길은 단순히 통행만 하는 길이 아니라 이 도시의 중요한 공동영역이다. 도로 자체가 장터이고 애들의 놀이터이며 노인들이 쉬는 곳이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삶을 나누는 작은 광장이 되기도 한다. 불규칙하게 진행되는 길들은 때로는 위로 걸쳐진 집의 하부를 지나가기도 하고 더러는 계단으로 혹은 경사로로 되어 있기도 한데 밝고 어두움이 반복되면서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가진다. 이 길을 지나다 보면 마치 이 도시의 절단면 속에 와 있는 것을 느낀다. 멀리서 이 도시를 조감하면 황토 덩이가 쌓인 것처럼 무미건조하지만 그 속에는 지극히 화려한 색깔들의 물건들이 널려있고 그들의 표정도 화려하며 활기에 차 있다. 마치 우리 몸의 혈관처럼 이 길의 공간은 생동하며 넘쳐 흐른다.
길이 다소 한적해진 곳에 면한 한 ‘벌집’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아 밝고 맑은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중정에서 걸려져 부드러운 빛으로 변하여 중정에 면한 방들 속으로 침윤한다. 밖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밝음이었다. 모든 집들이 각기 저마다의 태양을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이들이 다 자기의 중심을 달리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확대하면 그 집은 그들의 독립된 세계이고 작은 도시이다. 그러하다. 페즈는 이 작은 도시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합의 세계였다.
계급적 도시는 그 중심축만 허물어뜨리면 전체가 와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부분이 평등하며 다른 중심들을 가진 도시를 멸하고자 하면 모든 부분을 제거해야 가능한 일이다. 한 집만 남아도 그 도시는 존속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프랑스가 모로코를 침공하고 이 페즈를 공격했지만, 수 많은 작은 도시들로 이루어진 이 미궁 같은 도시를 도무지 정복할 수가 없었던 그들은 이 도시 곁에 신도시를 세웠을 뿐이었다.
나는 이 도시를 민주주의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것도 모든 이들이 중심이 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이다. 우리가 민주적 사회에 살기를 원하고 다원적 가치를 신봉한다면 마땅히 우리의 도시도 그렇게 건설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봉건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까닭에 그 도시와 건축의 영향을 피할 수 없어, 우리의 갈등과 대립은 갈수록 깊어가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