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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남한강변에 건축하기 20030413

몇 년 전 런던에 일년을 혼자 살 때 틈을 내어 스위스 산골짜기에 있는 피터 춤터 Peter Zumtor가 설계한 온천휴양시설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스위스의 동쪽에 있는 쿠르Chur라는 곳까지 특급열차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일란츠Ilantz까지는 작은 기차로 갈아 타야만 할 정도로 산세가 험해지고 있었는데 이 온천이 있는 발스Vals라는 곳은 기차가 갈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곳이라 일란츠에서 가는 우편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이었다. 마침 비가 올 듯 말 듯한 희뿌연 한 날씨였는데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승객은 나 혼자이다. 운전수와 가벼운 농을 주고 받으며 계곡 속으로 향하는 데, 아….. 너무도 아름다운 경치가 나의 가슴 속으로 황홀하게 스며든다. 산세이며 나무며 바위며 흐르는 물살이며 그 색깔 그리고 휘감기는 안개며 드문 드문 있는 작은 집까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보고 있는 것이 못내 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랬다. 정말 죄스러웠다. 춤터의 건축은 그 풍경 속에 묻혀 버렸다.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도 결코 못 지 않다고 여긴다. 그리고 요즘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 우리 산하에 대한 애정의 도가 더욱 커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더구나 사시사철 변하는 산천의 모습은 항상 푸른 스위스의 산하와는 참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그곳의 풍광이 항상 장엄하고 근사하고 황홀하다면, 우리네 산하는 애절하고 유장하고 절박하며 풍부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산수유며 목련이며 개나리 진달래 벚꽃 유채꽃들이 피는 이 봄은 도무지 집안에 있지 못하게 만든다. 또 가을은 어떤가. 그 만큼 우리의 산하는 표정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그 속에 서있는 건축이다. 북한강, 남한강변은 차마 눈뜨고 갈 수가 없다. 시퍼렇고 시뻘거며, 기괴하고 괴이한 건물들이 마치 뽕 맞은 양색시들 마냥 즐비하고 이 떼거지들이 처절하게 강의 풍경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풍광 좋은 곳은 거의 틀림없이 정력에 걸신들린 국민들처럼 보양집인가 뭔가가 있고, 그 정력을 자랑해야 할 결단코 사랑스럽지 못한 숱한 러브호텔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되 씹게 만드는 것이다.

노헌 蘆軒
노헌은 웰콤의 박사장이 건축주이다. 그는 웰콤을 지을 때 이미 이 노헌 부지 옆에 있던 집을 구입하여 개조하여 사용하던 터 였다. 주변이 개발의 붐을 타고 집을 지을 조짐이 보이자 그 몰골들을 염려하여 옆 땅들을 구입하여 자작나무 숲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노헌 부지까지 구입하게 되는데 이미 이 땅 위에는 검붉은 벽돌로 육중하게 지은 집 두 채가 나란히 있었으며 넓은 땅에는 양잔디가 곱게 가꾸어져 있었다. 졸지에 넓은 땅을 가지게 된 그는 새 집 몇 채를 지을 결심을 한다. 한 집은 본인이 기거하는 용도이며 인접하여 작은 게스트 하우스 몇 채도 사업상 필요로 하였다.
취향이 서로 비슷한 우리는 새롭게 지어야 할 집에 대해 쉽게 일치하였다. 양잔디 대신 은빛 억새풀이 무성한 풍경일 것, 억새풀 너머는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며 집은 그 숲 속에 누일 것. 집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는 이 땅의 풍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오랫동안 교환되었다.
나는 200m 가까운 길이의 땅 위에 전개되는 억새풀과 자작나무 숲의 크기를 고려하여 폭 4.8m 길이 36m의 나무 통을 그렸다. 홍수가 되면 때때로 평상지면 보다 2,3m 높이 위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고려하여 주층은 2층으로 하고 아래는 되도록 작업실이나 창고 등을 두었다. 집 앞에 작은 문방을 하나 둔 까닭은 집과 문방사이에 생겨나는 적당한 긴장감에 대한 기대가 주 목적이지만 집에서 보는 바깥 풍경에 대한 고려도 크다.
침수 대비하여 골조는 아무래도 콘크리트로 만들지만 주층인 상부층의 외부는 목재로 치장하였다. 자작나무를 구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상 일반 방부목을 쓰고 그 치장하는 방법을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목재널 사이에 각재를 돌출하게 하여 목재널의 방수성을 증대 시키면서 수평의 강한 그림자를 만들게 된다. 지붕은 철재로 보강된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티타늄으로 덮었다. 따라서 강 건너에서 보게 되면 자작나무 사이에 햇빛에 반짝거리는 경사지붕을 가진 길다란 집이 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앞으로 이어서 몇 채의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 설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 엮어지는 땅의 처리가 중요하게 남아 있는 과제이다.

양평미술관
노헌의 설계가 거의 끝나 가던 무렵 강을 가운데 두고 노헌과 반대편 땅에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 받게 되었다. 아,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거의 항상, 처음 만나는 건축주에게는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 나이지만 두 말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해 버렸던 것을 기억한다. 만약에 성공적으로 이 두 프로젝트가 완성이 된다면, 그래서 이 방만한 강변의 풍경에 적당한 긴장을 조성하게 된다면, 그래도 아름다운 강을 되찾는데 작은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만용을 가진 것이다.
건축주는 내과 의사인데 오래 전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게 되어 이제는 전문적인 콜렉터로서 상당한 명성을 쌓은 분이었다. 수집량도 대단하거니와 여느 미술관과는 달리 몇 작가에게만 집중하여 그 분야에는 다른 미술관이 따라 올 수 없는 전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거시설도 같이 짓는 이 미술관의 땅은, 강변의 땅들이 대개 그렇듯이, 노헌의 땅 만큼 길다란 형상을 가지고 있다. 노헌은 국도에서는 다시 작은 길로 들어 가 접근하므로 국도에서는 볼 수가 없지만 이 땅은 도로와 강 사이에 있다. 특히 이 좁고 긴 땅은 국도가 휘어서 돌아가는 곳에 위치하여 땅의 모양이 계획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런 긴 땅에 단일 건물로 채우게 되면 지나는 차량은 강의 풍경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체 매스는 주거시설과 미술관은 물론 미술관도 기능별로 분절하였고 그 사이에 적절한 간격과 공간을 두어 강과 도로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였다. 물론 커브길에서 속도를 낮춘 차량은 강변에 놓인 작은 매스들이 만드는 풍경으로 이 장소에 대한 인식도를 높일 것이다.
이 매스들의 마감재는 내후성 강판이다. 물론 몇 개의 녹 쓴 철 덩이가 만드는 풍경이 조각처럼 보일 것이라는 생각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여기 부유하는 우리 시대 풍경에 다시 중심추로 그 무게감을 두어야 한다는 의식이 더 작용한 것이다. 강 건너에서 이들을 보면 역광일 수 밖에 없어, 건축의 형태구성보다는 매스감의 강조가 이 땅을 인식하는데 더욱 도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