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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정전, 비움 속 그 맑은 영혼의 소리 20030803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신봉하던 건축가들은 새로운 도시의 공간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주거(habitation)와 업무(work), 교통(transportation), 여가(recreation)가 그것인데, 이상도시의 건설을 목표로 한 이 도시이론은 현대에 이르러 수 많은 신도시들을 탄생하게 하였으나 이 도시들은 오늘날 전대미문의 새로운 도시적 문제를 양산하고 말았다. 인구의 과밀과 환경오염, 집단 이기주의, 계층간의 갈등, 정체성의 상실, 인간소외 같은 심각한 병리현상을 잉태하게 되어 이상향의 꿈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우리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계량적으로 취급하여 효율과 편리를 최선의 가치로 내세운 기능적 관점에서만 도시를 보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서울은 600년 고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개발 지상주의자들의 광풍이 불과 지난 3,40년 사이 서울의 동양화적 아름다움을 왜곡된 서구의 도시이론으로 황칠하고 덧칠하여 서울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고 고요한 풍경은 온갖 악다구니의 모습으로 개벽되고 말았다. 우리 선조들의 금기 사항이었던 탐욕과 무절제는 일상의 모습이 되었으며 부패한 도시의 공기는 우리의 영혼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처에 물신주의의 망령이 꿈틀대는 이 서울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대답은 절망적이지 않다. 내가 믿기론, 적어도 이 서울에 ‘종묘’라는 장소가 존재하는 한 서울은 멸망되지 않는다.

종묘(宗廟). 서울의 한 복판 종로에 면해서 5만6천여 평의 면적 위에 오늘날까지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조선왕조의 신위들을 모시고 있는 이곳, 종묘는 일그러진 서울의 중심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경건한 장소이며 우리의 전통적 공간개념인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는 건축이다.

조상의 덕을 기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중요한 습속으로 여겨져 왔다. 잘 되고 못 되는 일은 다 조상 탓이었던 만큼 왕이 된 이들에게는 그 조상의 덕이 지대하다고 여겼을 것인 바, 왕의 조상을 기리는 장소를 만드는 것은 왕조의 개설과 더불어 시급한 일이었다. 더구나 유교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 조선왕조이었으므로 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이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태조는 개국을 하자마자 경복궁의 양 측에 사직과 종묘를 만든다. 한양으로 천도를 한 이듬해인 1395년 9월에 태조 이성계의 4조(祖)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종묘정전(宗廟正殿)이 7간 규모로 창건되었다. 그 후 한차례 증축이 이루어 졌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고 다시 11간으로 개축된 후 늘어나는 위패의 수를 수용하기 위해 세 차례의 중건을 통해서 현재 19간으로 되어 있다. 이 정전의 서측에 영녕전(永寧殿)이 세종 때 지어졌는데 이는 신위의 숫자가 늘어나서 별묘(別廟)를 두어, 세대가 멀어진 역대 왕들을 모시게 하였으며 이도 역시 몇 차례 증 개축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른다. 이외에도 종묘 경내에는 제례를 거행하기 위한 몇 채의 부속채가 참으로 기품 있는 모습으로 있지만 내가 관심 갖는 곳은 단연 종묘정전의 공간이다.

우선 종묘정전은 그 크기가 압권이다. 동서로 117미터 남북으로 80미터의 담장이 두른 이 정전은 예상을 깬 그 길이가 주는 장중한 자태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정문인 남쪽의 신문을 들어서면 한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길이의 기와지붕이 지면을 깊게 누르며 중력에 저항하고 있다. 지붕 밑의 깊고 짙은 그림자와 붉은 색의 열주는 이곳이 무한의 세계라는 듯 방문객을 빨아 들인다. 일순 방문객은 그 위엄에 가득 찬 모습에 침묵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일본의 한 건축학자가 이 건축을 보고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극찬하여 수 많은 일본의 건축가들과 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하며 동일한 감탄사를 토로했지만, 나는 그 일본학자의 답사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강조한 것은 파르테논 같은 외관의 장중함이었을 게다. 그러나 종묘정전의 본질은 정전 자체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바로 정전 앞의 비운 공간이 주는 비 물질의 아름다움에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가이 없이 넓은 사막의 고요나 천지창조 전의 침묵과 비교해야 한다.

그렇다. 가로 세로 109미터 69미터의 월대(月臺)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비움 자체이며 절대적 공간이다. 1미터 남짓 하지만 이 지대는 그 사방이 주변 지면에서 올리어진 까닭에 이미 세속을 떠났으며, 담장 너머 주변은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여 있어 대조적으로 이 지역을 완벽히 비워진 곳으로 인식하게 한다. 마치 진공의 상태에 있다.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위한 가운데 길의 표정은 우리를 피안의 세계로 이끄는 듯 하며, 불규칙하지만 정돈된 바닥 돌판들은 마치 땅에 새긴 신의 지문처럼 보인다. 도무지 일상의 공간이 아니며 현대 도시가 목표하는 기능적 건축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물신주의와는 반대의 편에 있으며 천민주의와는 담을 쌓고 있다. 바로 이는 영혼의 공간이며 우리 자신을 영원히 질문하게 하는 본질적 공간인 것이다.

나는 이야기 할 수 있다. 누구든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때, 이른 아침 여기 종묘정전의 비움 속에 스스로를 던져 보라. 그리고 들어보라. 탐욕을 지우고 혼돈을 걷으며 우리 속 깊이에서 들려오는 이 맑은 영혼의 소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