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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유로운 세계-독락당 20031105

경상북도 안강에 가면 옥산서원을 지나서 독락당이라는 집이 있다. 직역하면 혼자 즐기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집을 밖에서 보면 이상하리만큼 집 높이가 낮다. 땅에 아주 밀착된 길다란 돌 덩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크기가 통상적이 아니다.
나중에 지어진 솟을 대문만이 다소 높아 그래도 이 집이 웬만한 이가 살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보이는 이 문을 통해 들어가서 중문의 위치에 다다르게 되면 처음 방문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된다. 하나의 입구가 있어 쉽게 동선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세 개의 출입구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면에는 담이 가로 막고 왼 편에 문이 있는데 오른 편에 또 하나의 문과 또 다른 통로가 있어 도무지 어디를 선택하여 들어갈 지 헷갈리게 되어 있다.
왼편 문을 선택하여 이 집을 들어서면 그곳이 안채인데 그 건축이 여느 집처럼 별채나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채는 어디에 있을까를 궁금히 하며 그 옆의 담장에 붙은 문을 열면 과연 사랑채가 있기는 있으되 오히려 이 집에 대한 궁금함을 증폭하기 마련이다. 독락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이 사랑채도 담장에 둘러싸여 대단히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집의 기단과 마루의 높이가 심할 정도로 낮아서 집은 마치 땅으로 꺼지는 듯 하다.
그 뒤의 담장에 있는 문을 열면 그제서야 어슴프레 느끼게 된다. 아 이 집은 모든 공간이 서로에게 독립되어 있구나. 심지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공간도 담장에 둘러싸여 독립되어 있다. 나중에 지었지만 사당도 담장으로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고 어서당(御書堂)도 그러하다. 이 집의 백미라고 이야기하는 별채인 계정(溪亭)을 찾아 가면 늘상 사진에서 보아 왔던 아름다운 정자의 모습을 찾는 이는 실망하게 된다. 그 계정은 별도의 건축이 아니라 그 앞의 독립된 마당을 둘러싼 담장의 일부로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 독락당의 건축은 건물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성격의 마당을 형성하는 벽의 일부였으며 때로는 다른 공간을 이어 주기도 하나 근본적으로 모든 건축과 모든 공간은 독립되어 있다. 소위 건축의 동선이며 공간의 체계나 연결은 여기서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 집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집이 아니라 개별의 공간이 빈 틈 없는 계획아래 집합되어 있는 집이다. 그 독립된 공간에서 방문자나 거주자는 그 공간을 즐기면 된다. 그래서 독락당일까.

이 집을 지은 이는 조선 중기 성리학의 독보적 경지를 젊을 때부터 개척했던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1491-1553)이다. 그는 김안로에 반대한 전력으로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에 낙향하게 되는데 그의 본부인이 있는 양동마을로 가지 않고 그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소실 부인을 위해 독락당을 1532년에 신축하여 기거한다.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고향에서 떨어진 곳에 첩과 살고자 함은 권력과 세상에 대한 회한과 분노의 결과, 은둔의 방법을 택한 까닭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생각은 그가 짓는 집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만 것이다.

나는 이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그렇게 은둔의 집으로만 이해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엽에 그려진 책걸이라는 민화를 보고 이 집의 소중한 비밀을 알게 된다. 갈색조의 책걸이 민화의 서가는 여덟 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단단한 비례감이 마치 큐비즘의 기하학적 그림처럼 현대적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상하다. 여덟 칸의 서가공간이 전체 서가가 만드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소실점을 죄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서가의 칸 안에 있는 책이며 붓 통이며 하는 모든 물건도 그 칸의 소실점을 공유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소실점을 달리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이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잘 조화되어 있는 이 그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문화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는 ‘Ways of Seeing’이라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물에 대한 편견을 인상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시도라는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극도의 이기적 시각의 결과라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의 대성당을 만든 부르넬레스키(Brunelleschi)가 만든 이 투시도를 그리는 방법을 잘 보면,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단 한 사람만이 보는 풍경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투시도의 세계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일방적이고 전제적이며 중앙집권적 세계이다. 이런 사고방법이 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여 오늘날 배타적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 왔다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다른 세계는 무엇인가. 나는 그때서야 우리의 민화 책걸이 그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표현한 책걸이 그림 속에는 단 하나의 중심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중심이 있으며 이는 모든 사물이 다 그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내용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이를 그림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의 크기로 확대를 하면 이 민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서양의 투시도에서 표현되는 봉건적 중앙집권의 세계가 아니라 다원적 민주주의의 건축이며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이내 독락당에 대해 내가 가졌던 의문의 고리들을 풀게 된다. 이 집에서 표현된 이언적의 세계는 서로 독립된 주체들의 집합이었으며,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고 이미 젊을 적 그가 설파한 성리학의 실체가 아닐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속에 내려가서 이 집을 보면 맙소사 벽체의 일부만으로 보이던 계정이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이 집을 만든 이가 갖는 열린 시각의 출구가 되어 맑은 물과 함께 바깥으로 구비구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홀로 즐기는 집이 독락당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계라는 말이 정확한 번역이었다. 모든 만물이 다 주체가 되어 공존하고 존재의 사유를 즐기는 그런 집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비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