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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가치’ 20021215

지난 10월12일 베이징 외곽에서 내가 설계한 클럽하우스의 준공식 겸 ‘Hotel Commune by the Great Wall’의 오프닝의 행사가 있었다. 유럽여행에서 바로 베이징으로 향한 후 사무소의 몇 식구들과 함께 공항에서 마련된 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자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하객들이 그야말로 운집해 있었다. 거의 항상 희뿌연 베이징의 날씨 답지 않게 쾌청한 날씨였으나 다소 쌀쌀한 기온에 움츠러들 만 하였지만 정장과 야회복차림의 손님들은 모두들 유쾌한 주말의 오후를 즐기는 듯 보였다.
계곡 속의 길 위에서 행해진 패션 쇼에 이어 옥외 마당에 마련된 단상에서 이 프로젝트의 크라이언트이며 중국의 가장 성공적 디벨로퍼인 장신여사는 나를 포함한 건축가들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감회를 피력했다. ‘ 우리는 2년 전 똑 같은 때에 산과 나무와 바위 밖에 없는 이곳에서 우리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놀라운 성취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분명 21세기는 아시아의 재능을 축하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동업자이자 남편인 판시이 씨와 같이 큰 징을 울리며 이 프로젝트의 완성과 호텔의 오프닝을 알렸다.

이 프로젝트를 비롯한 몇몇의 일과 관련하여 지난 2년 동안 베이징을 거의 한달 혹은 두 달에 한번은 방문을 한 셈이 된다. 갈 때마다 이 도시는 놀랍게 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없던 길과 건물이 새로 생기고 거리는 날로 청결해졌으며 삶의 풍경도 갈수록 풍부해지는 것을 보았다. 타워크레인이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보이는 이 도시의 변화의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누구에게 얘기 듣기로는 베이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디벨로퍼이며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 지금 베이징은 개발 중이다. 소위 ‘City on the Move’의 현장이며 그 오랫동안의 침묵 속에 응축된 에너지가 용솟음하듯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장신 여사는 불과 30대 중반의 여성이지만 중국의 매스컴에서 ‘가장 총명한 중국여성 3인’ 중의 하나로 선정할 만큼 중국에서 폭 넓게 알려진 인물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뉴욕 금융시장에서 실무를 익히다 베이징으로 건너와서 개발사업에 남편과 함께 뛰어든 그녀가 가진 안목과 지적 능력, 과단성 게다가 선진도시의 생활체험은 아직 여명기에 머물러 있는 베이징의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 엄청난 자극을 불어 넣는 원천이 되었다. 이 젊은 부부가 기획하는 주거개발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개념을 생산해 내며, 종래의 상투적이고 비뚤어진 방식의 주거패턴에 식상한 중국의 신흥부자들에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심어 준 것이다. 어쩌면 이 젊은 부부에게 디벨로퍼라는 일은 단지 부동산의 개발이 아니라 중국 현대문화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였다.
베이징 동쪽 국제무역센터 부근에 2천 여 세대의 주거단지를, 중국인에게는 아직 새로운 개념인 ‘SOHO/small office home office’라는 방식으로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친 이들은 베이징에서 40KM 북쪽으로 떨어진, 바달링이라는 만리장성을 이웃 한 8헥타르의 땅에 호화로운 주말주택단지를 구상한다. 이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수 없이 늘어난 중국의 신흥갑부들을 겨냥한 사업이었으나 장신여사가 노리고 있는 것은 이 프로젝트로 인한 중국현대건축의 발전에 대한 기여였다. 이미 이 부부는 창융허가 설계한 주말주택에서 지내는 ‘건축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으며, 창융허와 상의하여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젊은 건축가 12명을 초청하여 각 한 채씩을 설계하게 하는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100채의 규모를 기획하였으나 마스터플랜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험준한 지형을 고려하여 반 수로 줄어 들었고 부대시설로 클럽하우스가 기획되었다.
건축가에 대해 비교적 많은 지식을 이 클라이언트는 가지고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는 창융허가 추천하여 선정되었으며 더구나 중심시설인 클럽하우스의 설계를 내게 맡긴 것은 그의 나에 대한 특별한 배려였을 것이다. 애초에 그가 전체 마스터플랜을 맡는 것으로 되었으나 도중에 홍콩의 로코 임이 마스터플랜을 완성하였다.

2000년 9월, 중앙일보에서 조직한 압록강 두만강 답사단의 일원으로 국경의 강을 따라 일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베이징에서 귀국준비를 하고 있을 때, 창융허로부터 전갈을 받고 장신여사를 만나게 된다. Tea House 紫雲軒 이라는 낭만적 이름을 가진 우아한 레스트랑은 일주일동안 황폐하고 척박한 중국의 변방 풍경에 익숙하게 된 나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고 말았다. 여기도 중국인가. 장신여사와 인사를 나누고 고급와인과 세련된 음식을 들며 그녀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도중 넓고도 넓은 중국의 정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귀국 후에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개요와 설계조건 계약서 등을 정식으로 건네 받게 된다. 12명의 건축가들이 거의 같은 시기인 10월 초 현장을 답사했을 때 장신여사는 중국의 자재시장이나 몇 건축 디자인들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강조한 것은 중국의 리얼리티와 부지의 자연조건이었을 뿐 모든 것은 우리들의 건축의지에 맡겼다. 그녀의 요청에 의해 나는 중국의 설계원에서 내 건축을 강의하게 되었다. 아마도 거의 모든 건축가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자기 건축을 설명했었으며 그것은 장신여사가 우리들의 건축에 익숙하려 하는 노력일 뿐 아니라 그녀가 기획하고 있는 중국 건축사회에 대한 계몽적 기능의 한 부분일 지도 모른다.
만리장성이 경계인 부지의 지형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경관을 보여주었다. 이 자연의 조건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숙제로 여겨졌을 것이다. 2000년 12월에 1차 계획안이 제출되어야 했다. 불과 두 달도 채 못 되는 기간이었지만 나는 내가 읽었던 장소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새로운 풍경에 대한 얘기를 하며 클럽하우스의 건축을 설명하였다. 원래의 장소가 지속적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며 덧대어지는 내 건축도 언젠가는 퇴화되어 땅 속으로 사라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장신여사는 내 의견을 전적으로 수락하였다. 아마도 다른 건축가들의 제안도 그녀는 그렇게 다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회의실에는 각 건축가들이 꿈꾼 주택의 다양한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부가 다른 표정과 다른 공간을 가진 것이었으며 이 개성적인 건축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는 것이 내게는 다소 불안스러웠다.

2001년 2월 베이징의 SOHO 주거단지의 전시장에서 이 프로젝트의 건축전시회가 열렸다. ‘건축예술품의 수집’ 이라는 레토릭이 붙은 포스터가 인상적인 이 전시회에는 베이징 문화계 인사들은 물론 베이징 주재 외국대사들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만원을 이루었다. 물론 이 전시회는 다분히 상업적 목적이 있다. 그렇다 하드라도 이들은 너무도 근사하게 이를 포장하여 하나의 문화적 잔치로 엮어 내는 것이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이 전시회의 프레스인터뷰에서 대표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아시아의 가치’ 라는 주제로 짧은 연설을 했다. 아시아 고유의 가치였던 비움과 절제된 감성이 채움과 합리를 주장하던 서구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가 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으며 우리가 필요한 것은 특별한 보편성이라고 하였다. 이 전시회 이후 이 프로젝트의 이름인 Commune by the Great Wall은 중국 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지속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결국 2002년 ‘NEXT’를 주제로 내 세운 제 8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이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초대 받았다. 놀랍게도 그 개막식에서 장신여사가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세계 건축계에도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인으로서는 처음 수상이며 그것도 건축가가 아닌 건축주의 수상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수 많은 감회를 그녀는 가졌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건축적 성공을 확신한 그녀는 11채의 집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하고자 별장형 호텔로 변환하기로 하였다. 건축호텔이 되는 셈이었으며 그녀는 Living Arts의 박물관으로 기능을 확대하고자 했다.
일반에게 분양할 2단계의 주택을 제외하고 모든 건축이 완성되었다. 나는 특히 중심시설인 클럽하우스를 설계하였으므로 다른 건축에 관해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자유에 맡겨진 건축물의 집합이 나타낼 위험에 대해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특한 건축 어휘를 구사하는 12인 12색의 건축물이 1년 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계곡 속에 드러나는 동안, 나는 이 개성적 건축의 집합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뜨리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 모든 건축가들이 자기의 건축을 만들면서 자연에 대해 겸손하거나 절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몇 몇 건축은 강한 조형의지를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기까지 하지만 이 계곡의 산과 바위들의 힘은 건축을 압도하였다. 자연의 드라마틱한 풍광이 여전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집들이 시간 속에 퇴화하게 되면 그 특별한 풍경은 이 계곡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게 될 것이다.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땅에는 많은 나라들이 명멸하였다. 여러 부족이 저마다의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몽고나 오랑캐라고 여겼던 민족이 들어와서 중국을 통치하기도 하였고 시대마다 다른 부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또 다른 중국의 정통이 되어 왔다. 어쩌면 중국은 추상적인 이름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관용하며 모든 것을 용해하는 용광로 같은 땅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 중국이라는 용광로가 지금 격렬한 불꽃을 내며 모든 것을 녹이고 있다. 아무도 그 열화의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며 어떤 사회가 또 중국의 이름을 차지하고 중원을 다스릴 지 짐작하기 어렵다.
소망하는 것은 그 새로운 중국이 ‘아시아의 가치’를 결단코 잊지 않기를 원한다. 물론 그 가치는 보편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강박관념에서 내 건축의 이념을 이 계곡 속에 세웠으며 적은 부분이지만 그를 통해 아시아의 가치 한 부분이라도 발견될 수 있기를 원했다. 물론 실패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드라도 나는 중국의 관용을 믿는다. 결국은 그들의 방식으로 변화시켜 그들 삶의 일부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