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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 19980305

이땅에 인류 역사와 더불어 수 많은 건축이 지어졌고 또 세워져 있지만, 그 모든 건물이 다 창조적 건축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건축은 다른 건축을 본받아 새로 태어나게 되며 우리의 환경은 그러한 인습적 혹은 보수적 건축에 의해 주로 구성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한 현상을 나쁘다고 볼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귀중한 삶이 의탁 되는 건축이야말로 보수적이어야 우리의 안정적 삶이 나쁜 건축 속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보장 받을 수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보수적 건축-다른 건축을 답습하거나 영향 받아 세워지는 건축을 추적하다 보면, 반드시 어떤 원형과 만나게 된다. 즉, 한 시대를 결정짓는 건축에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런 건축을 건축의 원형이라 부른다.
이 건축 원형들은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어떤 장소에서도 우리에게 짙은 감동을 주게 되어 있다. 그것은 그 원형을 만든 건축가의 싱싱한 생명이 그 건축 속에 무서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20세기 건축의 원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20세기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 ( Mies van der Rohe ) 가 만든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을 그 대표적 실례로 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1962년 베를린 시의회는 전쟁으로 폐허로 변한 켐퍼광장( Kemper Platz )에 새로운 미술관을 세울 것을 정하고 지난 24년간을 조국을 떠나 있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를 그 설계자로 지목하여 그를 초청하게 된다. 그 당시 76세의 노장 미스에게 베를린은 잊을 수 없는 건축적 고향이었다.
나치의 반문화적 행태에 저항하여 미국으로 이민 간 그였지만, 그는 베를린에서 브루노 파울( Bruno Paul )과 피터 베렌스( Peter Behrens )에게 20년을 사사하면서 근대 건축에 대한 신뢰를 다졌으며, 왕성한 활동을 통해 근대건축의 요람지였던 바우하우스의 3대 교장이 되면서 그는 그의 이론과 실제를 접목하는 가장 행복한 건축시절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이곳은 그가 한 평생을 목표로 한 새로운 건축이념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념의 근원을 이룬 곳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영광이 만개하기 전 이곳은 또한 그에게 건축적 좌절을 안겨 주었으며 온갖 미련을 남기고 떠나야 했던 그런 곳이기도 하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새로운 시대의 새 삶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새로운 건축을 통하여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는 이미1927년 스튜트가르트에서, 바이쎈호프라는 새로운 주거단지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역설한 바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집을 설계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설계하였다.'
그는 복잡한 입면으로 집의 구조가 보이지 않고 쓸데 없는 치장으로 삶이 묻혀 보이지 않게 된 집 위에 가위표를 한 그림을 포스터로 내걸면서까지 그 전시회에 모인 청중을 향해 새로운 건축적 이상을 가질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는 테크놀로지를 건축의 일개 도구로만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20세기의 세계 자체로 파악한다. 따라서 건축과 테크놀로지의 합일이야 말로 새로운 가치요 그의 목표였다. 왕성한 공업생산력의 증대로 만들어진 철과 유리는, 테크놀로지 세계의 실현에 몰두하는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으며, 그가 1938년 이민지로 택한 시카고는, 철과 유리로 된 건축이 주종을 이루어 그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의 신념은 미국의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여러 건축적 실현을 이루게 되고, 결국 그의 신념은 만개하여 그를 이미 지울 수 없는 거장의 대열에 올려 놓게 된다.
이제 그의 오랜 인생과 건축의 세월을 정리할 즈음에 그가 잊지 못하는 땅 베를린에 세워질 이 미술관의 설계의뢰는 그야말로 그의 건축의 정수를 집중시킬 마지막 기회였으며,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의 지나간 모든 역정이 있었다고 생각했었음 직도 하리라.

이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은 두 개의 수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땅에서 다소 솟은 수평면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 떠 있는 수평면이다.
이 두 면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비어있다.

미스는 두 부분으로 미술관의 공간을 나눈다. 하나는 상설 전시가 열리는 부분과 기획 전시가 이루어지는 부분으로 나누어 상설 전시는 포디엄이라 칭한 기단부 속에 두고, 포디엄의 위에 불과 8개의 가느다란 철제 기둥으로 지지 되는 64.8m 크기의 정방형 지붕을 띄워 그 속에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이를 기획 전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할 것은,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거나, 불과 8개의 외부기둥이 지극히 가늘거나 혹은 18m 길이의 캔티레버 등의 기술적 성취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두 수평면 사이에 창조된 투명한 공간에 우리의 놀라움이 있다. 이 공간은 기획전시를 위한 공간이기는 하지만, 딱히 어떤 기능이 주어져 있지 않다. 모든 기능을 수용할 수 있으며 더불어 모든 기능을 또한 만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그는 이를 유니버살 스페이스( Universal Space )라 부른다. 범용의 공간이라 번역하면 옳을까. 어쩌면 무용의 공간이라고 부르는 게 더욱 옳을 수도 있다.

과거의 건축, 특히 서양의 건축에서의 벽체는 두 가지 목적으로 쓰였다. 하나는 지붕을 지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방을 구획하는 것이다. 지붕을 띄울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미스에게 벽은 완전히 자유로운 장치물일 뿐이다. 따라서 이 미스의 건축은 과거의 중량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축, 그래서 둔중하고 불투명할 수 밖에 없는 건축 즉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만날 수 없는 건축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테제와 안티테제의 문제이며,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를 가르는 혁명이었다.

이 미술관을 방문한 날은 겨울날 진눈개비 비가 막 그친 날 오후 였다.
한스 샤로운( Hans Scharoun )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니 홀과 국립도서관의 곡선들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 켐퍼광장으로 접근하던 나를 즐거운 기분으로 만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샤로운이 만든 건축도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그의 유기적 건축은 또 다른 의미에서 원형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 기회에 기술할 기회가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미스의 검은 지붕이 내 시야에 나타난 순간 나는 거의 호흡을 정지해야 했다.
엄청난 긴장이 엄습한 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건축 원형을 조우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다. 특히 이 미술관의 주변은, 동서독 통일 이후 막강한 서양 자본이 물밀 듯 들어와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인근을 온갖 현란한 형식의 상업주의 건물로 또 다른 장벽을 쌓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가진 이 미술관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장엄한 기품으로 그 주변을 압도하고 있다.
마치 20세기의 파르테논을 보는 듯하였으며 결단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건축의 본질적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포디엄에 오른다.
지면으로부터 불과 90cm정도의 높지 않은 기단이지만, 수평면에 다다른 순간 이미 주변의 도시로부터 구별된 공간 속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심리적으로 일상의 생활에서 탈피한 듯하고 어쩌면 폐허로 남은 아크로폴리스의 고요함에 도달한 듯하다. 도시는 이미 저 멀리 아래에 있고 나는 광활한 평원 위에 떠 있는 검은 철제 지붕 속으로 흡입되고 있었다.
검은 지붕 아래 내부를 둘러 싼16mm두께의 투명유리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었다. 그 유리는 주변의 풍경을 투명한 유리상자 안으로 전달하는 매개적 장치였으며 그 장치 위에는 방금 갠 하늘의 구름이 반사하여,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하였고 끊임없이 내 외부를 교류 시키고 투영하며 반사한다. 즉 이 신비의 건축은 도시 속에 서서히 용해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문을 밀고 내부로 들어가면 주변의 도시풍경은 이 공간을 둘러 싼 벽이 된다. 내부의 공간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늘 풍경에 의해 유쾌하게 되기도 하고 우울해 지기도 하며 때로는 침묵을 때로는 환호를 가져다 준다. 폐쇄되어 고정된, 그래서 목적이 없어지면 공간마저 없어지는 그런 구시대의 건축 공간과는 확연히 반대의 입장에 있는, 항상 살아 있는 공간인 것이다.
계단을 타고 포디엄의 내부로 내려가면, 상설전시가 있는 공간이 된다. 모든 이가 지하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순간 전시실 한 쪽면에 위치한 외부조각전시장을 보게 되면 또 다른 지표면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도시 속에 있으나 도시로부터 완벽히 보호되는 하나의 문화적 낙원이다.
다시 포디엄 위로 오른다.
세라( Serra )와 칼더( Calder )의 조각이 이 집의 위엄에 존경을 표하는 듯 솟아 있다.

미스의 전기 작가인 프리츠 니마이어( Fritz Niemeyer )는 이 집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 혹은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에 혈안이 된 각종 유행병들의
부질없는 사기행각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을 때, 미스가 만든 이 건축은 시적 진실함과 구조의
정직함에 대한 깊은 열망을 많은 사람에게 일깨움으로써 참으로 신선한 자극이 된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후, 동서독을 오가는 통로에 설치되었던 챨리검문소( Check Point Charlie )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그 일부는 박물관으로 꾸며 옛날의 긴장들을 많은 사진과 유품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물론 부단히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는 모습들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기리는 목적으로 모든 벽면이 장식되어 있었다.
한 벽면에 쓰여진 문구가 나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했음을 기억한다.
칼 맑스( Karl Marx )의 글이었다. 직역하면 이러하다.
우리 인류의 존엄성의 이름으로, 우리들 마음의 변화와 우리들 손들의 치켜세움,
이것을 나는 혁명이라 부른다.
Ich nenne Revolution die Verwandlung aller Herzen und die Erhebung aller Haenden
in den Namen der Ehr des Menschen.

나는 이 글을 외우면서 미스의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건축은 혁명적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건축은 변화하였고 더불어 우리의 삶도 변화하지 아니 하였는가.
그렇다. 미스는 건축을 이룬 게 아니라 켐퍼광장에 혁명을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