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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을 지으시길 원하십니까? 20000122

많은 이들이 건축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분류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건축의 속성에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건축이 예술이라는 명제에 제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건축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만 보기에는 건축에 담아지는 절박한 우리네 삶의 문제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건축의 결과를 두고 작품이라는 말보다 작업이라는 말을 더욱 좋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건축은 다른 종류의 예술과는 그 작업하는 형태가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예술은 독립된 예술가 혼자의 작업으로도 가능해 집니다. 예컨대 화가나 조각가는 스스로의 동기에서부터 작업을 하고 혼자 끝남으로써 그 예술작품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은 거의 반드시 건축주가 있어야 시작 되는 작업입니다. 혼자서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려봐야 자기 훈련은 될지 모르지만 여기에 건축의 가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건축주라는 존재가 건축에는 필수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좋은 건축을 추적하다 보면 그 뒤에는 반드시 좋은 건축주가 있어 왔습니다.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가가 만들지만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듭니다. 이것은 우리의 도시환경이 열악하다면 그렇게 된 연유에는 건축주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따라서 그 반대도 성립 되지요. 여기서 우리 출판도시를 만드는 일이 결단코 건축가의 손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축주의 위치에 계신 여러 출판인들의 자세에 이 도시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게 분명합니다. 즉 이 도시가 아름다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출판인들이 좋은 건축주가 되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건축주는 어떤 분일까요. 좋은 건축주에 대한 어쭙잖은 비유를 지난 번 몇 차례의 여행길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그 기억을 되살려 다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좋지 못한 건축주부터 말씀 드립니다. 이들은 건축을 재화의 일종으로만 강조하는 분들입니다. 부동산적 시각으로만 건축을 보며 문화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건축가는 그들의 재산증식을 위한 기술자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만드는 건물은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외면할 뿐 아니라 남의 이익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따라서 건물은 겉으로만 번지르하게 되며 속은 그냥 평당 분양가를 산정하기 위한 면적만 있을 뿐이고 겉은 유객을 위해 기괴한 모습으로 곧잘 서 있습니다. 주변 풍경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고 이 건물에 기록되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쉽게 허물고 쉽게 지우는 그런 소모품 같은 건축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삶에 대한 존경이 있을 수 없지요. 이것은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며 우리의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저해하는 반문화적 모습입니다.

좋은 건축주에는 세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건축을 문화로 인식하되 배타적 견해를 견지하시는 분들입니다. 선입견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지요. 객관적 입장에서 우리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건축가라는 존재가 불행하게도 이분들에게는 단지 하수인일 뿐 입니다. 이들의 건축은 건축주의 개인 기호에 입각하게 되기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즉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 사용자들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공존을 통한 공명의 가치를 찾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이런 건축에서 생겨나곤 합니다. 덜 좋은 건축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두번째는 좋은 건축주입니다. 이분들은 건축과 문화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기본적으로 건축가에 대한 신뢰가 대단합니다. 따라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삼가고 건축가에게 모든 사항을 일임하는 분들입니다. 결국 건축가는 자기의 보편적 지식을 동원하여 특수한 조건에 놓인 건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건축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건축주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제게는 그런 건축주가 다소 소극적이고 방임적으로 까지 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참 좋은 건축주에 대해 말씀 드리려 합니다. 이분들은 건축의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고 그 건축에 의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입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많은 해결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건축가에게 분명한 조건을 제시하고 건축가와 많은 얘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은 건축가의 지혜에 맡기는 분들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건축은 대단히 밀실하고 구체적입니다. 더러는 문화적 담론을 한층 숙성 시키는 결과도 맺습니다. 참 좋은 건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이 출판단지의 건축과 도시의 건립이라는 일이 비어있던 한 장소에 출판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게 된다는 단순한 일상사가 아닐 것입니다. 저의 견지로는 우리 현대 문화사의 대사건이며 그에 관한 구체적 기록입니다. 출판인들에게 이미 이 대 역사가 맡겨져 있습니다. 지식의 제작자이며 문화의 창조자적 직능을 가지신 분들에게 맡겨진 참으로 중요한 과업인 셈입니다. 많은 분들과의 얘기 속에서 그러한 사명에 대한 선하신 의지를 줄곧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모든 출판인들이 참 좋은 건축주가 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으시고자 하는 건축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삶에 대해, 우리 시대의 진지한 건축을 이끄는 건축가들과 이제부터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이야기의 과정에서 우리 시대의 문화적 담론이 형성 되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점은 그러한 치열한 담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면 실제 지어지는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만드는 건축을 통한 그러한 기록이 우리의 앞날에 대한 치열한 메시지일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좋은 건축을 지으시길 원하십니까. 먼저 좋은 건축가를 만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