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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미학 20110223

예컨대, 처음 간 어떤 도시에서 세 시간 동안만 체재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아마도 대개들 그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나 장소를 갈 것이다. 고대의 신전이나 왕궁 혹은 기념탑이나 광장 등, 여행안내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런 곳에 가서 확인하고 그 사실을 인증하기 위해 사진도 찍어야 한다. 그런데 나라면, 나는 그런 곳에 가지 않는다. 그런 관광명소는 삶의 실체가 이미 떠났다는 이유로 내 여행의 관심사항에서 항상 후순위에 있다. 대신, 주어진 세 시간 동안 그곳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공간을 찾는다. 별 볼 건축 없더라도, 그곳 사람들의 삶이 눅진히 녹아있는 거주지의 골목길 풍경에서 늘 큰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골목길의 풍경과 그들 삶에 대한 관찰을 제대로 하기란, 일정이 빠듯한 여행객으로서는 대단히 어렵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곳의 공간 구조를 미리 익혀두는 일인데, 그렇게 되면 순간적인 풍경을 보더라도 그 풍경의 배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 그 곳의 지도를 구해서 들여다 보고 그 도시구조를 읽어내는 일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되도록이면 다른 종류의 지도들을 모으는데, 시대별로도 구분된 게 있으면 최선이다. 지도에는 수없이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산세와 물길들의 분포, 길의 구성과 집들이 모여있는 풍경 뿐만 아니라, 권력과 재력 혹은 종교와 이념에 의해 도시가 탄생하고 그 구조가 변화한 모습도 지도를 보면 유추해 낼 수 있다. 여기에 공간적 상상력과 문화적 해석력을 동원할 수 있으면, 이미 나는 지도의 도시 속에서 거닐고 있게 된다. 도시구조를 파악하고 그 도시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곳 풍경은 이내 내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어, 처음 가는 곳이라도 안내자 없이 그 도시의 거주자처럼 산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때때로는 다른 이들을 어렵지 않게 안내까지 할 수 있다. 같이 간 이들에게, 나도 그곳이 처음이라고 하면 도무지 믿지들 않는 눈치다.
그러나 지도에서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지도는 위에서 보는 그림일 수 밖에 없어 땅을 디디고 사는 거주인의 삶을 같은 위치에서 볼 수 없다. 유명한 건물이나 유적지는 설혹 거기 서보지 않아도 이미 많은 정보를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다른 삶의 실체적 풍경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숨소리를 듣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지도 속에 나타난 마을 구조를 머리에 넣고도 그 길에 서면, 나는 그들 삶이 만드는 일상의 예기치 못한 풍경에 의해 새롭게 감동 받는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남부도시 코르도바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뜻하는 메스키타라고 부르는 역사적 건축이 있다. 코르도바의 상징이 되어 수 없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이 건축은, 8세기에 이슬람사원으로 애초에 지어졌다가 기독교문화가 지배한 이후에는 교회로 바꿔 사용해왔다. 그 규모도 대단히 크지만 엄정하게 배열된 팔백 오십 여섯 개의 기둥들 사이에 들어오는 빛으로 빚는 내부공간은 절제미의 극치를 보인다.
지난 2월 초 이곳을 처음 방문하기 전, 이 건축이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였고 실제로 그랬다. 그 공간이 주는 감동 또한 대단하여, 오랜 시간이 걸려 이 먼 곳까지 온 나는 그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서주일 뿐이었다. 그 사원을 나와 호텔로 가기 위해 골목길로 접어든 순간 전개되는 일상의 거리풍경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골목길에는 예측 불가한 형태와 크기의 공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길가의 건축들은 시대적 풍상을 그대로 노출하며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도에서 본 넓은 길은 오백 년이 넘는 작은 교회당 앞의 길다란 광장이었고, 끊어졌던 길은 기울어진 집의 일층으로 연결되어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을 이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그 길들은 시간이란 윤기로 빛났다. 이천 년의 거리에 로마가 있었고 무어인들이 있었으며 모슬렘과 유태인에 기독교도가 같이 있었다. 길모퉁이에, 창가에, 푯대에, 난간에...이름없는 디자인이며 건축이었지만 그 모든 단편이 진정한 코르도바였다.
나는,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골목길 속을 탐색하며 그 속에 기록된 수 없이 많은 역사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이 완성한 건축의 아름다움, 그 일상의 미학을 만끽했다. 그렇다. 여행이란 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얻는 삶에 대한 성찰임을 다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