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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오의 사진 20140529

나에게 건축사진의 세계를 일깨워준 사람은 일본인 사진가 무라이 오사무(村井 修) 선생이다. 나의 스승인 김수근선생은 한 작업이 끝나면 예외 없이 무라이선생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김수근선생의 20주기가 되던 2006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김수근 추모전’이 열렸을 때, 그가 가지고 있던 사진 만으로 이미 이 땅에서 사라진 건축을 포함한 모든 김수근 건축을 전시했으니, 김수근 건축은 무라이 오사무의 사진에 의해 영구적으로 기록되어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1979년, 김수근 건축의 대표작인 마산성당을 무라이 선생이 촬영하게 되었을 때, 김수근선생의 지시에 의해 그 작업을 돕기 위해 따라 나서게 되었다. 내가 25살 때 작업한 마산성당은 김수근선생의 휘하였지만 나는 내심 나의 기여가 지대한 건축이라고 우쭐대고 있어서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에겐 내 생각과 조언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고 여겼다.
현장에서 무라이선생은 내게 몇 마디를 묻고는 마산성당의 내 외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다녔다. 나중에 알았다. 그는 마산성당을 자기의 몸으로 익히고 있었고 마음으로 읽어내는 중이었다. 그리곤, 한 곳에 삼각대를 설치하고는 내게 와서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라고 했다. 이런… 내가 생각도 못한 장면이었다. 언제 이런 광경이 있었던가. 그 앵글은 분명 마산성당 내부의 한 부분이었지만, 내가 아는 설계내용에는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앵글 속의 공간은 위에서 내리는 빛과 더불어 너무도 아름다웠으며, 내가 이 건축에서 강조한 공간의 연결을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무라이선생이 스스로 찾아낸 앵글에 계속 삼각대를 놓고 몰두하며 즐거워할 때, 나는 그의 감성을 따라다니며 건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이틀간의 촬영작업을 마치고 마산성당 건축의 공간이 대단히 완결적이라고 내게 치사를 했지만 도리어 내가 머리를 수그리며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1979년은 내가 경동교회를 설계하던 때였으니 무라이선생과의 이 경험은 사실 경동교회의 설계에 꽤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나중에 뷰 파인더에 어떤 모습으로 잡혀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에, 도면 속에 표현된 공간을 도면 위에서만 보지 않으려 했고 앵글을 수시로 바꾸며 도면을 다시 그렸던 것이다.
나는 경동교회가 착공되는 것을 보고 1980년 여름 비엔나로 유학을 떠났다. 비엔나 생활에 젖게 된 그 이듬해에 한국에서 보내온 사진 하나에 너무도 놀라게 된다. 완공된 경동교회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너무도 감탄스러웠다. 남쪽 측면의 굴곡진 벽면들이 강한 그림자를 새기며 위로 솟아 오르는 풍경은 내가 꿈꾸었던 건축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다. 또 무라이선생이었다.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건축사진은 건축의 기록이 아니었다. 따라서 건축가의 생각과도 무관할 수 있는 다른 창조물이며 어쩌면 전적으로 사진가가 만드는 창조적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그 사진 속에 나타난 경동교회는 무라이선생의 작품이며, 반드시 선생의 이름이 작가로서 적시되어야 했다.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에, 내가 독립하여 만든 몇 개의 건축-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 등-을 감히 부탁을 했을 때도 선생은 즐겁게 응하며 건너오곤 하셨다. 그러나, 노령에 접어든 선생을 계속 오시라는 것이 더 이상은 무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누구에게 내 건축의 사진을 부탁해야 하는 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C3에서 내 첫 작품집을 내며 만난 건축가가 김종오이다.
극적 순간에 대한 감성이 탁월한 무라이선생의 사진과 비교하면 그의 사진 속에 표현된 건축은 밋밋하였다. 무라이 사진에 감염된 나로서는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무료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첫 인상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쩐지 내 건축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의 사진은, 그의 소박한 성품처럼 특별하지 않으며 마치 일상적이다. 일상성의 표현, 이는 순간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바탕이어서 지속적이며 본질적이다. 그러니 참으로 정직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는 내가 저지른 잘못도 고스란히 보이며 못난 얼굴도 그대로 담겨 있다.
무라이선생에게서 건축사진가의 고집스러운 태도를 잘 체득한 내가, 사진 작업을 할 때, 사진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김종오가 내 건축으로 사진작업 할 때에도, 심지어는 어떻게 찍는 것이 좋을 것인지를 물을 때에도,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작업을 마친 후 가져다 보여주는 사진을 보며 나는 내 과오를 다시 발견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 행여나 그의 파인더에 포착된 풍경이 당당하고 품위가 있으면 몰래 위로하기도 하니, 그의 사진은 어느새 내가 성찰하고 배우는 도구가 되었다. 또 하나의 스승인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는 진실을 기록하는 사진가이며 또 그렇게 남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