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광장의 아침, 그 아름다운 침묵

2003. 3. 31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지금 한 도심 지역의 재개발을 놓고 극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놓인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그 아래 도로를 걷어서 그 도로 밑에 흐르던 개천을 복원한다는 프로젝트 때문에 그러하다. 이 곳은 지난 1961년 서울의 중심에 놓였던 청계천 물길을 복개한 후, 증가하는 도심교통을 처리하기 위하여 고가도로를 그 위에 설치한 서울의 대표적 재개발사업이었는데, 이 고가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의 모습이 선진화 된 서울을 홍보하는 책에 언제나 등장하던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를 철거하면 극심한 교통난이 예상되는데도 천문학적 비용을 동원하면서까지 원 자연상태로 돌아가겠다는 이 발상은 지금까지 자연파괴 일변도였던 도시개발 방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환인 것이다. 이것은 재개발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문화적 정신적 혁명 아닌가.
서울은 지난 1997년에도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서울의 한 가운데 있는 산 중턱에 30년간을 서 있던 외국인들을 위한 아파트를 논의 끝에 폭파하여 없애버린 것이다. 남산의 풍경에 해가 된다는 의견이 분분해지자 수 백억 원을 보상하면서 자연을 선택하여 ‘서울답지 않은’ 쾌거를 이룬 적이 있다. 이로써 지금까지 개발 일변도로 치달아 온 우리들의 행태에 의문을 갖는 시각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과연 경제개발과 도시재개발의 결과가 우리의 삶의 행복지수와 비례하는가 라는 의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서울은 노도와 같은 경제개발의 파고에 휩쓸려 왔다. 불과 30년 사이 인구는 2배가 되었지만 소득은 50배가 되었고 최빈국의 상태에서 세계 10대 경제교역국에 들어서게 되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자가용 차를 갖고 있으며 고가도로가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고층빌딩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이른 바 국제적 도시의 풍광을 갖추어 있다. 도시를 비추는 불빛이 미래의 등불이요 여기저기 들어선 달콤한 스위스風의 집들이 부러워하던 꿈의 생활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서울이 과연 30년 전의 서울보다 서울 사람들에게 행복을 보장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1995년 10월21일 아침, 1979년에 요란한 행사와 더불어 건설한국을 과시하며 준공되었던 한강의 다리가 무너져 49명의 목숨을 빼앗더니, 1996년 6월에는 호화 사치품이 넘실대던 핑크 빛의 대형백화점이 순식간에 붕괴하여 6백 명이 넘는 쇼핑객들을 몰살시켰다. 건축의 윤리를 상실한 까닭이었다. 현란한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도시였지만 그 도시가 바로 야만의 도시였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라는 문제가 지성인들 사이에서 강력히 제기되었으며 여태껏 우리를 지탱해 온 가치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서울은 다른 많은 아시아의 많은 도시처럼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이다. 전통적 풍수지리 사상에 근거하여 아름다운 산들을 주변에 두고 맑은 물줄기가 흐르던 양지에 조선왕조의 수도로 시작한 도시이다. 비움을 사랑하고 침묵을 미덕으로 알던 도시였다. 마치, 여백이 그려진 부분보다 더 아름다운 동양화 같은 도시였으며, 음 자체 보다는 음 사이의 침묵을 더욱 귀중하게 생각한 동양음악의 풍경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도시의 풍광을 주도하고 그 속의 건축은 겸손하게 산세에 순응하며 지어진 이 고도의 미학은 숱한 비극적 전란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더니 현대에 들어서면서 불과 30년 사이에 서양의 물신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받아 그 모습이 격렬하게 바뀌어 버렸다.
비움과 침묵은 채움과 소란으로 바뀌고 겸손과 검박은 오만과 사치로 뒤덮혔으며 공유와 연대는 독식과 단절로 변절되고 말았다. 오로지 물신주의와 천박한 상업주의로 건축은 윤리를 저버리고 쓰레기로 변한 끝에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붕괴되는 재앙으로 우리 앞에 대두하고 만 것이다.

지난 1998년 나는 런던에서 일년을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 런던의 건축가들과 사상가들의 키워드가 ‘비움 emptiness’ 라는 것을 보고 몹시 당황해 하였다. 비움, 모호함, 느림 이런 단어들은 본래 우리 동양인의 것이다. 본디 저들 서양인들의 바탕은 물질과 합리이며 논리와 명료함이다. 그런데 그 서양인들의 교과서가 이제 그들을 막연히 동경한 우리 아시아 도시들의 교과서가 되어 우리의 자연과 도시를 요동하며 뒤바꾸고 있는데, 저들은 이제 우리가 잊어버려야 하는 단어들을 다시 그들의 문명이 부닥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는 ‘commune by the great wall’ 이라는 근사한 프로젝트로 자주 북경을 방문하였다. 두 세달 마다 한번씩 보게 된 동양의 거대도시 북경의 변모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길을 보게 되었고, 거의 항상 새로운 고층건물이 튀어 나오곤 하였다. 북경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지는 것을 보았고 점점 도시의 불 빛은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격동의 도시 city on the move’ 그 현장을 실감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왕후진 뒤의 포장마차를 즐겼고 호동의 뒷골목은 내가 즐겨 걷는 거리가 되었다. 희뿌연 하늘까지 멜랑코리하게 느껴졌다. 특히 이른 아침 천안문 앞 비어 있는 광장에 담기는 고요와 평온은 나에게 도시의 침묵이 갖는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였다. 도시의 침묵은 때로는 얼마나 경건한가.
그러나 서울로 돌아오게 되는 때가 되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함이 생기곤 한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비윤리적 건축들을 보아서 만이 아니며, 이로써 후동 뒷골목의 정겨운 모습을 언젠가는 다시 못 보게 될 것 같은 느낌만 도 아니다. 현란한 색채로 명멸하는 광고판들 속에 감추어진 자본주의의 야비한 속성이 갖는 파괴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더욱 강박관념으로 몰아간 것은 우리 아시아 인들을 동질성으로 연대하게 하는 비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여기서도 결국 사라지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하나의 위안이 있기는 하다. 중국은 나에게는 형이상학적 이름이다. 변방의 나라가 중원을 차지하여 중국의 정통이 되기도 하였고 시대마다 다른 문화가 침투하여 곧 중국의 본류를 다시 만들기도 하였지만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중국은 동양의 대문화권을 진전시켜 왔다. 아마도 중국인들은 보편성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용광로 같은 문화였으니 그 속의 본질이 아시아의 가치였을 것이다. 지금 요동치는 북경의 변모, 혹은 중국의 다른 개발 도시들의 변화도 어쩌면 깊고 무거운 중원의 중심 속으로 용해되어 그 중심축을 더욱 건강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뜨거운 애정으로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졌던 소중한 기억을 상실할 지도 모르고 한동안 우리의 정체성의 혼돈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서울을 지배하는 사생아 같은 못난 풍경이 북경에서 또 태어나서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대가를 치뤄야 할 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즐기던 천안문 앞 아침의 아름다운 침묵도 변질되거나 사라질 지도 모른다.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 Max Picard )는 ‘침묵의 세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무서운 말을 하며 경고하고 있다. ‘ 침묵을 모르는 도시는 멸망으로 침묵을 가지게 된다.’

북경은 이제 변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힘이 물밀 듯 모여드는 북경은 중국의 도시에서 아시아의 도시로 나아가 세계의 도시로 바뀌어 나갈 게 분명하다.
바라건대, 오랜 기간을 침묵 속에 있었던 아시아의 도시 북경이여, 비열한 자본주의의 칼부림 앞에서 침묵과 비움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