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어느 강좌 모임의 동학들과 유럽 수도원 기행을 꾸려 다녀왔다. 대부분 내게 익숙한 곳들로 일정을 짰지만, 이 기행에 대한 책을 쓰기로 약속한 탓에 준비할 게 많았다. 수도원의 발생과 역사를 복습해야 했고, 경계 밖으로 떠난 수도사들의 삶도 일일이 들여다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라투레트 수도원을 다시 들추며 그의 삶을 복기하다가, 얼마 전 읽었던 유홍준 교수의 『추사 김정희』와 겹쳐졌다. 묘했다.
유 교수는 오래전에 『완당평전』이란 제목으로 추사의 삶과 예술을 세 권에 걸쳐 자세하게 저술한 바 있다. 미술사학자로서 회심의 역작이었는데, 사계에서 글 내용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며 비판이 일었고 새로운 자료들도 등장하여 급기야 그 책의 절판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16년의 세월이 지난 올봄, 그때까지 제기된 된 사실들을 모두 수용한 내용으로 새 책을 내며 이번에는 학자가 아니라 작가적 입장의 문학서로 썼다고 했다. 한꺼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 끊어 읽은 이 책은, 문학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고증적이고 사실적이며, 학문이기에는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서술이 탁월하여 어느 장르에 놓는 게 맞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달문으로 빚은 추사의 굴곡진 삶은 내 마음에 너무도 깊숙이 새겨졌다. 특히 추사가 말년에 만나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무답으로 일관했던 초의선사가, 추사가 세상을 뜬지 2년이 지난 다음에야 무덤을 찾아와 쓴 제문, 보낼 수 없던 친구를 이제야 떠나 보내는 듯 슬픔으로 꾹꾹 눌러 쓴 글을 읽다가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 글의 끝부분은 이렇다. “(…)이제는 영원히 회포를 끊고 몸을 바꿔 시비의 문을 벗어나서 환희지(歡喜地)에서 자유로이 거니시겠지요(…)”.
추사가 죽기 사흘 전에 쓴 봉은사의 ‘板殿’(판전)이라는 글씨를 보면 왕희지를 넘어 추사체라는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거장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서투르다. 유 교수는 이 글씨가 추사가 여덟 살에 쓴 글과 닮았다며 모든 영욕에서 벗어난 그가 원초로 회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땅하게 하며 마스터한 모든 필법의 구속과 시비의 문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면 얻게 되는 평화라는 것이다.
수도원 기행지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지은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를 포함하였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도 한번은 들어 보았을 르 코르뷔지에는 우리의 20세기 삶을 디자인한 건축가였으며 모더니즘의 선구자였다.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할 만큼 기계문명을 신봉한 그였지만 전쟁을 통해 기술이 가진 폭력을 목격한 뒤, 자연과 원시의 형태로 방향을 돌려 1955년 롱샹 성당을 완성하며 그동안 만들어왔던 직각과 기계의 건축을 뒤집는다.
그를 교주처럼 따르던 건축가들과 지식인들이 훼절이요 배신이라며 비난했으나 정작 롱샹 성당을 보고 난 후에는 그 예술적 성취에 충격받을 정도로 이 건축은 획기적이었다. 그리고 모두들 거장의 다음 행보를 주목했다. 롱샹 성당의 설계를 의뢰한 쿠드리에 신부는 라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다시 부탁하며 한 가지 조건을 말한다. 12세기에 지어진 프로방스의 르토로네 수도원을 참조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위대한 건축가에게 할 말이 아니었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그 말에 순종하여 이 로마네스크 시대의 수도원을 방문한다.
폐허로 남아 있는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천재적 건축가에게 엄청난 교훈과 영감을 주었다. 급기야 『진실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르토로네 수도원에 관한 책까지 내고, 이 고전의 건축을 교본으로 삼아 라투레트 수도원을 짓게 된다. 모두들 롱샹 성당의 다른 버전을 기대했으나, 완공된 수도원은 놀랍게도 그가 젊은 시절 주장했던 건축의 본질과 원칙을 다시 구현한 것이며 르토로네의 다른 버전이기까지 했다.
바로 그의 시작점으로 돌아간 것이었으니, 나는 추사의 ‘판전’을 여기서 떠올리고 만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건축인 라투레트 수도원이 완성된 1960년, 이때는 이미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다음이었고 뒤이어 가장 의지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지중해변에 지은 불과 4평 크기 통나무집의 고독 속에서 자유하다가 65년 여름, 지중해의 수평선 아래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가 죽기 한 달 전 쓴 글의 마지막은 이렇다. “그렇다. 전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고귀한 노동의 열매인 사유뿐이다.”
한 정치인의 죽음으로 일주일 내내 먹먹하다. 이 여름, 우리 다 내려놓고 어느 침묵의 장소를 찾아 추사나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그를 읽으며 우리의 시작점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면 어떠신가. 그래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 아직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