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시 그리고 시장

경향신문 '오피니언'

2021. 3. 24

집단지성의 산물인 언어 자체에 진리가 있다고 여기는 나는 말의 어원을 따지는 게 버릇이 된지 오래다. 오래전에 도시(都市)라는 한자가 만들어진 과정을 추적하다가 都와 市라는 글자에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도시에 대한 정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都는 원래 물가라는 뜻의 渚(저)와 마을 邑(읍)이 합해진 글자로, 이를 해석하면 물가에 형성된 마을이며 곧 마을의 형태를 뜻하는 글자라고 했다. 반면에 市의 자원을 따지면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 있는 모습 곧 한 공동체의 삶이라는 뜻이어서, 물리적 형상인 ‘도’와 그 형상에 담는 생활을 뜻하는 ‘시’, 이 둘이 합해져야 비로소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도’는 하드웨어인 셈이요 ‘시’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도시라는 단어 대신 쓰는 성시(城市)의 ‘성’은 흙을 쌓아 올린 모습으로 또한 형태에 관련된 글자다. 영어에서는 이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각각 다른 단어를 쓴다. City와 Urban을 우리는 모두 도시라고 번역하지만 이 두 단어가 가진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City의 라틴어 어원인 civitas는 사회라는 뜻에 가까우며 Urban의 어원인 urbus는 물리적 환경을 뜻하니, 묘하게도 도시라는 단어의 구성과 같다. 물론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여서 도 없는 시는 말일 뿐이며 시 없는 도는 세트장이거나 폐허일 뿐으로 두 경우 다 공허하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떻게 발생할까? 도시는 혈연으로 형성되는 농촌과 달리 이익을 구하기 위해 모이는 사회공동체이다. 즉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물질적 이득 또는 신분의 지위를 갖기 위해 기회를 찾아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익명성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이 되며,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익명의 다수가 모여서 잘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적용되는 법률이 필요한데, 이 규칙의 문항들이 공간적으로 나타난 게 길이나 광장 공원 같은 도시의 공공영역이다. 도시계획(city planning)이 바로 이 규칙을 만드는 일이며 이 일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의제가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여기서 추출되는 결론이, 만들고자 하는 도시의 프로그램이 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건축과 도시공학으로 물리적 환경을 그리는 도시설계(urban design)를 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던 근대 이전의 도시는 그 권력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도시들은 죄다 한 가운데 권력자의 거처를 두고 다른 모든 시설을 지위에 따라 순서대로 주변에 배치한 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는 계급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를 가진다. 그러나 인구가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에 이른 현대의 도시 더구나 민주적 정치체제의 사회에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곧잘 도시의 담론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도시계획을 요식행위로 여기거나 그 과정을 생략하고 물리적 시설만을 설계하는 편법이 횡행하였다. 그 경우가 다름 아닌 우리들이 지난 시대에 만든 신도시들이며 지금에 만드는 3기 신도시들도 별반 틀리지 않는다.

예컨대 분당. 50만명이 사는 도시를 5년만에 만들었으니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을 만큼 기적같은 속도였다. 이 정도면 세계도시역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하건만 세계의 어느 도시학자도 분당을 현대도시의 보기로서 언급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바로 도시의 담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서양의 도시설계도를 적당히 베꼈을 뿐이며, 그 설계라는 것이 평지를 전제로 한 그림이어서 이를 산 많고 물길 있는 우리 땅에 적용하자니 그 지형들이 방해가 되어 죄다 밀고 쓸어 평지처럼 만들어버렸다. 담론도 없고 터의 무늬도 없는 이 도시가 성공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분당은 실패하지 않았는데 도시가 성공한 게 아니라 바로 부동산 사업이 융성한 것이다. 이 부동산공동체의 성공은 정부와 개발업자들에게 보다 큰 특권을 주게 된다. 곧이어 수도권 각지에서 분당과 같은 신도시가 들어서고 이내 지방으로도 번졌으며 심지어 제주의 섬에까지 몰려가 어떠한 도시담론도 없는 비슷한 주택단지를 세워 전국의 도시풍경을 통일하고 말았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사람을 다시 만든다고 했다. 도시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도시가 사회를 다시 만들게니 똑 같은 부동산의 사회가 여기서 형성될 게 뻔하다. 실제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아파트 동네의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이 가설을 사실로 확인한다. 같은 풍경 같은 삶의 도시와 마을들은 지역 정체성과 사회 다양성의 소멸이 정해진 순서여서 나는 우리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위안으로 삼는 도시가 있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빈 같은 도시인데 이들도 사실은 동일한 도면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2천년 전, 로마가 팍스로마나를 내세우며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 정복지에 로마군단의 기지를 세우는 게 우선의 일이었다. 카스트라라는 로마군단 캠프의 표준도면에 의하면, 로마에서 오는 길인 카르도와 이에 직교하는 데쿠마누스라는 길을 만들어 주요간선도로로 삼는다. 그 교차점에 광장인 포럼을 만들고 그 주위에 사령부 같은 핵심시설을 두며 막사를 주변에 배치하고 둘레에 담장을 두르는 사각형의 형태다. 여차하면 쉽게 철수할 수 있도록 평지에 설치해야 하는 이 표준도면의 시설이 정복에 성공하여 고착되면 그 정복지의 원도심이 되었다. 바로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시티라는 이름의 지역이 로마군단의 캠프였으며, 파리의 시티 지역, 빈의 중심부 그라벤이 빈데보나라는 이름의 캠프여서 지금도 이들 지역의 좁은 가로들은 2천년전 캠프의 격자가로망과 일치한다. 이들뿐 아니라 로마제국 점령지 대부분의 원도심이 죄다 그렇다.

처음에는 같은 모습이었으나 오늘날 이 도시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나타내며 세계의 중요한 도시며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고는 했지만, 이 도시들은 로마군단 캠프로 시작한 후 수백 년 더러는 천년이 흐른 다음에야 도시로서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거주민들이 삶의 흔적을 그 땅에 수 많은 세월 동안 새겨놓은 후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실은 서울을 이야기 하려다 서두가 길어졌다. 특별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며 조선의 수도로 시작된 서울은 6백년이 넘는 역사도시이며 곳곳에 산이 있는 풍경도시이고 천만 인구의 메가시티로 고유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개발광풍으로 랜드마크라 칭하는 파편적 거대건축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산등성이에 아파트가 난립하며 서울 고유의 풍경이 무너지고 도시 정체성이 위태해졌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재개발 뉴타운이란 이름의 괴물이 수백 곳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박원순시장이 등장하며 서울의 가치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하고 수십 년간 그려왔던 개발지도의 축선들을 꺾으며 방향을 새로이 잡은 것이다. 기억상실을 부추기는 재개발이 아니라 삶을 존중한 재생이란 단어를 등장시키고, 홀로 잘난 랜드마크가 아니라 주변을 연결하고 연대하는 네트워크의 풍경을 말했다. 실적주의적 결과보다는 주민과 함께 하는 과정을 더욱 중시하여 공공성과 동네건축들이 늘 의제로 떠 올랐고, 한꺼번에 도려내는 외과수술 같은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핵심부분에 집중하여 주변으로 점차 번지게 하는 도시침술이 새로운 도시개발의 어휘였으니, 서울은 바야흐로 선한 가치를 다시 세우며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을 때, 그는 어이없게 떠나고 말았다.

두주 후면 새 시장이 정해지겠지만, 나는 지금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과 그림에 마음이 어둡다. 1년 임기일 뿐인데도 제시된 구체적 그림들은 개발광풍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 해서다. 위선과 증오의 날 선 말만 난무하는 우리 정치판에 고담준론은 무망한 일이지만,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의 공동체인 ‘시’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그 생각은 먼저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장이 되시면, 고층아파트건 수직도시건 그 구체적 그림 즉 ‘도’는 합당한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이게 도와 시를 분별하는 일이며 그래서 시의 장이라고 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