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처음으로 세종시에 가게 되었다. 세종시가 행정복합중심도시라는 이름으로 태동을 준비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 나는 건립추진위원회의 위원이었다. 위원회에서 도시설계 기본개념을 국제공모로 선정하기로 했을 때,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라는 미국의 진보적 도시사회학자를 심사위원으로 나는 적극 추천했는데,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의 도시형태를 주장하는 그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랜드마크나 스펙타클한 시설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부질없는 환상일 뿐이며 도시의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서사적 사건이 훨씬 우리의 삶에 중요하다고 했다. 미학적 논리로 도시를 만들기보다는 도시 공간이 가지는 사회적 문제나 제도의 윤리적 측면에서 도시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도시는 완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21세기를 기념하여 열린 베니스비엔날레는 그의 주장을 받아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도시와 건축의 담론을 촉발하기도 했었다.
심사위원장이 된 그는 세종시의 도시개념으로 제출된 121개의 안 중에서, 가운데를 비운 환형의 설계안을 당선작으로 뽑으며 민주주의 도시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중심부의 땅을 비우고 도시는 주변으로 둘러 세웠으니 어느 한 곳이 중심이 아닌 서로에게 평등한 도시구조라는 것이다. 이른바 탈중심의 도시였고 이는 서양의 단일 중심이고 위계적, 기능적 도시 역사를 결별하는 일이었다. 내 의무를 다했다고 여긴 나는 위원회를 떠났다. 그 당선안이 국토연구원으로 넘어가 실시설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다소 변형되며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을 뿐, 그 이후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도 나는 세종시와 더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15년 만에 세종시를 방문했으니 내 감회는 특별할 수밖에 없어 들뜨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도시를 들어서자마자 나는 우울을 감추지 못했다. 15년 전, 도시가 들어설 땅은 마치 비단결처럼 부드러웠고 아름다웠던 것을 기억한다. 가운데를 흐르는 금강, 비단의 강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땅이었고, 건축은 그 온화한 지세를 존중하며 겸손히 지어야 했다. 그러나 부드러운 지형의 선을 죄다 도려내고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은 어디서나 보던 폐쇄된 공동체이며 여전히 건설자본에 복무한 모습 아닌가. 새로운 공공시설들은 저마다 튀는 모습으로 아우성이고 차량이 우선이 된 도로는 보행체계를 계속 끊고 있었으니, 내가 곧잘 비난하던 신도시의 풍경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중심행정타운에 있었다. 이 건축이 국제공모에서 당선작으로 결정되었을 때 모두가 놀랐다.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태의 당선작은 모든 건물이 단단히 결합된 유기적 건축이었다. 시민들도 경사진 건물의 옥상으로 자연스레 올라와 환상적인 공중정원을 돌고 나가게 설계되었고 내부도 서로 막힘이 없어, 이 건축이 행정관서로 쓰인다면 행정의 혁신이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담벼락 많고 기밀 많은 우리의 행정조직이 그렇게 바뀔까? 의문이 몹시 들었지만 흥미로웠다. 현실은 냉혹했다. 나타난 실체는, 유기적이어야 할 청사를 부처마다 절단하여 쇠 울타리나 바리게이트로 접근을 막아 파편화되었으니 설계의도는 결박되었고 건물형태는 겉돌았다.
이 세종시를 누가 설계했을까? 도시개념 공모 당선자? 아니다. 그 개념은 형해마저 찾기가 힘들다. 국토연구원의 담당 책임자? 그는 당선작을 변형시키는 데서 임무가 끝났다. 행복청? 책임자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니 이 도시는 설계자가 없다. 브라질리아의 도시설계와 실현을 책임진 오스카 니마이어나, 인도의 챤디가르 도시건설에 최후를 바친 르코르뷔제, 혹은 캔버라를 만든 그리핀, 워싱턴DC의 피에르 랑팡, 그리고 한양도성의 정도전. 이런 건축가, 설계자의 이름을 여기서는 댈 수 없다.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도시 하나를 또 만들고 있을 뿐이다.
세종시는 여전히 건설 중이다. 박물관 단지가 들어선다고 했고 아파트는 또 오르고 있었다. 국회 분원이 올지도 모른다. 몹시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종시의 도시개념을 다시 리뷰하면 어떤가…. 애초의 심사위원들에게 지금의 상태를 보여주고 다시 희망을 들으면 안 될까…. 이제부터라도 지혜로운 건축가를 총괄책임자로 정해 모든 시설을 맡길 수 없을까…. 세종시를 나오며 별의별 궁리가 다 떠올랐다. 도시는 늘 변하는 생물이라 했으니, 이 도시의 성공 여부는 이제부터라고 애써 믿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