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

중앙일보 '중앙시평'

2017. 4. 08

건축을 미술과 가르는 큰 요소는 장소다. 미술품은 소장자를 따라 전시 장소를 옮겨도 그 가치가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의 미술관이 화이트큐브라는 백색 공간으로 돼 있는 까닭도 미술 감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소의 특별함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요즘 ‘장소 특정적 미술(Site Specific Art)’이란 게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런 유는 오히려 건축에 가깝다고 해야 옳다. 건축에서 장소는 절대적 요소다. 심지어는 공산품으로 태어나 옮겨다니는 컨테이너 박스나 조립식 주택도 어떤 장소를 받아 거기서 세월을 지키고 인간의 삶을 영위시키면 건축이 된다. 그렇듯 건축은 장소로 인해 발생하며 우리는 거기에 거주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도 말했다.

오래된 건축은 큰 기억 창고다. 건축을 보면 그 속에서 이루어진 삶의 형태뿐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어 건축을 보전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역사를 보전하는 일과 같다. 물론 모든 건축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중력에 의해 무너지고 경제적 이유에 의해 없어지며 폭격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장소에 건축이 있었던 흔적은 늘 남아 그때의 역사를 증언한다. 고고학자들이 유적을 발굴하고 환호하는 이유일 게다.

더구나 어떤 특별한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일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아무리 좋은 다큐멘터리나 대단한 기념비를 만든다 해도 그 역사의 현장을 직시하는 만큼 감동을 줄 수는 없다. 현장에는 진실이 있다는 것, 이를 노베르크 슐츠라는 건축학자는 ‘장소의 혼(Genius Loci)’이라고 일컬었다.

마침내 세월호가 떠올랐다. 마치 아이들의 혼령을 보는 듯 떠오르는 선체를 보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비록 녹슬고 상처투성이이며 낡았지만 선명하게 나타난 사라졌던 진실.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하고 비탄과 절망에 빠지게 했으며, 그리고 숱하게 의혹했던 모든 인과와 순간들이 수록됐을 현장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사실 현직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작금의 엄청난 사태를 초래하게 한 것은 아마도 세월호의 침몰이 그 시작이었을 게다. 300명이 넘는 목숨을 수장시켜 놓고서도 뭔가를 은폐했고, 책임 전가와 모면에 급급했으며, 유족들에게 온갖 모멸과 저주를 퍼붓고 왜곡을 일삼았던 패륜적 집단이 그러고서도 아무런 일 없다면 하늘이 있을 수 있을까? 정의며 윤리라는 것도 너무도 허망한 것이었을 게다. 이제 곧 그 모든 원인과 과정이 밝혀질 것이며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아까운 영령들도 그러므로 안식을 얻을 것으로 믿는다.

근데 뭔가 불안하다. 조사의 신속이나 효율을 내세우며 선체를 훼손해 가장 중요한 현장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 우리는 진실을 잃은 바 있다. 죽은 아이들이 마지막 수업을 마쳤던 학교 교실. 세월호 침몰 1년이 지난 즈음 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죽은 학생의 체온이 남은 듯한 책걸상과 이름들, 그 위에 놓인 위로의 꽃다발들,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찬 편지글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장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묘지였으며 절절한 순례지였다. 나는 그 당시 세월호를 기념하는 방법을 자문하는 일을 부탁 받아 장소 선정과 시설물을 설치하는 논의에 참여했지만 이 교실 현장만큼 더 절실하고 더 기념적 풍경을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 장소는 그대로 보존돼야 했고, 필요하다면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남은 자의 이익을 앞세우며 현장을 덮으려는 세력들에 의해 짝퉁의 장소로 집기들은 옮겨지고 현장은, 아니 진실은 멸실됐다.

물론 아직 밝혀야 할 것도 많고 납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남아 있어 우리가 어떻게 이 비극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그 이후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무신경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현장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절망의 바다를 향해 절규했던 팽목항 현장도 존치돼야 하며, 내동댕이 쳐진 유족들이 잊지 말아 달라고 절박하게 외쳤던 광화문광장의 장소도 기억돼야 한다. 맹골수도, 비록 파도의 물결로 하루에도 수없이 변모하는 현장이지만 이도 우리가 기억에 대한 어떤 방법을 찾기까지 지켜야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고백했던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고 했다. 진정한 아름다움과 참다운 평화를 우리가 원한다면 시렸던 지난 3년을 기억해야 하며 현장은 이를 위한 가장 유효한 도구다. 진실이 거기에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