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전 중국 당나라시대의 문장가 유종원이 쓴 재인전(梓人傳)은, 지금으로 보면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한 재인의 직능에 대한 태도를 빌려 나라의 재상이 지녀야 할 덕목과 자격을 서술한 고전이다. 양잠(楊潛)이라는 이름의 재인이 유종원의 매부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집 짓는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방의 허술한 침상도 잘 고치지 못하는 자라며 업신여김을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람이 일하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놀란다. 담벼락에 작은 도면 한 장을 붙여놓고 여러 직공들을 불러 일사불란하게 지휘 감독하는 모습이 한치의 오차도 없다. 그리고 그 집이 완성되자 오로지 자기 이름만 대들보에 써붙이며 모든 영광과 함께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종원은 그 재인을 손기술은 버리고 오로지 마음의 지혜만 사용하는 자라고 하며, 육체의 힘을 쓰는 자는 부림을 당하고 정신을 쓰는 자는 다른 이들을 부리며 일을 계획한다고 기술한다. 勞心者役人 勞力者役於人. 바른 건축가라면 이 지점을 직능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게다.
또한 그 재인은 공공의 일을 할 때는 개인의 집을 지을 때보다 임금을 반만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는 공공의 직무에도 헌신하는 자여서, 요즈음으로 치면 각 지자체에서 활약하는 공공건축가 역할도 하는 셈이다. 공공건축은 공공성 확보가 당연한 일이지만, 양잠보다 1200년 후인 지금 우리의 실상은 대단히 전근대적이거나 무개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근대적이라 함은,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같은 국가적 상징건축뿐만 아니라 지방청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관공서건축에서 보는 배타적 근엄성과 반시대적 기념비성이며, 무개념적 건축이라는 것은 파출소나 동사무소, 우체국처럼 우리들 동네에서 매일 보는 공공건축이 작은 규모라고 해서(이런 건축물은 조달청에서 설계비를 싸게 써내는 건축사를 시켜 행한다.) 막 짓는 일이니, 이렇게 백성을 주눅들게 하거나 주민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의 행복을 무시하는 이들을 공공건축이라 칭하기 민망하다. 그래도 요즘은 서울시에서 시작한 공공건축가 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우리의 공공건축이 차츰 나아지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양잠이 공공건축을 지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그 콧대 높은 건축가가 보수를 반으로 깎아 받을 정도였으면 공공성을 실현하는 게 자신에게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여긴 것 같다. 스스로는 정치이론가라 칭한 철학자 한나아렌트는 ‘칼 야스퍼스 찬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로 공공을 위한 헌신의 가치를 평가한 바 있다. “인간의 완성은 고독 속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중에게 자신의 작업을 선사함으로도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공공의 영역을 향한 모험 속으로 자신의 삶과 개인을 온전히 쏟아 놓아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나는 오래전에 한나아렌트의 이 말에 꽂혔다. 그래서 과문을 무릅쓰고 공공건축의 영역에서 봉사를 요구할 때 두말하지 않고 받았다. 멀리는 제주도와 서울시에서 그리고 중앙정부에서 각종 위원장과 총괄건축가 같은 일을 10년이 넘도록 복무하고 작년에 마치면서 한나아렌트의 말로 모든 공공직무에 대한 퇴임사를 밝혔다. 건축가 개인으로서는 개인 작업을 할 시간과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 기간이 즐거울 리가 없다. 오히려 탐욕적 개발집단의 온갖 공격과 협박까지 견뎌야 했고 관성과 면피에 익숙한 공무원집단에 따돌리고 심지어 건축계 내부의 비아냥으로도 낙담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말로 얻어지는 내적 평화가 나를 다스렸다. 무엇보다도 건축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몸으로 느끼고 배운 기간이어서 일흔이 된 이제서야 바른 건축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감히 믿고 싶은 것이다.
양잠이 설계비를 배로 받는다는 민간건축은 공공건축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다. 우리나라의 작년 통계를 보면 전체 건축물 총면적 38억평방미터 중에서 93퍼센트를 넘을 정도로 이 땅의 대다수 건축은 민간에서 지은 것인데, 민간건축이라고 해서 공공성을 외면할 수 없어 건축법이나 심의제도로 이를 확보한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대개 요식이나 절차일 뿐 좋은 건축을 담보하지 못하며 오히려 부작용까지 허다하다. 좋은 건축을 짓는 방법은 간단하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면 된다. 좋은 건축가는 누구일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가를 만든다.
건축가와 건축주. 아마도 국가로부터 공인된 자격을 갖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에 의사과 변호사 그리고 건축가가 대표적일게다. 이 셋은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 일의 시작에는 반드시 의뢰인이 있어야 된다는 것. 그런데 의뢰인이라 해도 의사와 변호사는 몸이 아프거나 골치가 아픈 사람을 상대하지만 건축가는 꿈과 돈이 있어 훨씬 나은 상대라고 하며, 그들보다 사회적 대우가 낮은 우리의 건축계는 이를 위로로 삼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선 양잠의 생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재인전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내 방법을 쓰면 견고하고 내 방법을 버리면 무너지는데 무너지는 편을 선택하라면 자신의 기술을 감추고 지혜를 말하지 않고 유유히 떠난다. 자신의 법도를 굽히지 말아야 진실로 뛰어난 재인이다. 不屈吾道 是誠良梓人耳” 아마도 어떤 건축주가 부탁한 집을 짓는데 자꾸만 간섭을 한 모양이다. 몇차례 설득도 하고 논쟁도 하다가 건축주가 갑의 권리를 내세우며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자 그만 두겠다며 자리를 떠난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적이 꽤 있었다. 이 땅에서 건축가로 사는 일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아 큰 일이 늘 아쉽지만, 오래전 제법 큰 규모의 프로젝트로 내게 온 건축주가 점을 보고 들은 말을 내 의견보다 우선하는 태도를 결국 견디지 못했다. 혹은, 건물을 좀 들여지어 지나는 이들을 위해 앞 공간을 내어주자는 간곡한 내 의견을 묵살하는 건축주에게 봉사하는 건 죄라고 생각되었다. 나에게 건축을 가르쳐준 김수근선생은 이렇게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건축가이고자 하면 결코 건축주의 하수인이나 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번이라도 그렇게 되면 영원히 그렇게 되니 단 한번도 그렇게 되지 말라.”
개인이 자기 돈을 내어 짓는 건축이라고 해도 그 건축은 공공성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첫번째 이유는 그 건축이 점유하게 되는 장소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땅은 영원히 후세의 소유이며 지금 우리가 잠시 빌어서 쓰는 것일 뿐이다. 또한 장소는 주변과 긴밀히 관계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므로 늘 공공적이다. 그 속의 건물 또한 홀로 있을 수 없다. 늘 이웃건물 혹은 이웃한 공간과 더불어 나타나며 무엇보다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게 되므로 공공성은 도시가 건강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런 까닭으로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봉사하는 동시에 공공에 봉사하는 자이다. 아무리 큰 규모의 일을 의뢰한 건축주라해도 공공적 가치를 침해하는 작업을 요구한다면, 건축가는 우선 공공성을 띈 건축이 가진 선함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며 그러고도 끝내 설득되지 않으면, 양잠처럼 그 일을 그만 두어야 마땅하다. 이 양잠의 태도를 본 유종원은 재인전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혹 재화를 탐내어 其或嗜其貨利, 차마 그만 두지 못하고 忍而不能捨也, 집 짓는 원칙도 잃어버린 채 喪其制量, 굽혀서 주장을 지키지 못한 결과 屈而不能守也, 대들보가 휘고 집이 무너지면 棟撓屋壞, 이는 내 잘못이 아니다고 말하는 게 則曰非我罪也, 어찌 말이 되겠는가 可乎哉.”코로나 때문이겠지만 요즘 TV에서 집에 관한 프로그램도 부쩍 늘었고, 실제로 밀집된 아파트를 떠나 주택을 지어 살겠다는 이들도 많아졌다. 부동산 폭등으로 치솟은 강남의 아파트 한채 값이면 얼마든지 좋은 땅을 구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으니 닭장 같은 삶을 청산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좋은 건축주가 되시라. 그러면 평생을 봉사 받을 것이며, 아름다운 건축에서 선한 삶을 사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