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을 하이테크의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은 시대마다 그때의 첨단기술이 있었으니 하이테크가 지금 만을 칭하는 단어는 아닐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서양의 역사 속 예술이나 건축은 시대별 양식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지칭하는 고전양식, 바실리카 형식이 발전한 초기기독교양식, 동방의 문화가 가미된 비잔틴, 다시 로마를 닮고자 내건 로마네스크, 첨탑의 고딕, 인본주의라는 르네상스, 장엄한 바로크, 장식적인 로코코 그리고 다시 옛날이 옳다는 고전주의, 기능과 효율의 모더니즘 양식들은 따지고 보면 각기 그 시대 특유의 정신과 기술로 이뤄진 결과물이었습니다. 모두가 그 시대의 하이테크라는 말이지요. 그 중에서도 굳이 가장 획기적 시대를 들라면 저는 두 시대를 듭니다.
첫째는, 현대의 건축물에서도 주 재료로 쓰이는 콘크리트를 발명한 2천년전의 로마시대입니다. 그 이전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흙이나 나무, 돌 혹은 벽돌이 건축의 주재료였는데, 이들은 본래의 크기나 운반의 여건 때문에 규모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콘크리트는 거푸집에 넣고 부으면 건축물의 구조와 크기가 일거에 완성되는 재료입니다. 거푸집이야 원하는대로 나무로 이어서 짜면 되므로 어떤 크기도 다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혁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높이 43미터가 넘는 원형의 판테온을 지어 오늘날까지 놀라운 문화유산으로 전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고딕의 기술입니다. 건축의 기초적 목적은 안전한 내부공간을 얻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붕이 있어야 하며 그 무게를 지지해 줄 장치가 필요합니다.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벽체가 지붕을 지지하는데 벽의 두께가 내부공간보다 더 클 정도였으니 벽이 무너질까 창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딕인들은 기둥과 버트레스 그리고 프라잉거더라는 특별한 장치를 만들어 돈과 시간만 있으면 아무리 높은 건물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내외부를 가르는 기능으로만 남은 벽체에는 커다란 창문도 뚫을 수 있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스테인드글라스로 받아 황홀한 공간을 만들었으니 어떤 학자는 이를 신본주의 건축이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의 건축, 바로 하늘을 닦는 건물이라는 뜻의 마천루(skyscraper)가 태어난 것입니다. 초기술을 자랑하는 현대의 건축에서도 이보다 혁명적인 사건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건축은 시대를 거치면서 늘 진보해 왔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말하지 못합니다. 건축이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실체적 의미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오히려 별 기술이 없던 시절, 주로 우리의 노동을 통해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옛 건축의 공간이 더 큰 감명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건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난 호 글에서 언급했지만,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코르뷔제가 20세기 최고의 걸작 라투레트수도원을 설계하며 참조했던 르토로네수도원입니다. 이 건축은 1176년에 착공하여 24년만인 1200년에 완공했으니, 가장 하이테크라고 일컫는 고딕 직전 로마네스크가 끝물인 시절에 지어졌습니다.
1999년에 제가 혼자서 라투레트수도원을 두번째로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제 행색은 불쌍하게 보였던 모양이지요. 그 수도원의 인근 역에서 두리번거리던 제게 다가와 자비를 베푼 분이 있었는데 바로 라투레트수도원의 아빠스님인 리옹신부였습니다. 그분 차를 얻어 타고 언덕 위의 수도원까지 오며 예약할 수 없었던 방까지 얻어 숙박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저녁을 같이 먹고나서 서재로 안내되어 귀한 술까지 얻어먹으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먼 나라 한국에서 왔다는 행색 초라한 자가 이 수도원과 코르뷔제에 대해 주절주절 말하는 게 신기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책 한권을 보여주셨는데 너무도 놀라운 사진으로 가득한 책, 바로 코르뷔제가 르토로네수도원을 방문하고 ‘진실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엮은 책입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 깊은 숨으로 넘기고 다시 넘기고 하는 저를 가만 보시던 신부님은, 1956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이미 절판되어 다시 구할 수 없어 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날 밤, 그 책의 사진에 대한 기억으로 저는 밤을 새고 말았지요.
그렇게 절치부심하다가 드디어 2001년 몇몇 동료건축가들과 같이 르토로네수도원을 갈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저보다 건축에 대한 열정과 안목이 월등한 분들입니다. 프로방스의 깊은 산골, 상수리나무 울창한 숲 속의 작은 길로 구비구비 찾아간 이 수도원에서 우리 모두는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회한을 침묵하며 나누었습니다.
가운데 사각형의 마당을 중심으로 성당, 숙소와 챕터룸, 식당 그리고 작업장이 각 변에 붙어 전형적인 베네딕토 수도회 공간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수도원은 단 한가지 재료로만 지어졌는데 그 주변의 돌입니다. 마치 그 돌들이 원래부터 그런 모양으로 그렇게 쓰이기 위해 태어난 듯 바닥과 벽, 천정과 기둥을 정확하게 구성합니다. 돌들이 일어나 노래한 것일까요, 각 부재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듬은 돌을 서로 끼워 맞춘 방법은 너무도 정교합니다. 그로 구성된 전체는 어느 하나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 모습, 완벽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지붕을 받드느라 조심스레 뚫은 원형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어둠을 가르고 나지막한 소리를 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충만한 가운데 측벽의 작은 문을 통해 중정의 회랑으로 나오면, 아 회랑의 기둥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빛다발이 마치 그레고리안 찬트의 성부처럼 장중히 깔려 있어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만듭니다. 원래의 지형을 따라 슬며시 경사진 복도에 내린 빛과 그림자를 조심스레 밟으면 마치 장엄한 운율이 몸 속으로 흐르는 듯 빛은 제 몸과 하나가 되어 영혼을 맑고 맑게 씻어 내립니다. 오, 글로리아 데오……
마침 방문한 날이 주일이어서 미사가 열렸습니다. 아름다운 소리의 독창자가 슈베르트의 리타나이를 불렀습니다. “평화 속에 잠들라 모든 영혼이여/ 두려운 고통을 겪은 자나/ 달콤한 꿈을 꾼 자나/ 삶에 지쳐 태어나지도 못하며/ 세상에서 떠난 이들/ 모든 영혼이여 평화 속에 잠들라”
우리 모두는 큰 위안 속에 이 폐허의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이 수도원은, 유럽수도원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방만해진 수도원이 올바른 수도적 삶을 저해하게 되자 보다 엄격히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따르려는 열망으로 태어난 시토수도회 소속이었습니다. 지은 지 6백년이 지난 18세기말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지만 공간은 잘 보전되어 있고 일반 방문객도 쉽게 갈 수 있으며 주일마다 미사도 열립니다.
별 기술이 없던 시대, 이름 모르는 수도사 건축가가 고결한 노동과 간절한 기도로만 지은 건축. 이 시대, 메타버스인지 가상현실인지 고향 잃은 방랑자 같은 현대인들, 특히 현대의 하이테크에 미혹 당해 근원을 곧잘 벗어나는 저 같은 건축가에게 이 집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귀향처 아닐까요? 그러길래 코르뷔제도 이 진실의 건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것도 더할 수 없다. 조잡한 이 콘크리트의 시대에 이 엄청난 만남을 반기고 축복하며 인사하자.”
덤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 수도원의 출입구인 성당의 정문이 조금 이상합니다. 보통 성당정문은 건물의 중앙부에 당당히 있지만 여기서는 오른편 귀퉁이에 작고 겸손하게 있습니다. 알고보니 이 문은 외부인의 출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기 거주하는 수도사들의 주검이 장례미사를 지낸 후 나오는 문 바로 시구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곳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이 출입문은 우리가 죽기 위해 들어가는 문, 그래서 새롭게 다시 살아 나오기 위한 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 끝나면, 르토로네수도원과 묶어서 한번 가 보시지요. 이 위대한 로마네스크 건축 속에 머물며 스스로 죽고 다시 나오시게 되면, 프로방스의 햇살이 참 아름답고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을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