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도시, 가짜 건축

조선일보 일사일언

2000. 8. 21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근처의 한 마을은 영화산업 뿐 만 아니라 이 세계적 영화제작소를 구경하러 오는 많은 관광객으로도 적잖은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에 대해 저널에 소개된 것을 한 미국 친구가 전해 준 적이 있다. 내용인 즉, 많은 주민들이 세트 속의 풍경이 현실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그 광경을 보며 사는 까닭에 자기가 마치 영화 속의 한 배역처럼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 삶들이 진실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근데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어쩌면 우리가 더한 위험에 빠져 있는 지 모른다. 우리의 도시를 보자. 이곳 저곳에 세트 같은 건물이 즐비하다. 느닷없이 스페인이나 멕시코에나 있음 직한 건물이 우리 옆에 서 있는 가 하면 그리스의 신전도 등장하고 심지어는 동화 속의 요술나라 집도 우리의 일상적 풍경으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멀쩡히 쓰고 있던 집을 헐어내고 없어진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도 세트를 만드는 일과 다름 아니다. 이것들은 다 가짜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수 없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가짜 도시와 가짜 건축 속의 삶이 진짜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히 공주병이나 왕자병 같은 신종 질병이 만연하기 마련일 게다. 더구나 이 시대의 전지전능한 도구가 된 인터넷으로 바야흐로 가상현실의 세계가 도래하여 있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이 비몽사몽의 세계에서 더욱 가짜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참된 현실을 담는 진짜 건축을 구하는 일이 그래서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