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의 무덤-영원한 안식은 최초의 집에 거주하리니

중앙일보 문화

2011. 10. 29

예수는 목수의 직업을 가진 요셉을 육신의 아버지로 삼고 이 세상에 왔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을 볼 때면 예수의 집안 풍경은 늘 목공소를 배경으로 나타나곤 했다. 예수의 일기는 33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예수의 행적은 모두가 마지막 3년의 기록일 뿐으로 30세까지 그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릴 적 유대교지도자들과 잠깐 교리논쟁을 한 것을 제외하면 그 생애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짐작하자면 아마도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돕는 게 정상이었을 것이니 그도 목수였지 않았을까. 그런 줄로 알다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이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 성경에 의하면 회당 같은 중요한 집을 지을 때 좋은 나무는 모두 레바논이나 다른 나라에서 가져올 정도로 삼림자원 부족한 이스라엘에, 목수라는 이름의 직업이 있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요셉의 직업이 목공(Carpenter)이라는 영어로 번역되기 전, 그리스어로 된 성경에는 텍톤(Tekton)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텍톤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쌓다, 구축하다’라는 뜻이니 석공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다. 사실 예수가 자란 나사렛의 집들의 구조나 재료는 거의 돌이다. 비도 많이 오지 않아 벽이나 평평한 지붕 죄다 가공하기 쉬운 석회암으로 축조했으니 이는 석공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바로 텍톤의 뜻에 맞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의 직업은 석공이라고 감히 말하고 다녔다.

3년 전 예루살렘에 갔을 때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갖는 예루살렘 만큼 역사상 가장 비극적 역사를 기록한 도시가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이었던 솔로몬의 성전이었다. 이 유대교 회당의 존속 여부와 소유권의 쟁탈, 그 수복을 위한 투쟁은 지난 3000년 동안 국제정세를 좌지우지한 중요한 이슈였으며 여러 민족의 존망이 이로 인해 뒤흔들려졌다.
도시는 그 도시를 주도하는 권력의 구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정치권력이 우선이면 중앙집중의 봉건도시가 세워지고, 종교나 이념의 권력이 득세하면 교회나 이념의 탑을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며, 군사, 상업, 문화도시 등이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과 논리에 따라 발생하고 구성되며 변화하고 명멸한다. 그 중에 제일 위험한 도시가 종교와 이념의 도시다. 특정종파와 이념을 내세우는 도시는 도시가 가져야 하는 덕목인 보편적 가치를 배격하며, 도시의 특성인 익명성을 위한 자유를 부여하기 꺼려한다. 그런 도시는 반드시 대립과 갈등을 부를 수 밖에 없으니 평화를 목표하고 부르짖으면서도 그 과정은 늘 비극이다.
오늘도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이다. 기관총을 굳세게 잡고 검문초소를 지키며 이 도시를 방문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살벌하게 따지는 군인들의 표정이 이 도시가 얼만큼 위험하게 고립되어 있는 공동체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떤 때는 도시전체가 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또는 그 폐허 위에 새로운 돌과 옛 돌들이 섞여 새로운 형태가 끊임없이 나타나기도 한 이 위험한 도시의 풍경. 그 높이 만큼이나 절망의 크기를 나타내는 통곡의 벽, 운명의 황금빛 모스크, 깃발 든 단체의 순례자들과 장사치들이 뒤섞여 밀려다니는 좁고 구부러진 십자가의 길과 소란, 무슨 종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교회들, 곳곳에 있는 통제의 팻말들 그리고 폐허들…단기간을 머무르며 이해하기에는 이 도시는 너무도 그 운명의 실타래가 복잡하였다. 그러나 모든 골목과 모퉁이에 견고히 박혀 있는 돌들은 시간에 닳아서 반짝이는 윤기만큼이나 이 도시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골목들을 소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무덤도 반드시 돌로 지을 게다.
그랬다. 예루살렘의 동편 감람산 기슭에 나타난 묘지의 풍경에 나는 망연자실 했다. 압권이었다. 다소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직육면체의 석회암으로 만든 유대인의 무덤, 그들이 최후에 가진 가장 작은 석조의 집이었다. 그들 최초의 집도 이랬을 게다. 영원한 안식은 처음의 집에 거주하는 것이니… 비로소 생각이 났다. 베를린에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하여 지은 유태인 홀로코스트 기념광장의 풍경과 똑 같았다. 가장 간단한 건축과 그 집합이었다.

예수를 석공이라고 짐작한 것은 내 실수였다. 그 당시는 그런 전문적인 직종분류가 없었다. 그러니 그냥 집 짓는 일에 종사 하는 사람인 게 더 맞았다. 그래서 다시 깨달았다. 건축은 영어로 Architecture라고 한다. 으뜸이나 크다라는 뜻의 Arch와 기술이나 학문이라는 뜻의 Tect가 결합된 말이다. Tect는 물론 Tekton에서 나왔다. 그러니 예수는 틀림없이 건축가였다. 영어성경에 대문자를 쓴 건축가에 정관사를 붙인 the Architect를 조물주 하나님으로 해석한 것을 보면 더욱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