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품격

조선일보 일사일언

2000. 8. 01

나는 10년째 대학로에 있는 샘터사 건물의 한 쪽을 빌려서 사무실로 쓰고 있다. 소위 문화지대라는 대학로에는 갖가지 맵시를 뽐내는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지만, 붉은 벽돌 위로 담장이가 얹힌 이 소담한 건물은 여타 건물과 격이 다르다. 거의 모든 건물이 한 뼘의 땅을 아껴 상업적 이윤 추구에 골몰하는 판에 이 건물은 1층의 반을 시민들에게 그냥 내어 준 까닭이다. 이 건물은 3면이 도로에 면해 있는데, 1층 가운데에 외부 마당을 두어 통행인이 무단으로 출입한다. 지하철 역도 바로 이웃 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약속을 하여 만나기도 하며 특히 비오는 날이면 이곳은 더 없이 고마운 피난처가 된다. 20년이 넘는 동안 그리 했으니 그간의 임대 수익으로만 따져도 무시 못할 금액의 손실일 것이다. 이 건축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건물을 보면 그 소유자나 사용자의 품격을 짐작하게 된다. 어떤 건물은 비싼 재료로 마감은 하였으나 과시적이어서 졸부 같고 어떤 것은 너무 권위적이고 더러는 몰염치하여 비난 받아 마땅한 건물도 있다. 이들 건물주의 얼굴이 좋게 연상될 리가 없다. 어떤 건물은 폭력적으로 보이는 탓에 그 소유자는 필시 무슨 흉악범일 게다.
건축은 짓는 이의 얼굴이다. 실제로 설계를 하면서 건축주와 의논을 하다 보면 그의 본성을 마주 하기 마련인데 결국 그 인격에 따라 건물은 세워지게 된다. 따라서 건물에 품격이 없을 수 없다. 사람이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사람의 성격을 바꾼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의 격은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어떤 품격의 건물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