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왜 중요한가

국제신문

2002. 4. 11

윈스턴 처칠 경이 1960년 10월 타임즈 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 굳이 번역하면 ‘우리가 건물들을 만들지만 그 건물들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로 이해할 수 있는데, 나는 이 말의 뜻을 확신하는 자입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아간다고 하는 것도, 한 공간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모습이 같아 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수도하는 이들이 작고 검박한 방을 찾아 정진하는 것도 그 작은 공간에 스스로를 지배 받기 원한 까닭이며, 크고 화려한 집에 오래 살면 사람이 거짓스러워 지기 쉬운 이유도 그 건축 공간의 허황된 구조가 그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이러한 공간의 작용이 만드는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아 쉽게 느끼지 못할 뿐이지 우리의 삶은 건축의 영향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좋은 건축은 좋은 사람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사람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축이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요.

건축가로서 나는 좋은 건축을 판별하기 위한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첫번 째는 그 건축이 소기의 목적과 기능을 잘 표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학교는 학교 같고 교회는 교회 같고 집은 집 같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합목적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무덤으로 쓰였던 피라미드를 흉내내어 음식점을 한다든지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시내에 있다든지 하는 것은 호기심을 끄는 데는 성공할 지 몰라도 장구한 세월을 지탱하여 훗날 그 속의 생활 자체가 고고학적 가치를 지녀야 할 건축으로서는 우스꽝스런 것들입니다.
둘 째는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 입니다. 건축을 가리켜 시대의 거울이라고 일컫는 만큼 건축을 통하여 우리는 그 건축이 지어졌던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고 건축지를 발굴하고 환호를 하는 까닭도 그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지요. 즉 시대의 문화적 소산이 건축인 것이며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공법과 재료와 양식으로 지어야 바른 건축이 됩니다. 초고속 정보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초가나 기와집을 다시 짓는다든지 하는 것은 옛 건축에 대한 학습이나 전시대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그 집은 어디까지나 선조들의 창작품을 흉내낸 박제일 뿐입니다.
세 번째는 건축과 장소의 관계입니다. 건축은 땅 위에 반드시 선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 점이 건축을 다른 조형예술과 구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요. 예컨대 조각이나 그림은 작업실에서 제작되어 전시장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설치할 것을 목표하는 것이며 여러 곳을 전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축은 현실의 땅과 불가분의 관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현실의 땅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땅들과 붙어 특별한 관계를 맺는 까닭으로 모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땅들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어 온 까닭에 장구한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이러한 공간적 시간적 성격이 한 땅의 특수한 조건을 만들고 그런 땅을 우리는 ‘장소’라고 부릅니다. 이 장소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건축이 바른 건축이 됨은 불문 가지이며 이러한 건축의 집합이 한 지역의 전통 문화를 만들지요. 당연히 서울과 부산의 집은 달라야 하며 서대신동과 해운대의 집 형식은 다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부산의 건축은 어떠한가요. 과연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는 건축의 중요함을 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