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가치

중앙일보

2001. 11. 17

요즘은 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건물과 건축을 구분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건물은 별 생각 없이 세운 구조물 같은 것이고 건축은 소위 예술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을 두둔하는 듯한 이 말은 오히려 건축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단편적 이해이다.
建築이라는 한자 단어는 건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뜻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이 단어의 뜻은 세우고 올린다는 물리적 행위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지혜로운 선조들은 造營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는데, 이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가꾸어 낸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정신작용을 통한 시간적 과정이 있다. 순수한 우리말로도 건축행위를 일컬어 집을 세운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다. 마치 물과 불을 사용해 쌀을 변화시켜 밥을 짓듯이 또는 시인이 마음과 정신을 거친 단어들을 모아 시를 짓듯이 건축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이 말은 건축의 각종 재료가 우리의 오묘한 정신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삶 터의 모습으로 나온다는 뜻일 게다. 라틴어에서 비롯한 ARCHITECTURE는 으뜸이나 크다는 뜻의 ARCH와 기술이나 학문이라는 뜻의 TECT가 결합되어 생긴 단어이다. 서양인에게 건축은 으뜸이 되는 기술, 큰 학문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영어 성경의 창세기 편에는 건축가를 의미하는 ARCHITECT에 정관사를 붙여 조물주 하나님이란 뜻으로 쓴다.
나는 건축이 공학의 일부로 취급되는 게 싫은 만큼 예술의 일부로 간주되는 것도 못 마땅하다. 물론 공학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건축이 어떻게 서 있는가라는 기술에 국한된 작은 부분일 뿐이며 또한 특별히 이해한답시고 예술의 한 부분에 꾸역꾸역 넣으려는 것도 건축을 눈으로 보는 대상으로 생각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건축일 수 없다. 건축은 모름지기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가리키며, 건축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조직하는 일이다. 따라서 건축을 굳이 다른 학문의 분류로 설명하자면 공학이나 예술 보다는 인문학에 가깝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떨어질 수 없고 다른 이들과의 사는 관계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왜 사느냐는 문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건축이기 때문이다.
누누이 강조하고 다니지만, 우리가 만든 건축은 우리의 삶을 또한 지배한다.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는 것도 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배를 받은 까닭에 닮아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따라서 좋은 건축에서는 좋은 삶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쁜 삶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건축을 만드는 것은 몹시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
세계적으로 가장 큰 건축 행사인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작년 주제를 직역하자면 ‘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인 것이다( the less aesthetic, the more ethic )’ 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예술 미학의 성취를 오랫동안 건축의 목표로 삼고 그 목적이라면 윤리는 하위의 가치였으며 심지어 도구로 전락시키기를 일삼아 왔던 서양인들이 윤리를 가장 좋은 건축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건축에서 윤리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의 시스템에 관한 것으로 무엇보다도 이는 건축이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땅에 서 있는 한 그 것은 우리 모두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은 문화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천민자본주의로 질주해온 우리의 현대사회에서 건축은 한낱 개인의 부동산일 따름이다. 신문의 문화면이 아니라 부동산 특집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의 건축은 축재의 도구이며 소유의 크기에 대한 척도일 뿐이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건축일 진대, 이러한 건축의 시스템에서 우리의 삶이 좋게 될 리 만무하다.
건축은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는 가치가 있다. 건축을 만드는 일, 집을 짓는 일이 이 땅에 윤리를 세우는 일과 다름 아님을 지각하는 일이 우리의 지속되는 삶을 위해 참으로 중요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