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보물창고-달동네

중앙일보

2001. 5. 10

윈스턴 처칠 경이 1960년 타임 지와의 회견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은 우리를 다시 만든다.’
그렇습니다. 건축을 하는 제가 확실히 믿는 것 중의 하나가 건축을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뀌고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좋은 건축 속에서는 좋은 삶이 만들어 지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쁜 삶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 간다는 것도 같은 건축과 공간에서 생활한 연유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건축은 참 중요합니다.

서울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건설활동이 활발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 세워진 건물을 보면 과연 우리가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쉴 사이 없이 떠오르게 됩니다. 거리에는 개발시대가 배출한 천민자본이 만든 배타적이고 과시적이며 폐쇄적인 건축이 즐비합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당연히 이기적이고 허영에 가득찬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관공서 건물은 아직도 권위적이어서 여전히 우리를 멀리하게 하고 집들은 모두들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어 그 속에서의 삶들이 파편적으로 보이며 똑 같은 아파트 속에 거주하는 이들의 삶은 어쩐지 복제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우울한 풍경에 불편한 심사를 내내 가지다가 약 10년 전 한 권의 사진집을 들쳐 보다 문득 가슴이 저려 오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김 기찬 선생이 찍은 사진을 모아서 만든 ‘골목 안 풍경(열화당 간)’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 속에 있는 사진들은 우리의 소외 된 이웃이 사는 동네이거나 개발시대의 뒤편에 웅크린 모습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위 달동네의 모습입니다. 남루하고 거칠며 보잘 것 없는 집들과 골목의 풍경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없는 감동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로 제 주변에서 잃어버렸던 이웃이 그곳에 있었고 잊었던 제 과거가 되 살아나고 있었으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다시금 회복되고 있었던 것 입니다. 놀라움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아직도 서울에 남아 있는 그런 동네를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었습니다. 금호동과 난곡동, 봉천동, 중림동, 중계동 등등 서울의 산자락을 뒤덮은 소위 불량 주거지구들, 그때까지 제 건축 참고서에서 완벽히 삭제되었던 그 남루한 동네들이 제 건축을 위한 더할 나위 없는 교과서가 되고 있었습니다. 서양의 장엄한 건축 걸작에서도 볼 수 없었던 교훈이며 지혜들이 그 달동네에 지천으로 널브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몇 가지만 열거하지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땅이나 집은 작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되도록 이면 같이 모여서 나눠 쓰려고 합니다. 바로 공동의 공간과 장소를 쉽게 만듭니다. 길은 단순히 통행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놀이터요, 노인들의 노인정이며 빨래를 말리는 곳도 되고 더러는 이 마을의 집회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이웃이 생겨나고 건실한 공동체가 자라게 됨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들은 새집을 짓지 않습니다. 고치거나 덧대어서 모자라는 공간을 채웁니다. 그리하면 과거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 바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단서일 거라고 여깁니다.
또한 그들의 집은 늘 열려 있습니다. 아래 동네에 있는 높은 담 속의 고립된 삶과는 다릅니다. 도시와 건축이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있습니다. 달동네의 집들은 대개 불편한 집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이 그들을 생각하게 하고 궁리하게 합니다. 너무 기능적인 것을 좇은 나머지 사유하지 않는 생활에 몸이 벤 우리들을 반성하게 합니다. 물론 이들의 집은 장식할 여유가 없어 단순하고 거칠지만 오히려 사는 이들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집들은 저 혼자 잘나지 않고 모두가 고만고만한 까닭에 모든 집들이 전체의 풍경 속의 부분으로만 있습니다. 소위 현대건축의 중요한 키워드인 건축적 풍경이 여기서 완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눈 오는 날 이 마을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하얀 옷을 입고 서로에 서로를 의지하듯 서있는 이 마을을 보면서,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답다는 그리스 에게 해의 산토리니 섬 마을 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여긴 적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노을도 가장 오래 볼 수 있고 달도 가장 먼저 뜹니다.

제가 이 달동네를 그대로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달동네의 환경은 아시는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위생적이나 안전상의 문제 등 만 보아도 재개발 되어야 합니다. 이미, 제가 앞에서 예를 든 달동네들의 대부분이 재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그 재개발의 형태입니다. 개발독재의 행패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의 고층 아파트들이 이 달동네의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렸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삶의 지혜가 사라지고 자본의 지배만 남은 것입니다. 아마도 오래지 않아 나머지 달동네들도 그렇게 변할 것입니다. 이제는 달동네는 책 속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골목 안 풍경’이 되어 우리에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이 달동네 마을들은 마치 건축의 보물창고 였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현대건축의 의문들 – 도시와 건축, 공간과 기능, 이미지와 형태 등에 대한 참 좋은 해답들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잊었던 전통건축의 흔적도 이 마을에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마을들의 모습에서 수 많은 건축의 비밀들을 알아 내었습니다. 그래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말을 붙여서 제 건축의 화두로 삼고 그 속에서 제가 그리는 건축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소득도 얻었습니다.
‘빈자의 미학’이 제 개인의 건축철학 만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미학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롭게 짓는 건축이 이러한 공동체적 삶을 고양시키고 절제된 형태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충만할 때에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런 건축이 참 아름다운 건축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건축에서는 반드시 아름다운 우리의 삶이 만들어지게 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