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윤리

건축문화

2001. 1. 26

설날 며칠 전 모종의 사업을 구상하는 건축주와 함께 일본의 북해도에 잠깐 다녀 올 일이 생겼다. 가는 곳이 도마무라는 지역인데 그 지명이 어쩐지 익숙하여 책을 뒤지니 안도 다다오의 그 유명한 ‘물의 교회’가 있는 곳이다. 이 건축을 방문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 이를 꼭 봐야 한다고 일정을 짜는 이에게 부탁하였는데 우리가 머무는 호텔 근처라는 회답이다. 볼 거리 숙제 하나를 뜻하지 않게 쉽게 해결한 듯하여 기분 좋은 여행이 되리라 여겼다.
7년 전 3월, 아시아 건축가들 중심으로 아시아 포럼이 사호로라는 지방에서 개최되어 이 눈의 나라를 처음 방문하고 끝 간데 없는 하얀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내내 생각나게 하였던 것을 다시 기억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이었던가.
지도세 공항은 7년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져 있었지만 이것도 역시 요즘 공항건축의 아류이어서 좋은 기분은 아니다. 공항을 빠져 나와 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여를 달려 숙소에 도착하는 동안 바깥 풍경도 지난 번에 느꼈던 아름다움 만은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7년 동안 이곳을 스스로 부풀려서 환상 속에 집어 넣고 있었던 게 틀림 없다. 여행이라는 것은 오리지날리티를 확인 시키는 일임인 동시에 환상을 다시 현실로 바꾸어 주는 시간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의 주변은 온통 스키장들이고 최근에 조성된 듯한 4계절 리조트 지역인데 건축을 만든 솜씨가 좋지 못하다. 풍광은 아름다운데 난 데 없는 타워와 유리집들이 함부로 솟아 있어 내심 북해도 시골의 적막을 기대한 나를 저으기 실망시키고 있었다. 20층의 숙소에서 바깥을 내어다 보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듯 망연 자실하고 만다. 바로 ‘물의 교회’가 스키장의 한 가운데 자작나무를 심어 인공림을 만든 후 그 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앞에는 또 다른 저층의 호텔이 놓여 있다. 마치 호텔의 부속건물 같이 보인다. 아, 이 현실의 광경은 그 유명한 안도의 ‘물의 교회’가 한적한 마을의 한 숲 속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믿음을 철저히 배반하고 있었다.
나는 만사를 제치고 먼저 저 교회의 실상을 보아야 했다. 교회는 5시 반부터 7시까지만 공개 된단다. 한 시간을 기다려 그 앞의 호텔의 로비를 통과하고 있는데 로비의 저편에 ‘물의 교회 신부대기실’이라는 영어 안내판이 나온다. 아. 이 교회는 가짜구나. 안도가 설계한 다른 교회처럼 그리고 일본에 흔한 가짜 교회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 가게 되어 있었다. 정교한 디테일과 엄정한 평면의 형식을 확인하고 제단 뒤의 유리벽을 통해 철재의 백색 십자가를 보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카셋트로 울려 나오는 성가가 있었지만 이 건축은 교회가 아니었다. 기독교의 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교회가 아니라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만은 그 신은 없었다. 이 교회에는 기독교도들이 모이지도 않으며 기도하지도 않는다. 다만 교회라는 탈을 쓴 결혼식용 임대 공간이며 관광객의 기념사진을 만드는 상업용 건물일 뿐이다. 불쾌감이 말 할 수 없다.

건축은 장소에 대한 해석과 주제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누군가 이야기 했었다. 나는 요즘 장소가 훨씬 더 우선 한다고 여기고 있다. 프로그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장된 프로그램을 가지는 것은 죄의 일종이라고 까지 여긴다. 바로 건축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이다. 위장된 건축은 위장된 삶을 만들 뿐이다. 건축의 윤리는 여기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작년 베니스 비엔닐레의 주제는 ‘ 덜 미학적인, 그래서 더 윤리적인 less aesthetics, more ethics’ 이었다. 나는 서구인들이 건축의 윤리성에 대해 논하게 된 것을 경탄하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출품된 건축들이나 상을 받은 건축들이 주제와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건축을 오브제로만 보는 이들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물의 교회’가 최우수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적 건축 아닌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많은 건축들이 아무리 현란한 미학을 갖고 있어도 그 건축들의 장소와 주제에 철저히 충실하면서 치열하게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그것이 건축의 윤리라는 것이다.
진정한 건축은 사상적 감성이며 보편의 토대 위에 선다. 그래서 건축이 어렵지만,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