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

중앙일보

2014. 1. 11

“지식인은 경계 밖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방해야 하는 자이다…. 그는 애국적 민족주의와 집단적 사고, 그리고 계급, 인종, 성적인 특권 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며…..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모험적 용기의 대담성에,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는 자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써서 서양의 제국주의적 편견을 날카롭게 비판한 지식인이었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1993년 BBC방송의 리스강좌에서 강의한 내용들을 모아서 ‘Representations of Intellectuals’이란 제목으로 출간한 책(한국어 번역본 ‘권력과 지성인’ 1996)의 이 문장들을 읽는 순간, 그때는 내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 검은 밤바다의 선원처럼 분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 삶이 궤멸 당하는 듯 전율하였다.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라니…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직능으로 가진다. 그 직능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수반함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를 타자화시키고 객관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가 설계작업에서 첫 번째 그리는 도면이 평면도인데, 이 도면을 보기 위해서는 시점을 무한대로 높이 올려야 한다. 급기야 신적 위치에 이르러서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니, 이 도면을 그리게 되는 건축가는 스스로를 세상의 경계 밖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다. 건축가의 직능은 항상 새로운 상황과 만나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건축주와 만나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게 되는 사용자와 만나며, 새 땅과 만난다. 그런데, 여기에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타성과 관습의 도구를 꺼내어 종래의 삶을 재현시킨다? 이건 건축이 아니다. 그냥 제품이며, 그래서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배반하는 일이며, 세상에 하나 뿐인 그 땅을 범하는 일이다. 그러니 건축가는 늘 새로움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경계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 소임을 파기하는 일과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변혁은 늘 자발적 추방자들이 주도한 것 아닌가. 예수가 대표적이다. 스스로를 광야로 추방하여 유대교의 관습을 비판하고 로마총독의 권위를 따르지 아니했으며 소외된 자들과 약한 자들을 껴안고 사랑과 평화를 나누다가 모든 이들이 메시아로 추앙할 때, 다시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아 불멸의 고독으로 추방하고 말았다. 석가모니도 마찬가지였다. 왕궁 밖의 자발적 추방자가 되어 제도에 묶여 있는 이들을 향해 스스로 번뇌를 끊으라고 했다. 해탈이란 그렇게 추방되어 얻게 되는 자유일 게다. 수 없이 많다.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우리의 삶을 속박에서 자유하게 한 이들 모두가 그런 우직한 삶의 태도를 갈망한 까닭이었다.

오늘날의 사회에 혁신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 그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 문장으로 그의 생애를 설명하며 감동을 안겼다. ‘우직하라, 그리고 갈망하라(stay foolish, stay hungry).

그의 말을 다소 바꿔 전하고 싶다. ‘stay out, stay alone’. 바깥에서 머무르며 홀로 됨을 즐기는 삶, 이게 진정한 지식인의 태도며 바른 건축가가 사는 방법일 게다. 특별히, 편가르기를 강요하는 이 사회, 내가 되뇌어야 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