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이란 무엇인가

2007. 6. 05

도시는 익명성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이다. 즉 혈연을 바탕으로 한 농촌과는 달리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다. 성분도 다르며 출신도 다르고 사상이나 이념, 종교도 다른 이들이 한 공간에서 모여 산다는 것은 애초에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옛날의 도시들은 성내에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들어 비교적 같은 가치와 신분을 갖는 이들을 묶어 공동체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를 전지구적 이념으로 공유하는 도시가 대부분인 만큼 누구도 그 도시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규약이 필연적이다. 법이나 상식 등이 그것들일 것인데 이들은 추상적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체화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위험한 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공공영역의 존재방식이다.
사실 한 도시의 선진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도시에 서 있는 건축물의 높이나 모양에 결코 있지 않다. 건축물 자체는 서로 아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그들만의 고유한 규약 아래 존재할 터이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은 그 건축물이 한정하는 외부공간의 형상이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그 외부영역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도시공동체의 모습이 정해진다.
건축이 우리를 다시 만든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도시가 우리 사회를 만든다는 선언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직선의 주축을 가지고 계급적으로 도시영역이 정해져 있으면 봉건적 삶을 살 수 밖에 없으며, 도시의 기능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으면 전제적 삶을 살게 되고, 우리의 아파트 단지처럼 집단적으로 서로 담을 두르고 살면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 분쟁의 도시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민주적 사회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 도시의 공공영역이 민주적 모습을 갖추는 일이 우선 필요한 일이다.
흔히들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공공영역에 있는 시설물의 디자인 수준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간결하고 우아한 가로등, 경쾌한 버스정류소, 낭만적 벤치, 첨단의 전화박스, 사려 깊은 도로포장, 절제된 색채 등등 우리의 시각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를 세련된 도시민으로 느끼게 하는 이런 가로시설물들은 가지는 일은 긴요하다. 이런 높은 수준의 공공시설물들이 공적 영역에 노출되는 민간 시설물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결국 우리의 시각적 환경은 우리를 대단한 즐거움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공공공간의 형성방식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설물들의 디자인은 시각적이고 말초적이지만 공공영역의 공간형식은 구조적이며 심층적이다. 전제적이고 봉건적 도시공간에 세련된 디자인만을 갖다 부친다는 것은 결국 그 전제성과 봉건성 만을 더욱 강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도시공동체의 목표가 무엇인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들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민주적 문화적 소양인으로서 자기 완성을 해나가는 데 있지 않을까. 여기에 동의한다면 공공디자인은 예쁜 효과를 얻기 위한 시각적 작업의 차원을 넘어서야 하며 보다 본질적이고 원초적 질문에서 그 탐구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