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의 가치에 대한 질문 – 파주출판도시 1차 건축가 그룹 전시회를 열며

2000. 3. 14

지난 20세기는 세기말적 위기를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믿음으로 극복하며 시작한 시대였다. 이 모더니즘은 그 이전 세기에 이루었던 시민혁명이 가져다준 정신적 토대와 산업혁명이 제공한 기술적 바탕 위에 서서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 주면서 무한한 번영을 꿈꾸게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역사상 어떤 다른 세기보다도 더욱 참혹한 재앙을 기록하며 마감하고 말았다. 양차 세계대전의 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념으로 인한 분쟁, 종교끼리의 반목, 민족간의 대립, 계층간의 불화는 우리의 앞날을 지극히 회의하게 한 것들이다. 심지어 절제하지 못한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착취한 결과 드디어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추방되는 위기를 맞이하여 있는 게 우리의 지금이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전 지구적 경쟁체재에서 이 세계는 바야흐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 세계화의 바람은 국가도 개인을 보호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를 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삶 터에 살아 남기 위해 도구가 목적이 된 물신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사회와 사회의 구성원에 대한 불신과 배타적 습관을 누적케 하여 우리를 더욱 파편화 시키고 단말마적 삶을 살게 한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인식은 집단적 이기주의를 급속도로 잉태하여 우리 사회를 닫게 만들고 그들 사이의 갈등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우리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것은 정보화라는 새로운 단어이다. 더욱 빠르고 유용한 정보의 획득이 새로운 삶의 가치라는 과신은 우리를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어 우리를 현실로부터 이탈시키고 우리를 분열시켜 결국 파편화 할 위험이 혹 있지 않은가. 이미 그 현상은 우리 가까이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것은 함정이다.

파주의 습지 위에서 만들어 지는 도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태어나는 새로운 공동체이다. 자유로 건설로 메꿔진 갯벌 위에 다른 곳의 흙을 날라 부어 그 위에 세우는 이 도시의 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층된 삶의 흔적은 거의 없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도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시가 낯선 장소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가 되길 희망한다. 더불어 앞으로도 무한히 지속되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따라서 이 새로운 도시가 토대로 삼는 가장 큰 장치는 우리의 선한 기억이다. 이 선한 기억이야 말로 우리의 존재를 굳게 할 근거가 된다. 우리를 존재케 하는 근본적인 명제들, 이를 공동성( Communality )이라 하자.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모여 삶을 이루면서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확인하는 열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도시와 건축, 바로 이 공동성이야 말로 우리가 세우는 새로운 도시에서 추구해야 할 첫번째 과제가 되며 이제 우리들 스스로 이 문제에 대답을 하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