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폐허

국방일보

2003. 5. 22

지난 해 몇 사람들과 남부 프랑스의 수도원 건축을 테마로 여행한 적이 있다. 렌트한 차량으로 르 푸이 앙 벨레 라고 하는 작은 도시를 지나는 길이었다. 도시를 빠져 나와 시골길을 접어들 무렵 아주 작은 집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돌로 만든 그 집의 지붕 위에는 작고 여린 십자가가 붙어 있어 우리 모두가 그 집이 아주 작은 교회당으로 생각하고 차를 멈춰 탐방하기로 했다. 열 평에 불과해 보이는 그 교회의 목재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집 모양이 하도 근사하여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에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근처 동네를 서성거렸는데 그 마을의 집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운 모양과 격조를 갖춘 것이 아닌가. 놀라왔다. 돌을 쌓아 올린 솜씨하며 옆 집과 가지런히 붙어 있는 모습, 깊어지는 길의 풍경 등 어디 하나 군색한 곳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불과 3,40채 정도의 호수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몇 집은 그냥 빈 집이었다. 물길도 유려한 계곡이 옆에 있어 주변의 산세도 아름답고 마을의 형세도 오붓한데 왜 사람이 보이질 않는 것인가. 마침내 불어에 능통하고 호기심 많은 일행 중 한 사람이 집 하나를 골라 들어가서 육십 중반의 한 아주머니를 불러내어 묻기에 이르러 우리는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이 마을의 역사는 약 백년이 되었는데 한 가족이 인근 도시에서 이주하여 집을 지은 이후 공기 좋고 풍광 좋은 이곳에 너도 나도 몰려들어 금세 30채 가량의 마을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라고 생각한 곳은 교회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 공동으로 빵을 굽는 곳이며 모두들 그 빵 굽는 곳을 중심으로 공동의 마을생활을 아름답게 가꾸어 왔다고 한다. 공동 빨래터와 그 옆의 아담한 마을회관, 공동작업장 등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역사가 백년 가까이 유지되었는데 약 십년 전 이곳의 풍광을 탐낸 낯선 사람들이 이주를 해오기 시작하면서 이 공동체는 균열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곳의 풍광만을 탐했을 뿐 이곳의 공동체에 속하기를 거부하여 독단적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생활에 영향을 받아 이 마을은 점점 그 유기적 관계를 잃고 급기야 빵을 각자의 집에서 굽게 되면서 공동체는 와해가 되고 만다. 빵 굽는 집은 폐쇄되고 마을회관은 문을 닫았으며 빨래터에는 그 유적으로만 남게 되었다.
결혼 때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노인의 말에는 옛날에 대한 짙은 향수가 묻어 있는 걸 우리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빵을 굽고 세탁기로 빨래를 하며 텔레비전으로 세계를 보는 편리한 지금이지만 결단코 옛 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이상 빵을 굽지 않게 된 그 작은 집은 교회가 아니라 공동체의 폐허이며 현대의 유적이었다.

우리에게 빵 굽는 공간은 어디인가. 우리의 공동성을 알려 주는 곳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어디에서 우리의 이웃들을 확인하는가.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서 우리 일행들은 끊임없이 토론했지만 우리의 현대적 삶에서 공동의 장소를 발견할 수 없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높은 담 두르고 철망 치고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한 우리의 주택들, 이는 진정한 마을이 아니다. 우리는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붙어 살 뿐 아닌가. 마치 연결되지 않는 군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