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도시 장백의 밤

2000. 10. 03

혈연이 중심이 되어 모여 사는 시골의 부락과는 달리 도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해를 같이 하는 몇몇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겨나서 성장하고 변화한다. 때로는 쇠퇴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도시는 역사적 요구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집단이며 조직이다. 이러한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대부분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며 추측하고 머뭇거리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산다. 그리하여 도시에는 기회와 희망이 널려져 있으나 탐욕과 좌절도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한 도시의 풍경은 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얽히고 설킨 삶이 오랜 시간을 두고 타협하며 만들어진 기록이며 나아가서는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 된다. 그들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지만 또한 이 도시는 그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여 결국에는 그들의 삶을 조정하고 바꾸게까지 하는 중요한 장치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좋은 도시풍경에서는 아름다운 삶이 샘 솟듯 하게 되기 마련이나 척박한 풍경의 도시에서는 거친 인성이 만들어 진다. 도시의 풍경은 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존재방식이며 그들의 삶 자체인 까닭이다.
13박 14일 동안 장대한 다큐멘트 영화를 보듯 우리는 수 많은 도시들을 지났다. 거의 한번도 역사의 중심에 서 있어 보지 못한 도시들이며 소위 변방으로 분류되었던 곳들이었다. 이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국경에 면한 도시에 집중된다. 국경의 도시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이 곳들은 필시 특별한 구조와 풍경을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서해 쪽에 위치하여 한반도와 가장 긴밀히 연결되는 상업도시 丹東, 고구려의 흔적을 이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도시 集安, 압록강의 물길이 대륙으로 깊이 들어 와서 만들어진 교역도시 臨江 그리고 장백산맥 줄기 속 항일 유격의 무대였던 長白, 두만강에서 북한과 연결되는 圖們 등이 그러한 국경의 도시이다. 이들 도시는 강 건너 북한에 상대가 되는 도시를 가지고 있다. 신의주와 만포, 중강과 혜산 그리고 남양이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각각 다른 도시가 아니라 원래가 같은 전통과 관습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강 건너 마을이었을 것이다. 이곳을 우리가 지금 가지 못해도 그렇게 유추하여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들 강변 국경의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두 개의 명확한 축을 가지고 있다. 그 첫번째는 강변에 평행한 수평의 축이다. 지형의 영향으로 강변을 따라 발달할 수 밖에 없는 이 도시들은 전형적인 선형 도시의 형태로서 강변에 면한 부분이 이 도시의 가장 중심이며 번화한 거리가 된다. 集安은 고구려가 돌로 성곽을 쌓아 직사각형의 도시를 만들었음에도 이 도시는 현재 그 성곽을 뚫고 강변을 따라 평행으로 팽창하여 동서 방향으로 도로가 발달하였고 이 도로가 이 도시 생활의 주된 축이 되고 말았다. 주거지든 상업지든 이 선형의 도시 속에 세워지는 건축도 동서 방향으로 긴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들 도시의 중심은 도시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 속에 있는 셈이다. 강을 통한 교통이 더욱 편리하던 예 시절에는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또 하나의 다른 축은 상대 도시를 연결하는 수직의 축이다. 다른 나라들의 국경에서는 이 수직의 축은 교역의 중심축이 되어 이 축선 상의 도로변은 곳곳이 활기에 넘치게 되지만 우리의 이 국경도시들은 그 통행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수직의 축은 강한 상징성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건축들이 이 수직의 축을 움켜쥐고 서서 이 국경도시들의 정치적 행정적 중심가로를 형성하고 있다. 이 도로는 다분히 권력 중심적이고 관료적이어서 이 축이 발달한 도시는 경직된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국경도시 감상법을 가지고 丹東과 集安과 臨江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들 도시의 풍경은 중국의 개뱡정책에 따라 자본주의 행태가 그 색채를 더해 가고 있었다. 마치 건설현장처럼 된 도시는 들떠 있으며 미래에 대한 거친 꿈들이 난무하는 듯 하다. 본시 국경의 도시는 자못 낭만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팽배한 곳이다. 천민자본이 이와 영합하면 퇴폐와 향락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게 마련인가. 시내 곳곳에 성병 퇴치를 호소하는 벽보를 붙여야 하는 이들 도시의 풍경은 그래서 나에게 짐짓 우울함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臨江을 지나 長白을 향하는 길은 가파른 계곡들과 그 속의 물줄기들로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든다.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 건너 우리의 누이와 형제가 사는 북녘의 집들과 산하를 보면서 솟아 오르는 그리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이 한 많은 이산가족이기 때문 만은 아니리라. 이윽고 장백산맥의 한 줄기에서 조감도를 보는 듯 長白을 내려다 보게 되었을 때, 동시에 강 건너에 혜산을 보았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長白과 혜산. 이 두 도시의 풍경은 너무도 다르다. 흡사 두 가지의 원형질적 도시를 보는 듯 하였다. 長白의 가로망은 모두 압록강에 평행하고 있음은 물론, 거의 모든 건축이 일률적으로 강을 향하여 일자의 형태로 나란히 서 있다. 이 도시는 특별한 중심을 갖지 않고 그냥 펼쳐져 있는 까닭에 도시의 전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개체나 부분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서로가 동등하며 집합적이고 자발적인 삶의 모습인 것이다. 반면 멀리 혜산은 완벽히 전제적이고 중심적인 구조를 가졌다. 보천보전투 승리기념탑이 가장 높은 곳에 솟아 도시의 모든 풍경을 제압하고 강 쪽으로 강력한 축을 형성하면서 넓고 곧게 뻗은 중심가로에 의해 모든 도시의 조직이 장악된 모습이다. 불과 30여 미터의 폭의 압록강은 여기서는 강이 아니라 시내이며 혜산은 내 앞 마을이어서 필시 혜산의 본래 모습이 長白의 지금 모습이었을 것임을 짐작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건너 마을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도시 구조가 변하여 저곳의 삶이 이제는 長白과 다르게 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도시가 세워졌으련만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든 이들의 모습은 국경의 의미를 내게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우리에게 국경은 지역의 경계가 아니라 제도의 경계이며 삶의 경계였던 것이다.
長白의 도시풍경에서 나는 짙은 친밀감을 느꼈다. 사는 이들이 대개 조선족이며 우리말의 간판이 즐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도시와 건축은 내가 어릴 적 살았던 피난민 촌락과 다르지 않았다. 누추하고 작은 공간들이지만 서로 잇고 덧대고 나누며 사는 모습들. 우리에게는 이미 잊혀진 이 풍경이 이들의 도시 주거에 여전히 농밀히 녹아 있는 것이었다. 아직 내륙교통이 원할 하지 못한 까닭에 천민자본의 탐욕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넉넉하지 못한 물질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삶은 압록강에 비추인 보름달처럼 건강하고 풍성하게 보였다. 아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가 아닌가.
혜산의 밤에는 기념탑의 조명 만 있으나 長白은 반딧불 같은 여린 불 빛들이 맑은 밤을 뚫고 있었다. 풍경은 아름다운데 괜스레 서러움이 인다. 압록강변 국경의 밤은 그렇게 사위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