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장의 이름을 아십니까’

동아일보 문화

2002. 7. 31

21세기로 진입하기 얼마 전, 한 외신이 전해 준 프랑스에 관한 소식을 듣고 못내 씁스레 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세기를 기념하여 프랑스는 새해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 인문학에 관한 강의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념 폭죽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레이저 쇼 같은 깜짝 이벤트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국가 문화의 수준 차이라니….나는 자괴감 속에 한 동안을 있어야 했다.
프랑스의 국가문화를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거론하곤 한다. 14년간 프랑스를 통치한 그는 그의 전공인 문학에서 뿐 아니라 건축에 대해서도 탁월한 안목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재임 시절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문화적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는데 위원회나 하급관리에 맡기는 게 아니라 직접 관여하였다. 간혹 독단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설계를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에게 맡겨, 낡은 루브르 궁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게 하였고, 파리의 도시를 무한히 확대시킨 신 개선문은 덴마크 건축가를 뽑아 탄생시켰으며 국립도서관은 약관의 건축가를 직접 선택하여 20세기 건축사를 다시 쓰게 하였다. 그 도서관은 그의 문화적 업적을 기념하여 미테랑 도서관으로 공식 명칭을 갖게 될 만큼 그의 건축과 문화에 대한 혜안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가 죽을 때 밝혀진 숨겨 왔던 딸의 등장마저 불륜의 사건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되고 심지어 동경까지 하였던 것도 그가 뿌린 짙은 문화적 향기 때문이었다.

파리 시내의 공공 건축물은 참 우아한 품격을 지녔다. 도로에 있는 가로등이나 공중전화 부스, 벤치 심지어 쓰레기통 까지도 아름답다. 몇 년 전 완공된 상젤리제 거리의 시설물을 보면 그 섬세하고 사려 깊은 디자인에 탄복을 하게 된다. 문화도시에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런 공공 시설물들의 디자인은 누가 담당했건 그 바탕은 그 도시의 문화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공무원들의 안목이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엄격하면 맥도날드 상점도 파리 시내에서는 전 세계의 도시를 유린하는 시뻘건 색을 쓰지 못하겠는가. 최고 공직자의 문화인식이 탁월하니 하위 공직자들의 안목이 키워지지 않을 수 없고 이들의 확신이 국가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이른 바 한 국가의 체통은 공무원의 문화지수가 그 요체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자. 거리의 공공 시설물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저급한 문화 도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기괴한 모양의 가로등이며 희한한 택시정류장, 유치한 공중전화 부스, 가짜 나무 쓰레기통, 온갖 키치의 집합소가 된 공중변소,,,,,,공중변소 유치하게 꾸미기 경쟁을 하더니 어떤 곳은 비데까지 갖다 놓는 천박성을 자랑까지 한다. 이게 우리의 도시인가. 창피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 프로젝트들은 거의 모두 입찰이나 현상공모 형식을 취해 선정되고 시행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널리 모집하여 가장 좋은 안을 선택하는 것은 참 좋은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이 공무원들이 결정의 책임을 떠 넘기기 위한 방편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말 좋은 건축 문화를 토론하고 만드는 일보다 그런 공모를 통과하기 위한 방법이 전문화가 되어 건축문화가 아니라 건축 비즈니스의 결과들만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소신을 가진 공무원은 요주의 인물이 되어 간 곳 없고 보신에 급급한 이들이 우리 문화 시스템의 보루라면 우리의 문화 입국은 요원하다.

며칠 전 누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누구인지 물어왔을 때 문화인을 자처하는 내가 그 중요한 분을 왜 모르는지 나도 궁금해 하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공채로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대한민국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최고의 존경을 받을 분이 앉아야 할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 스스로 앉기를 원하여 자료를 꾸며 원서를 제출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심사 받는 모양을 자처해야 하는 일은 넓은 덕망과 높은 학식 있는 분이 할 일이 아니다. 틀림없이 이는 공무원들이 그 책임을 지기 싫어 하여 만든 꾀일 것인데, 국가의 체통을 이렇게도 구기는 과오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러니 내가 관장의 이름을 알 턱이 없다.
미테랑 대통령은 못 되더라도 문화를 역행시키는 정치 지도자를 이제는 뽑지 말아야 한다. 요즘에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들을 출신 지역이나 사상이 아니라 문화의 잣대로 보면 누가 나은가. 어둡고 어둡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