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인간과 말 - 서평

2013. 7. 05

지금도 그렇지만, 경제가 좋았던 90년대 초는 물신에 사로잡힌 건축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기괴한 형태와 색채로 이 땅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던 때였다. 나는 그때,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김수근선생이 창설한 ‘공간’이라는 설계사무소를 나와서 내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학교졸업 후 15년간 김수근건축에만 빠져있었으므로 나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처럼 고독하였다. 어떻게 건축을 해야 하는지 또는 왜 해야 하는지, 근본적 질문들이 내 15년 경력을 비웃으며 나를 좌초시키고 있을 때, 우연히 책 한 권을 서점에서 발견하게 된다. ‘침묵의 세계’. 펼쳐보니 93년 7월에 나온 초판 2쇄 본이었고 1쇄는 무려 85년이라고 적혀있었으니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이 책에 빠지고 만다. 특별히 요란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침묵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마치 경전처럼 적고 있었다.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라는 문장을 부제로 펼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문장을 건널 때마다 긴 호흡이 필요했다. 두꺼운 책이 아니었지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야 거진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라는 말미의 글에서는 또 며칠을 머물고 말았다.

결국 이 책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단어를 내 평생의 건축화두로 삼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이 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 책에 대해서는 논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직접 읽어주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막스 피카르트는 고뇌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이 책을 소개했다. 그럴 정도로 이 책은 때로는 잠언처럼 혹은 시처럼 논리구조를 넘으며 침묵을 말하지만 그의 말에는 무서운 확신과 강력한 호소가 있었고 그 침묵은 ‘일체의 오성을 초월하는 평화’를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막스 피카르트는 1888년에 태어나 1965년에 죽었으니 현대사의 격동기에 생애를 걸친다. 그는 의학을 전공했으나 의사의 기계적 삶에 회의를 느끼고 가톨릭에 귀의하여 영성에 대한 사유에 바탕을 둔 글을 발표하는 신학자이자 사상가로 말년을 보내었다. 어떤 철학계통이나 아카데미적 사상가 계열에 속하지 않았다고 여겼을까, 그가 죽었을 때 ‘디 차이트’지는 부고기사에서 “관조자”라는 이름을 그에게 붙이며, “다른 이들이 사실만을 볼 때에 그는 통찰을 통해 예리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관조하는 능력을 갖추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인간과 말’은 그가 죽기 10년 전에 취리히에서 발표된 책이다. 이 책 이후에 불과 두 편의 짧은 글만 발표했다고 하니 그의 마지막 저작인 셈이다. 이 책은 1948년에 발표된 ‘침묵의 세계’와 대단히 긴밀하다. 그 후편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다른 버전이기까지 하다. “침묵으로부터,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해서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지 그래서 결국 우리는 누구인지… 언어가 아닌 소음만을 내뱉곤 하며 이 거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다시 묵직한 성찰 속으로 몰아 넣는다.

“언어는 인간에게 앞서 주어진 것이다….인간은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해지는 존재다…” 그에게 언어는 매체가 아니며 이미 주체적 존재이다. “하나의 말을 들으면 하나의 빛을 보는 것이다….” 말이 빛이라. 그는 다시 침묵에 대해 말한다. “침묵은 말에 속하며 그 침묵을 통해서 말은 건축으로 나아간다…..건축은 말 속에서 함께 침묵되며, 따라서 고독하지 않다.” 아, 말과 침묵은 서로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언어가 아닌 ‘잡음어’에는 침묵이 없다고도 했다. 이윽고 다음 문장에서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말은 죽음마저 관통해야 하며 죽음 가운데서도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말은 삶을 모두 통과한 후 죽음으로 들어서기를 원한다. 삶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하여 인간은 말로 인하여 불멸이 된다….”

무섭지 않은가? 우리가 일상에서 뱉는 말이, 사실은 우리가 지배하여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가 원래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가 언어의 주인이거나 더욱 현명한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라 머리 속에 내내 머물렀다. 요한복음 1장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종교적 영성에 몰두한 저자인 만큼, 언어가 곧 진리라는 이 경외스러운 구절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것이며 이 책의 글들은 그에 대한 해설적 송가 아닐까? 더구나 이 책은 휠더린의 시를 머리글로 인용하며 시작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침묵의 세계’ 때문이었을 게다, 이 책을 덮는 데는 시간이 오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여태 쏟아낸 말들에 치를 떨어야 했다.

 

피카르트 특유의 영성적이며 단정적이어서 해독하기가 쉽지 않을 글이 소설가 배수아의 깔끔한 문장으로 번역된 게 너무 다행스럽다. 이 책의 번역을 간절히 기다려 온 독자로서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