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슬픈 사실

2004. 4. 12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 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