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학이 아닌 윤리의 시대

경향신문 '오피니언'

2021. 1. 26

지난 해 12월14일자의 타임지는 숫자 2020을 크게 쓰고 그 위에 붉은 색 가위표를 덧댄 후 아래에 “THE WORST YEAR EVER”라고 쓴 도발적 이미지의 표지로 발간되었다. 사상 최악의 해, 마치 저주를 퍼부은 듯한 이 표지 디자인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였을 게다. 아직도 그 정점과 종점이 어디쯤인지 모른 채 맹렬히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더믹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전세계인 모두가 매일 이 공포스러운 질병의 추이와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우리에게 마치 미래를 꿰고 있는 듯한 해답들도 파편처럼 난무한다. 세기말의 풍경이 이런 것일까?

전대미문? 아니다. 타임지의 진단이 민망하게도 이보다 더한 위기가 백년전에 이미 있었다. 바로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이다. 그 당시 세계인구가 16억이었는데 1년만에 3분의1 가까운 5억명이 감염되고 무려 5천만명이 사망했으며 그 대부분이 20세에서 45세 사이의 젊은 층이었다. 천재적 화가 에곤 쉴레도 이제 좀 명성이 붙으려 한 불과 28살의 나이인 이때 이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갓 결혼한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태중의 아기와 함께 바로 사흘 전에 먼저 떠난 바 있었으니 참으로 비극이었다.

병의 발상지가 아닌데도 스페인 언론과 정부의 적극적 대응으로 스페인독감이라 불린 이 질병은, 지금 78억의 인구에 1억명의 확진자를 기록하며 노년층이 주된 2백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코로나19와는 비교가 안되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 당시 천8백만영이 안되는 인구의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14만명이 죽었다니, 이 스페인독감이야말로 사상 최악의 환란일 게다. 게다가 그 당시는 1차세계대전에 휩싸인 때다. 밀집된 막사 속 젊은 병사들의 감염과 죽음은 1914년에 촉발된 후 질질 끌던 전쟁의 종식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6백년간 유럽을 통치하던 합스부르그왕조의 오스트리아제국이 멸망하면서 제국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대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모더니즘. 위키피디아는 20세기를 지배한 모더니즘이 출발한 해를 1918년이라고 적시한다. 이미 20세기 이전에 발생한 프랑스 시민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정신적 물질적 자유를 획득한 민중은 이전의 질서를 거부하고 있었으나 기존 체제는 지나간 시대의 파편을 안간 힘을 쓰며 붙들고 있었다. 기계문명의 시대로 진입했지만 사회는 고전주의 네오고딕 네오바로크 등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방향을 잃었고, 신흥부자들은 귀족놀이에 탐닉하며 퇴폐와 향락이 사회 전반에 넘실거렸다. 문화비평가들은 이를 세기의 종말(Fin de siècle) 혹은 세기말의 위기라 불렀으니, 스페인독감은 이런 구체제를 단연코 떨치게 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거미줄 망처럼 얽혀 환기와 채광이 어려운 중세의 도시구조는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대도시는 기회를 잡기 위해 몰려든 노동자들로 인구가 폭증하여 골목마다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런던의 경우, 작은집 한 채에 마흔 명, 방 하나에 열명이 거주했으며 어둡고 습기 찬 지하의 주거도 늘 붐볐고 심지어 돼지우리에서도 살았다고 하니 전염병 창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가 된 르코르뷔제(1887-1965)를 비롯한 젊은 건축가들이 ‘현대건축국제회의(CIAM)’를 결성하며 도시와 건축을 혁명적으로 바꾸기 위해 나섰다. 우선 이들은 최소한의 주거단위를 제안하고 도시를 거주와 노동, 교통 그리고 여가라는 네 개의 부분으로 재편하여 토지의 효율을 높이고 관리를 용이하게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 모든 현대도시들의 공간구조를 이루는 주거지역 공업지역 상업지역 등 용도지역지구제의 바탕이 된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를 앞세우며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 된 모더니즘에서 기능과 효율은 도시와 건축의 절대적 계획기준이었으며 이 기준으로 만들어진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였다. 20년 후, 30년 후의 행복을 약속한 보랏빛 청사진으로 새로운 도시들이 속속 등장했고 옛 도시들도 새 시대를 꿈꾸며 불도저로 과거의 흔적을 지웠다. 결국 번쩍거리는 유리로 밀폐된 거대건축들이 밀집하며 나타난 풍경은 현대도시의 상징이 되어, 기회를 찾으려 몰려드는 인구로 현재 전 세계인구의 55%가 도시에 산다. 이는 20세기 초 도시인구 비율 10%에 비하면 그야말로 폭증이었지만 21세기와 더불어 시작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도시인구 증가 또한 미증유여서 2050년에는 75%가 도시에 살게 된다고 하니, 지구 전체의 도시화(Conurbation)가 바야흐로 목전에 있다.

후유증은 진작부터 나타났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빈부격차, 계층갈등, 인종차별과 도시범죄는 상용어이며 일상사가 되었다. 기후변화로 치닫는 환경파괴는 말할 나위가 없다. 환경보호를 외치는 소리는 지나는 투정으로 여길 뿐, 산림파괴, 대기오몀, 해양오몀, 핵폐기물 방출 등 갖가지 방식으로 틈만 있으면 온 땅을 파헤치고 들쑤시고 오염시켰다.

뭔가 찜찜하고 두렵던 차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다시 세상을 덮친 것이다. 이는 필연적 결과였고 참고 참았던 자연의 무자비한 복수 아닐까? 모든 게 멈췄다. 마치 재난영화처럼, 생사가 갈리고 모두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거리를 둔 풍경. 유난히도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혹독한 이 환란이지만 돈 많은 이들은 안전을 찾아 사회를 멀리하며 절망의 간극을 더욱 벌린다. 사회는 간신히 온라인으로 지탱되어 어디가 가상이고 무엇이 실제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리고 모두들 빨리 백신을 맞고 이에서 벗어나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옛 일상의 회복. 그렇게 될까?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환란이 종식되어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학자들의 예언은 지난 역사의 교훈을 깨닫는다면 옳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려면 나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옆 사람과 주변, 우리 모두가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진단은 이미 있었다.

21세기가 시작된 2000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가 내건 표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 (Less Aesthetic, More Ethics)”였다. 윤리라니…… 내가 아는 한 서양건축사에 윤리는 등장하지 않는 단어였다. 윤리는 우리들 선조들의 집 짓는 방식이었으니 자연과 인간 사이, 나와 다른 이 사이의 관계로 건축을 만들었다. 그러나 서양인들에겐 오로지 자신의 존재 만을 위한 미학이어서 주변을 무시하고 나타난 스펙타클한 도시풍경과 홀로 솟은 랜드마크는 20세기 시대정신의 승리로 기록하곤 했는데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의 미학을 좇는 것이 ‘조국근대화’인줄 알던 지난 시대 우리도 윤리를 버렸는데, 이제 와서 미학이 아니라 윤리가 맞다니… 이 전시회의 주제전에 초대된 나는 뜨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표제는, 실은 인류학자이며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1935-)가 인간의 이성에 경도된 모더니즘을 비판하며 도시는 “이미지보다는 이야기가, 미학보다는 윤리가, 완성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었다.

윤리의 건축, 윤리의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이 20세기의 미학에서 새로운 삶의 윤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의 구호에 응답한 건축가를 그 전시회에서 나는 보지 못했다. 그만큼 윤리는 서양의 건축가들에게 생소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또 다른 세기말에 다다른 지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절박한 명제이며 이 문제에 답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소위 뉴노멀의 바탕일게다.

“좋은 집에서 나만의 행복을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나누며 섬기는 사회”. 자신을 녹여 빛과 소금이 된 순교자 신석복을 기리는 명례성지를 만든 이제민신부의 코로나시대를 향한 당부처럼 그런 윤리적 삶을 살게 하는 건축과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내 모자란 글재를 잘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이 명제를 다루고자 이 칼럼 연재를 덜컥 맡았는데, 벌써 그르칠 조짐에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