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헌

2000. 11. 18

수백당(守白堂)을 지은 지 일년이 되어갈 무렵 집 앞의 한 필지에 일정 면적의 건물을 법적으로 지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지목을 변경할 때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마침 그림을 그리는 수백당 안주인의 작업 공간이 더욱 필요하게 되어서 이를 작업실로 쓰기로 하고 20평의 건축 설계를 다시 의뢰 받게 된다.
수백당의 동편에 위치한 땅은 심하게 경사진 곳이며 더구나 오동나무 네 그루가 필지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무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수백당 주인인 현초(玄樵)선생은 마지 못해 한 그루는 잘라도 된다고 내게 미리 허락을 하였으나 나는 가능하면 자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때 이 수백당에 부속되는 새로운 한 칸 집의 이름을 동헌(桐軒)이라고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짓게 된다. 따라서 건물의 배치는 주어진 필지의 경계 내에서 오동나무 네 그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으로 20평을 채우니 자연스레 평면의 모양이 결정되게 되었다. 오동나무를 피해서 구부러진 평면은 하나의 공간이지만 적당히 내부공간을 구분하게 하고 지세를 따라서 공간이 흐르는 듯한 모습을 만든다. 전체 덩어리도 지세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수백당의 입구에 서서 보게 되면 이 동헌은 나중에 눈에 띄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 보이는 곳은 주로 앞 산의 허리이고 먼 산도 부분만 보일 뿐이었다. 수백당 본채에서 멀리 있는 아래 마을과 아스라한 북한강의 자태를 볼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풍경을 가진 것이다. 어쩌면 수백당 본채가 일상적 공간이라면 이 동헌은 비일상적 공간으로 구분될 수 있다. 따라서 비일상적 공간을 위하여 지극히 계산된 개구부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주변의 잡스러운 풍경을 자르게 되었다. 결국 이 집의 안에서 밖을 쳐다보면 적막 강산에 놓인 것처럼 된다.
애초부터 이 동헌의 재료는 수백당의 흰 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였었다. 이 집마저 흰색의 벽이 되면 안 그래도 크게 보이는 수백당이 원래 규모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보일 것이 틀림이 없었다. 또한 이 집은 단시일 내에 지어야 하는 공기와 현장의 사정도 있어서 건식 공법을 택하여야 했으므로 구조와 외벽재료를 철재로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이는 요즘 코르텐이라는 내후성강판에 대해 매료되어 있는 나의 개인적 취향이 강력히 작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수백당 본채에서 오후 늦게 동헌을 보면 석양을 받은 코르텐의 표면에 검붉은 색조가 오묘하게 빛날 것을 상상한다. 그것은 신비이다.

이 집이 거의 끝날 무렵 현초선생 부부의 桐軒에 대한 촌평이 나를 몹시 즐겁게 하였다. 이 새로운 집이 이 비탈진 장소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일부러 이 말을 하였다 하드라도 이 분들은 참으로 내가 듣기를 원하던 말을 골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