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아파트

중앙일보 '중앙시평'

2017. 10. 28

중국 허난 지방에 야오둥(窯洞)이라는 독특한 집들의 마을이 있다. 땅을 6~7m 파서 마당을 두고 주변에 방들을 둘렀는데 방들 위는 땅이라 농지로도 쓰인다. 땅 위에서 보면 사각형 구멍들이 듬성듬성 파인 듯한 풍경의 이 마을은 놀랍게도 4000년이란 긴 역사를 기록한다. 이와 비슷한 마을이 무려 9000년 전 터키의 차탈휘크라는 곳에도 있었으며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도 수천 년 역사의 마을들이 즐비하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가 배운 세계 건축사의 고딕, 르네상스, 바로코 같은 시대 구분은 지극히 편협한 서양인의 양식역사일 뿐인 것도 깨닫게 된다.

그들 역사에 따르면 건축은 시대를 거치며 늘 발전해 왔다는 것인데, 그랬을까? 예를 들어 5500년 전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발굴된 주거지에는 큰 집과 작은 집, 상가주택과 일반주택들이 치밀하게 조직돼 여러 계층이 모두 섞여 살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이루려 애쓰는 소셜믹스를 이미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있다. 기원후 79년 화산폭발로 일시에 멸망한 폼페이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풍요로운 도시생활이 있었고 각종 계층과 출신들이 어울려 산 이상도시였다. 그러니 건축과 도시가 늘 진보하는 건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다.

주거건축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이유에는 우리 삶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점도 있다. 유목이 아니라 정주하는 이들에게 주거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며, 그래서 하이데거는 정주는 존재 자체라고 했다. 물론 우리에게도 수천 년을 지탱한 고유하고도 아름다운 정주의 풍경이 있었다. 마당을 품은 기와집들과 자연을 닮은 초가들이 섞여 평화하던 마을, 이게 일거에 무너진 게 1960년대 말부터였으니 ‘불란서 미니 2층집’ ‘비둘기집’이니 하는 짝퉁 서양집과 아파트로 우리의 주거방식은 혁명적 상황이 된 것이다. 바둑판식으로 조성된 택지 위에 등장한 집들은 죄다 담벼락에 날카로운 쇳조각과 유리조각을 박으며 서로를 적대했고 길은 공동의 삶을 확인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분리하는 경계가 되어 동네를 붕괴시켰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아파트는 공동주거이기에는 공동의 삶이 너무 없으며, 의무적으로 지은 임대아파트는 불가촉 집단처럼 간주하며 멀리한다.

붙어 살 뿐 모여 살지 않게 된 우리 공동체의 비극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절대적으로 기인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주거정책은 삶의 가치와 근본에 입각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부동산 가치와 경제적 수치에만 몰두했으니, 정치권력과 결탁한 건설자본은 엄청난 특혜 속에 아파트를 찍어대었고 결국 투기판이 된 도시는 부동산 공동체며 나라는 아파트공화국이란 비아냥을 지금도 듣는다. 한탄스러운 것은 공기업인 LH공사나 SH마저 실적평가에 몰려 민간건설업체처럼 이윤추구에 골몰하며 공공성을 배반한 것이다.
옛적 주택공사 시절에는 공공의 가치를 높이는 주거단지를 만든 적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둔촌주공 아파트였다. 6000가구에 가까운 이 주거단지 역시 단지가 가지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요즘의 천민적이고 상업적이며 이기적이고 반공동체적 아파트와는 사뭇 달랐다. 검박한 주거 형태에 크고 작은 평수가 같이 어울렸고 시장과 학교 등의 공공시설 외에도 주민들이 서로를 나누는 공원과 공터가 즐비했다. 한쪽 주변은 자연이어서 야생의 풍경도 들어와 풍요를 더했다. 나는 90년에 여기서 처음으로 내 집을 구했고, 막내가 태어났으며 아들딸들의 어린 시절이 여물며 우리 가족 공동체의 정체성이 형성됐다. 그런데 이곳도 부동산시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4000년의 거주역사는 언감생심이라 해도 40년도 지속하지 못하다니…. 새롭게 들어서는 그림에는 내 가족이 거닐던 마당은 아무리 찾아도 없고 밤늦게 귀가하면 수고를 위로하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도 흔적이 없다. 그저 더 높은 건물과 밀도의 낯선 곳, 내 기억은 이제 이곳에 거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요즘 재건축아파트 수주전이 진흙탕이라고 한다. 비리의 온상이던 재개발사업 수백 곳을 서울시가 지정 취소하자 먹잇감에 굶주린 건설자본이 기존 아파트 재건축을 부추기며 광기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건축은 필요에 따라 없어질 수 있고 고쳐서 짓거나 더 많은 용적을 얻기 위해 새로이 지을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터인데, 재건축의 그림들은 몽땅 기억상실을 통한 광기의 판타지일 뿐이다. 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떤 아름다움도 없다고 했다. 더구나, 행복이 아니라 부동산을 좇아 유목하는 우리는 정주하지 못하는 까닭에 존재하지 못하니 우리의 부박한 삶은 자업이며 자득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