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뷔제의 선언_빌라 사보아

대우건설 사보

1999. 5. 25

주거건축의 역사는 일반 건축의 변천사와는 다소 그 궤를 달리 한다. 지난 건축의 역사 — 특히 서양의 건축 역사가 고전시대를 시작으로 통합되어 기록된 후 고딕이나 르네상스 혹은 고전주의 등 비교적 명료한 시대 구분과 함께 기록되어 있고 또 그 시대별로 확연한 양식의 차이를 보이는데 비해 주거건축은 그렇지 못하다. 로마시대의 주거나 중세시대의 주거나 그 양식이 별반 차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현대의 주거도 설비 등의 기계적 시설 만 제외하면 수 천년 전의 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아파트라는 현대의 주택으로 인식되는 집합주거 형식도 사실은 현대에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로마시대에 이미 7,8층의 집합주거가 있었음을 상기하자.
주거의 변화가 그렇게도 더딘 이유로는 아마 주거라는 것이 우리의 삶과 일차적이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며 우리의 삶이 본디 급진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 보수적인 까닭으로 그 삶을 담는 그릇인 건축에서도 지극히 보수적 변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확연히 증언하는 주택이 투철한 시대 정신을 가진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 세워져 보석 같은 귀한 존재를 건축사에 간혹 기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여간 경외스러운 일이 아니다. 르 꼬르뷔제( Le Corbusier ) 가 설계하여 세운 ‘빌라 사보아 ( Villa Savoye )’ 가 그러한 경우이다.

각자 다른 가치와 조건 속에서 작업한 건축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다소 부질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를 꼽는데 있어 꼬르뷔제는 단연 선두에 선다.
‘건축가는 지적 감수성으로 보편적 세계를 보는 자’ 라는 명구에 동의한다면 꼬르뷔제는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 된다. 그는 탁월한 감성을 가진 예술가였으며 엄청난 자기 훈련을 통한 지적 축적을 통해 이를 정제 시킨 지성인이었고 보다 나은 세계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주장하고 제안하고 이를 실현한 건축가였다. 1887년 세기말의 위기가 감돌던 시기에 스위스에서 샤를 에드와르 쟌네레( Charles Eduard Jeanneret ) 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그 당시 근대건축 운동의 핵심 반열에 있었던 오거스트 페레 ( August Perret ) 와 피터 베렌스 ( Peter Behrens ) 에게서 건축을 배운 후 불과 27세 되던 해 ‘도미노 하우스’ 라는 현대 건축의 개념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는다. 이는 현대적 구조 시스템으로 모든 평면이나 외관을 구조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명쾌한 주장이었다. 그는 새로운 정신이라는 뜻의 그가 만든 건축지 ‘레스프리 누보 ( L’Espri t Nouveau )’ 를 통해 그의 도시와 건축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기도 하고 혹은 ‘300만을 위한 도시 계획안’ 같은 야심 만만한 미래 도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발표하기도 하여 약관의 나이에 세계의 건축계에 그의 확실한 건축 철학과 이론을 새겨 놓는다.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아니하였지만, 그는 엄청난 독서와 여행으로 동서 고금을 통찰하고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향해 그의 건축을 전달하며 주옥 같은 작품을 쏟아 놓은 것이다.
말년에 만든 롱샹 교회당이나 라투렛 수도원 등은 아마 우리 인류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보물이 아닐까. 그는 78세의 일기로 수 많은 족적을 인류문화사에 남기며 눈을 감았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빌라 사보아는 이 위대한 건축가의 결정적 건축이론이 만든 주택이다. 이 주택은 1929년에 설계되었는데 이 주택설계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새로운 기계미학의 시대에 맞는 개념을 찾기 위해 그는 수 년간을 몰두한 결과 1926년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이라는 개념을 발표한다.
하나는 토지를 건축에서 해방시키자는 개념에서 출발된 ‘필로티’ 라는 개념이다. 즉 건물은 공중에 들려 올려지고 땅에는 이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만으로 접속되어 비워지게 된 이 건물 밑의 땅을 공공 용지나 정원 등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인데 건물의 내부 특히 칸막이 등이 건물의 구조나 기둥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간의 쓰임에 따라 혹은 수시로 자유롭게 구성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구조가 간편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는 이미 건물의 구조에 대한 이론으로 도미노 하우스라는 것을 발표한 바 있었다.
세 번째는 ‘자유로운 입면’ 에 대한 주장이다. 즉 벽면이 건물을 지지하는 하중이나 구조로부터 영향 받지 않고 다른 특별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건물의 입면은 내부의 상황 보다는 주변의 환경과 더욱 긴밀한 관련이 있기도 하다. 더구나 꼬르뷔제의 풍부한 감성을 표현하는 데는 이 개념과 이에 대한 기술적 해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네 번째는 ‘수평의 길다란 창’ 을 입면에 갖자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의 시각 구조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주변의 풍경이 끊임 없는 수평의 프레임을 통해 내부에 전달되어 내부 공간을 확장 시킨다.
마지막으로 ‘옥상정원’ 에 대한 개념인데 특히 중세시대의 봉건영주처럼 더 이상 넓은 정원을 가질 수 없게 된 현대의 주택에서 이 공중 정원은 유효한 방법이 된다. 그는 특히 옥상정원은 필로티에 의해 들려 올려 세워진 새로운 대지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했으며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이곳을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빌라 사보아는 그의 이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된 교과서적 건축이며 이 새로운 텍스트는 그 자신에게도 건축적 전환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주거 건축의 역사에도 큰 획을 긋게 만든 시대적 전범이며 현대 주거건축의 완성으로 기록된다.

빌라 사보아의 건축주는 보험회사의 중역이었는데 그는 그가 사는 파리에서 30km 정도 떨어진 포아시( Poissy ) 라는 곳에 주말주택을 갖기를 원하였다. 이 포아시라는 곳은 지금은 파리라는 거대도시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한적한 시골마을 이었다. 파리에 있는 집과 주말이나 휴일에 자동차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주말주택이라는 점에 주목한 꼬르뷔제은 이 빌라 사보아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기계시대의 주택의 유형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이미 ‘주택은 살기위한 기계’ 라는 선언을 한 바 있었다.
건축주가 소유한 리무진이 바로 현관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그가 주장한 필로티는 가장 적절한 방안이었을 것이다. 자동차는 양탄자 같은 잔디를 지나 필로티 속으로 들어와 멈추도록 현관은 곡선으로 계획되었고 – 이 역시 ‘자유로운 평면’ 에 대한 개념의 실천인데 – 현관으로 들어 오면 상부로 향하도록 길다란 경사로가 동선을 이끈다. 이 경사로를 타고 오르면 서서히 2층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의 다섯 가지 원칙이 만든 드라마틱한 경관이 전개 된다.
이 2층에는 주인의 거실과 침실 그리고 중정이 건물의 주변을 채우며 있다. 자유로운 칸막이와 가구 배치는 동선을 막힘 없이 만들 뿐 아니라 시선을 무한히 넓히고 있다. 중정을 통해 반사되어 들어 온 빛은 주택의 모든 부분을 밝게 만들어 여유 있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룬다. 들려 올려진 거실의 창은 수평의 띠이며 이 길다란 창을 통해 주변의 전원이 그림처럼 들어오고 이는 중정과 만나게 되어 거실 내부에 있는 이를 마치 전원의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즉 공간의 확장인 것이다.
가운데 있는 경사로는 다시 옥상으로 오르게 한다. 주변의 과수원과 멀리 있는 경관이 보다 선명히 시야에 들어 오고 옥상은 또 다른 정원이 되어 있다. ( 처음에 꼬르뷔제는 옥상에 주인 침실을 계획했었다고 한다. ) 경사로의 목적지는 옥상 정원이며 이 곳은 또 다른 세계, 어쩌면 하늘에 속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이 집에서 가장 중심 된 장치는 집 가운데 있는 이 경사로이다. 파리의 집과 통하는 직접적인 복도로 간주되기를 원하는 이 경사로는 주변 경관을 장악하며 관조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루트이다. 꼬르뷔제에 의하면 이 루트는 ‘건축적 산책로’ 이며 그는 이 산책로를 통해 모든 세계가 읽혀지고 판단되기를 원한다.
공중에 매달린 박스처럼 보인 이 집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모든 이들의 주택에 관한 선입관을 여지 없이 부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택, 새로운 삶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주택은 거주자나 그 사회 구성원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건축보다도 더욱 확실히 나타나는 시설이다.
이 빌라 사보아를 이룬 세계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만물의 중심에 인간인 ‘내’ 가 있다는 것이다. 가운데 놓인 경사로를 산책하는 ‘나 자신’ 이 모든 이 집의 모든 공간과 사물과 보이는 풍경을 관장한다. 즉 모든 건축은 ‘나’ 를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며 모든 세계의 중심에 ‘내’ 가 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주택의 개념은 그 당시의 거의 모든 주택에서 나타나는 형식이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까지 서양의 주택은 거의가 이러한 관념과 양식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근세 건축의 정신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는 팔라디오의 로툰다에 이른다. 이탈리아 비첸차 교외에 있는 이 로툰다라는 주택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공간인 홀이 있고 이 중심 된 공간에 통로나 길이 집중되어 있어 모든 세계는 이 공간에서 비롯한 것임을 나타낸다. 모든 사물은 내가 정복해야 할 바깥이며 나를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종속물이라는 생각 — 이 개념이 바로 주거의 차원을 넘어 결국 서양 문화사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 아닐까.
우리네의 주거에 흐르는 정신을 상기하면 이는 더욱 확실해 질 수 있다. 우리들 집은 ‘내’ 가 중심이 아니다. 우리가 아닌 다른 어떤 세계가 또 하나 있다는 생각이 우리들 집에 흐르는 정신이다. 따라서 우리들 집의 중심에는 비워진 마당이 있다. 우리는 집에서 시시때때로 객체이며 한 부분일 뿐이었다. 심지어 우리들 몸 속에도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믿었던 우리였으니 집이라는 것은 우리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며 집을 통하여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추호도 하지 못하는 우리였다. 따라서 시시때때로 집을 위하여 제사를 올리고 성주신( 星州神 )을 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감사하며 사는 삶의 방법을 택한다.

따라서 이 빌라 사보아는 내가 보는 한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갖는 전형적 서구 주택이다. 불세출의 거장 르 꼬르뷔제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원칙을 세워 새로운 집을 만든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건축적으로는 새로운 선언이 된 이 집이지만, 주택의 변천사를 볼 때, 이 집이 새로운 정신을 가진 새로운 주택이라기 보다는 서구 전통의 현대적 완성이며 동시에 그들 주거 건축의 궁극적 목표점이었다고 간주하면, 내가 너무 우리네 옛 집의 아름다움에 경도 되어 있는 것일까.

모든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은 꼬르뷔제 건축의 선언이자 현대건축의 명료한 교과서이며 서구 주택의 아름다운 마침표가 된다. 그렇다. 지난 시대에 그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