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과 사회’ 그리고 김정후의 건축비평

2005. 6. 27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쓴 ‘문화비평과 사회(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라는 글 속에는 비평가라는 존재에 대한 비평이 그 특유의 명쾌한 문장으로 날카롭다.
그 일부는 이렇다. “…문화비평가는 자기가 비판하는 문화보다 자신이 더 고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필연적으로 그 문화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직업적 비평가는 원래 통신원이었다…..비평가가 자신의 전쟁터인 예술분야에서 결국 자신이 판단하는 바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고 기꺼이 선전원이나 검열관으로 타락할 때….정보와 지위의 특권을 통해…그들은 현실 은폐의 베일을 짜는 데 가담한다….문화는 단지 비판을 함의할 때만 참이다….,시민문화는….인간으로부터도 벗어남으로써만 인간에 대한 충실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문화비평가는 문화의 신화적 완고함을 먹고 산다….”
문화비평가가 흔히 빠질 수 있는 자기 분열적 위선에 대해 선언하듯 경고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적지 않게 쓸쓸해졌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 전 나는 건축비평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졸렬했던 글을 떠 올리는 게 민망하기 그지 없지만, ‘우리에게 비평이란 있는가’(공간, 9010)라는 제목을 단 글에서, 나는 우리 건축이 취급 받는 변방성의 한 이유로 ‘권위’ 있는 건축평론의 부재를 들었다. 권위라 함은 건축가에 대한 권위가 아니었으며 평론가 스스로의 권위도 아니었다. 일반 대중에게 권위 있는, 그래서 그들을 건축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계도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나타나기 시작한 젊은 평론가들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아니하였다.
그 이후로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로 보면 완벽한 미래의 한국이요 새로운 시대인 지금, 과연 우리의 건축환경은 그 때 비하여 진보하였는가? 결코 긍정할 수 없는 이 질문 앞에서, 비겁을 무릅쓰고 다시 그 원인 중의 상당부분을 건축평론의 부재에 넘긴다.

사실 요즘 한국건축을 보면 전보다 더욱 답답하다. 건축 생산물량이나 수법은 15년 전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제법 일반인들도 건축가라는 직업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도 같고-드라마 때문이라곤 하지만- 화려한 외국건축가들의 작업도 드물지 않게 이 땅에 등장해 있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우리 건축은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건축의 본질적 가치의 탐구에 대한 성과를 거론하는데 이르게 되면, 옛날 우리가 가난했을 때 굶주리며 빚어낸 건축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더구나 외국건축가들에게 속절없이 시장을 내어주어도, 우리 한국의 건축은 세계에서 여전히 변방이다. 그래서 더욱 공허하다.
국가기관 마저 조장하는 국내 건축가에 대한 식민적 사고와 원천적 부정을 보장하는 국가 대형프로젝트의 수주제도, 빈사상태의 사고능력뿐인 각종 건축단체들, 대책 없고 미래 없는 난립된 건축교육기관들, 건축을 명품이니 예술이니 호도하여 사욕을 채우는 천민적 건설족들…이들의 야비하고 무도한 힘은 15년 전에 비해 더구나 훨씬 거대하고 강건하며 조직적이라는 것이 더욱 더 쓰린 것이다.

나는 일선 건축가여서, 이러한 모순에 대해 전방위로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힘이 부족하다. 혹은 바른 생각을 가진 건축동료들과 연대하여 이에 저항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그 모순 덩어리는 견고히 제도화 되어 우리의 안쓰러운 선의를 느긋이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건축현실이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일반 대중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건축의 위상이다. 건축은 우리에게 문화가 아니다. 바둑에도 정기적으로 한 면을 할애하는 신문이며 연예인의 가십도 문화면에 항상 같이 등장하지만 우리의 삶을 의탁하는 건축은 그저 사고 파는 거래 대상일 뿐이며 부동산이다. 그래서 건축은 날로 훼칠을 더해가고 도시는 곧잘 윤리를 배반한다. 이건 야만이다.
워싱턴 포스트 지나 타임즈지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건축평론 같지는 않더라도, 가능하면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들을 질타하고 충고하며 설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니면, 그나마 곧은 건축가들이 모순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동기를 꾸준히 제공하기를 바란 것도 사실이다. 그게 지난 15년 전 내가 쓴 우리 건축평론계에 대한 소망이었지만 그 바람은 속 시원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금에 있다.

나는 김정후를 잘 알지 못한다. 만난 적도 그리 많지 않으며 교류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다만 수 년 전에 내가 한 작업에 대해- 한 공동주택일 게다. 그 내용이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우리의 건축평론 읽는 일을 언제부터인가 내 관심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었다. 대부분이, 인간관계에 얽매어 빠져 나오지 못하거나, 파편을 붙잡고 검열하려 들거나 혹은 비평하는 이유 자체를 알지 못한 채 그들 자신을 위한 글을 쓸 뿐이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였으며. 어쩌다 그런 글을 한번 또 읽고 나면 항상 가슴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 글을 한번 쓴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그가 런던에서 만학을 하면서 메일을 몇 번을 주고 받다가, 이 글을 써줄 것을 덜컥 요청 받게 된 것이다.
그를 잘 몰라 불안하였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부탁하며 들먹인, 같은 시리즈인 책을 런던에 있을 때 나도 출간한 인연 때문이 아니라, 낯선 곳에 살면서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외로움을 연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보내준 전체 원고를 읽어내려 가면서 –가끔 내 이름이 눈에 띄는 것이 몹시 불편하였지만- 내가 가졌던 불안을 말끔히 없앨 수 있었다. 불안만 없어지지 않았다. 앞에 주절거린 내 불만이 적지 않게 덜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와 건축하기가 다르지 않다는 글도 전에 한번 쓴 적이 있다. 주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정확한 개념을 전제해야 하며 정통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추어 창조적 결과를 빚어야 하는 게 글이나 건축이나 같다는 것이었다. 즉 건축을 잘하면 글을 못 쓸 이유가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어서 이 둘은 상통하는 지적 작업이다.
김정후가 기본적으로 건축가였으며 그의 글이 실무적 건축을 바탕으로 한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글이 갖는 건축에 대한 절대적 애정의 이유를 내가 납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그의 친절한 글은 항상 건축을 건강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건축 평론하는 이가 흔히 빠지기 쉬운 선전원이나 배타적 검열관의 입장에 서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내가 읽기에 대체로 편안하다.

그가 다루고 있는 대상은 건축계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대표적 건축이나 대표적 건축가들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굳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다른 건축을 하는 이들이다. 일반에 뿐 아니라 건축인에게도 생소한 건축도 그의 대상 속에 흔히 등장해 있다.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한국의 현재 건축을 대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또한 새롭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그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지식의 저장고를 자랑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거대담론이나 난해한 현대철학을 언급하지 않고도 현대건축의 흐름과 정수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건축은 설명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설명하지만 대중의 건축인식은 벽면의 모양이나 장식에서 늘 비롯되기 때문에, 건축개념에 사로잡힌 건축가의 설명은 겉돌고 건축평론은 헛돌아 건축은 난해한 것이 되기 쉽다.
이를 김정후는 쉽게도 설명한다. 아마도 건축가, 평론가 심지어는 대중이 되기도 하는 그의 너그러움 때문일 것이라 여겼다. 대중으로 하여금 건축을 쉽게 이해하게 할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귀하며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결국, 그의 정신은 항상 주어진 모순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차가움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문득 섬뜩한 비수의 광채가 곳곳에서 번뜩여 읽는 자의 느긋함 추스르게 한다.
아도르노의 ‘문화비평과 사회’의 글 말미를 다시 빌리면, 다음과 같이 경고하며 우리를 깨우고 있다. “문화비평은 문화와 야만의 변증법 최종단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비판적 정신은 자족적 명상에 머무는 한…오늘날 정신을 완전히 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 절대적 사물화를 감당할 수 없다.”
이 아도르노의 언설은 우리의 거친 건축현실을 생각할 때 결단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때때로 직설로 우리에게 사유의 단초를 강제하는 김정후의 글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시작할 동기를 부여한다.

바라는 게 있다. 런던에서 만학하며 야만의 문화에서 자유롭게 된 그가 더 깊고 더욱 새로워진 사유를, 오래지 않아 우리에게 다시 선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