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귀환

중앙일보 '중앙시평'

2017. 2. 11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레이스 포기가 참 안타까웠다. 전임 시장들과 확연히 다른 정책을 보여준 터여서 국가 경영에 대한 시대적 비전도 누구보다 선명하게 제시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청계천 같은 ‘삐까뻔쩍’하는 업적이 없다고 지적받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겉모습의 개발에(청계천은 연간 수십억원을 들여 한강물을 역류시켜 운영하는 인공 하천이다) 유혹될까 늘 각성하고 삼가는 시장이라는 것을, 몇 년간 서울시 총괄건축가로서 지켜본 나는 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그가 지난 5년 동안 펼친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때인데 그의 이탈로 좌초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사실 서울은 지금 중요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모리재단의 도시전략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도시 경쟁력 순위(Global Power City Index)에서 2016년의 서울은 세계 6위였다. 경제·연구개발·문화·주거·환경·교통 등 6개 항목의 평가에서 서울을 앞선 도시는 런던·뉴욕·도쿄·파리와 싱가포르밖에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뉴욕에 본부를 둔 머셔컨설팅의 삶의 질에 관한 평가는 서울을 주요 도시 중 115위에 놓는다. 도시 규모는 세계 6위인데 그 속의 행복감은 115위라는 이 굴욕적 괴리는 무엇 때문인가. 지난 몇 십 년간 서양 도시 흉내 내느라 ‘삐까뻔쩍’한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며 우리 사회를 파편화시킨 잘못된 도시계획이 주된 원인일 수밖에 없다. 고유의 공동체를 파괴한 ‘뉴타운’들이 대표적이며, 자연과 부조화하며 솟은 소위 랜드마크들, 권력자의 시혜처럼 세운 산속의 예술의 전당이나 외딴 섬 오페라하우스 같은 발상들 때문이었다. 이런 스펙터클한 프로젝트는 통치자나 단체장의 업적으론 대단히 유효하겠지만 우리가 이들에 익숙하게 되기까지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기 디보르는 이런 스펙터클한 풍경을 기만이며 폭력이라고 했다.

삶의 질 순위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한 도시는 빈이다. 안전 , 거주 조건, 문화 향유의 기회, 이웃과의 관계 등을 따지는 조사 항목들이 공유하는 가치는 연대성인데 그 실천은 보행에서 시작된다. 그렇다. 인구 200만 명에 서울 면적 3분의 2의 빈은 철저한 보행도시다. 이곳 도심에 차를 가지고 가는 일은 낭패 며 주변부도 대중교통의 연결망이 치밀하여 도시 안에서만 살면 차를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보행 전용의 길을 계속 만든다. 빈의 중앙역 격인 서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인 마리아힐퍼 스트라세, 늘 차량으로 붐비던 이 길을 최근에 보행 전용으로 또 바꾸었다. 거리는 몰려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가게들은 활기가 넘쳐 도로 전체가 축제의 공간처럼 변한 것이다. 빈만이 아니다. 인터넷이나 SNS의 발달로 소통이 차량 이동으로 인한 것보다 훨씬 빨라진 지금, 차도를 사람의 길로 바꾸는 것은 선진 도시들의 우선과제이다.

물론 박원순의 서울시에도 이 일은 매우 중요했다. 얼마 전부터 시내의 고가도로들이 없어지고 거리가 사람의 풍경으로 회복되는 걸 보면 안다. 특히 차량 전용으로 쓰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길로 바꾸는 일은 시대가치가 바뀌었음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불과 500m 거리를 가는 게 마치 산 넘고 물 건너 듯 어려웠지만 이 고가에 오르면 불과 10분이면 도달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길은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파편적으로 산재한 부근의 건물과 장소를 보행으로 간편히 연결하여 연대하는 도시의 풍경을 이룰 수 있다.

세운상가도 마찬가지다. 개발 압력으로 헐릴 뻔한 세운상가의 3층 데크를 재생시키는 작업은 가까이는 남산과 종묘를 보행으로 잇는 일이며, 조금 더 확장하면 북악산과 용산과 연결되니 거대도시 한가운데 전체를 관통하는 보행길로는 세계 최장일 게다. 올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게 될 서울성곽길까지 다 이으면 서울은 산에서, 공중에서, 지면에서 모두 연결되는 방대한 보행 연결체계를 갖게 된다.

얼마 전 서울시는 보행도시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며 섬처럼 돼 있는 광화문광장도 재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이왕이면 청계천변도 보행 전용으로 바꾸고 나아가 4대문 안 전체를 차량통행금지 구역으로 정하면 어떨까. 서비스나 물류 이동은 시간제로 허용하면 될 일이다.

보행의 한자 步는 머물 止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진 글자다. 그러니 보행은 머무르기 위한 행위이며 바로 공동체 형성의 기초다. 그래서 보행을 확충하는 일은 잃어버린 공동체를 복원케 하고 연대를 회복시켜 결국 파편화된 사회를 극복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 우리 사회의 시대적 의제에 민감한 박 시장, 삶의 질 6위 서울을 위해 그의 서울시 귀환을 쌍수로 환영한다. 이제 뭐 눈치 볼 필요 있나. 4대문 안을 차량통행금지 구역으로 조속히 선포하시라. 서울을 바꾸면 대한민국을 바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