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길-유가사의 길에서 얻는 깨달음

주간조선

2003. 10. 02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며칠 전 미국 펜실베니어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전시회와 강연회를 마치고 수도원 기행을 시작하는 그룹과 합류하기 위해 파리로 가고 있다. 선배 건축가인 민현식 선생과 함께 초청 받은 이 전시회의 주제는 ‘Structuring Emptiness’였다. 우리 말로 하면 ‘비움의 구축’이란 말이 되는데, 한국 건축의 특별한 아름다움인 ‘비움’에 영향 받은 우리 두 사람의 건축을 주목한 미국측의 일년 간에 걸친 기획이었으며 성황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펜실베니어 대학에서 전시회 오프닝과 강연을 마치고 그 곳 교수들과 환담을 나누는 도중, 한 교수가 한국의 길과 광장에 대해 질문하였다. 한국과 서양의 도시 공간 개념을 설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질문이라고 순간 생각한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의 이 땅에는 서양의 광장 같은 개념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산악에 발달한 도시도 있지만 서양의 큰 도시는 주로 평탄한 땅에 세워졌다. 따라서 도시를 계획할 때 곧고 바른 길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고 집들은 그 길에 면해서 나란히 설 수 밖에 없었다. 그 길은 통행이 목적일 뿐이어서 여러 사람이 모이고 머물기 위해서는 따로 광장을 만들 게 된다.
그러나 주로 경사진 산의 기슭에 주거지를 마련해야 했던 우리의 도시에는 길보다는 개인의 영역을 먼저 만들었다. 통행은 개인의 집들 사이에 남게 되는 공간들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이 공간이 길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길이 곧고 바를 리가 만무하다. 어떤 곳은 넓고 좁고 구부러지고 구석지게 되니 통행의 부분을 제외한 곳은 머무르거나 모이는 장소로 쓰인다. 즉 길과 광장이 한꺼번에 존재한 것이며 그 길은 바로 우리의 공공 생활공간이요 우리의 공동체를 확인하는 장소였다.

그럴 듯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그 교수는 이내 전시회에서 보여준 우리의 지난 월드컵 거리 축제를 상기하며 굉장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리곤 그는 나에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그러면 어디냐는 질문을 하였다.
공공영역으로서의 길과는 다소 다르지만, 나는 그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 길에 대해서 예전의 어떤 기회에 한번 쓴 적이 있는 지라 그 파일을 여기에 다시 옮기는 것을 독자님들은 양해하시기 바란다.

“길에 대해 생각할 때 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길이 있다. 이제는 어쩌면 실제보다 좀 더 과장된 상상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드라도, 믿기로는 이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바로 대구의 달성군 유가면에 있는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의 절로 이르는 길이다. 고졸한 풍취를 가진 유가사는 어디선가 비파와 거문고의 화음이 들린다는 이름의 비슬산(毖瑟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산을 오르는 길은 콘크리트 막 포장으로 되어있어 조잡하게 개발된 여느 등산로처럼 멋대가리 없지만, 이 등산로가 돌아가는 도중에 유가사로 들어가는 길을 보는 순간 범상치 않은 긴장을 느끼게 된다. 유가사 입구라는 작은 팻말이 없으면 도무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로 이 절의 입구는 소리 내지 않는다. 그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입구를 찾기 위하여 부근을 두리 번 거리면, 울창한 나무 사이에 널 부러져 있는 큰 돌들 속에서 몇 몇 돌들이 어슴프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사람들의 발길이 돌들의 표면들을 갈아서 만든 자국인데, 그 정경은 마치 세속의 인간들을 정적의 세계로 이끄는 오묘한 불 빛과 같다. 그 여린 빛들을 다칠까 염려하며 숨죽이며 그 돌들을 딛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이 돌들의 바다는 끝이 나고 이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본다. 다시 잘 살피면 오솔길이 보이긴 하는데 있는 둥 마는 둥 그 흔적만 있다. 의심스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끔 된 이 부실한 길을 따라 오르면 이윽고 자그만 돌 계단이 멀리 보인다. 아 내 발걸음이 틀리진 않았나 보다. 작아진 마음을 다독거리며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돌 계단을 오르면 아뿔싸 이내 또 길은 사라지고 드문 발길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도무지 길 같지 않은 길이며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야생의 풀들과 꽃들에게 위안을 받으며 한 구비를 돌면 드디어 저 멀리 천왕문이 있다. 맞았다. 비록 보이지 않는 길을 걸었지만 나는 내 마음의 길을 걸었구나.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천왕문을 들어선다. 근데, 이 애처롭게 아름다운 길 – 때로는 돌 계단으로 때로는 흙으로, 들풀로 혹은 징검돌로 이루어져 끊일 듯 보일 듯 있을 듯한 이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길은 여느 절의 길처럼 대웅전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대웅전을 오른 편으로 비키고 그 뒤의 나한전도 왼편에 비키고 연 이어 있는 용화전과 산신각 마저도 비켜서 저 멀리 비슬산 중으로 올라가는 듯 하다가 끝내는 아스라하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산신각 곁에 서서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 절로 가는 아름다운 마음이 기껏 대웅전을 참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해서야 세속의 길과 어찌 다를 바가 있을 것인가. 종교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이 목표라면 절로 가는 길은 그 종점이 있을 수 없는 게다. 여태 나는 보이는 길만 걸었고 목적지를 가져야만 걸었지 않았을까. 어찌하여 걷는다는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을까. 나는 깨닫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보이지 않는 길’은 나의 삶에 잊혀지지 않는 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 글을 작년 ‘법보신문’이란 불교계통의 저널로부터 요청을 받아 기고하였다. 그 글에 대해 유홍준 교수가 이르기를 아마도 그 길은 이미 없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요즘 불교사찰들의 무도한 사찰 단장을 미루어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여기서 전재하는 마당에 그 절을 다시 가 보아야 했으나 여행 중이므로 인터넷으로 찾아 보게 되었다.
과연 유가사마저 홈페이지가 있었다. 그러나 아뿔싸 그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일주문의 사진 속에, 문 밑으로 무지무지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의 종교가 아무리 물욕과 이기에 빠져 있다 하여도 고행을 통해 깨우침을 얻는 불교의 근본적 정신마저 뭉개고도 마음이 편한가. 우리 시대의 천박함을 여기에서 마저 다시 확인한 나는 지금, 더 없이 아픈 가슴으로 수도원 기행길에 오른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 천행(賤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