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미학

생활성서

2022. 12. 01

희망적 소식에 의하면 코로나가 내년 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들 평화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없어진다고 모든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겝니다. 역사적 사실을 들추어 볼 때도 또 다른 질병이 언제든 우리를 노리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두 해전, 코로나팬데믹의 재앙이 창궐한 해, 그 연말의 타임지는 2020이라는 숫자 위에 붉은 X자를 그리고 사상최악의 해라고 쓴 표지를 발간하였습니다. 마치 한 해를 저주하며 이별을 고하는 듯한 표지였지만 코로나는 그 해로 끝나지 않았고 더 많은 피해가 이어졌습니다. 그들 말대로 이 코로나가 인류역사상 최악의 질병일까요? 아닙니다. 불과 백년전에 이보다 훨씬 참혹한 질병이 인류를 덮쳤으니 바로 스페인독감입니다. 그 당시 16억의 세계인구에 5억명이 감염되고 5천만명이 죽었으며 우리나라도 무려 14만명이 희생되었다니, 지금 78억 인구에 희생자 숫자가 7백만명이 안되며 인구가 3배가 된 우리나라도 3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스페인독감은 코로나보다 훨씬 절망적 재앙이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희생자가 젊은이였고 전장의 병사가 하도 죽어, 한창 진행중이던 1차세계대전도 끝을 맺을 수 밖에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20세기 초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결과로 수 많은 이들이 신분상승과 물질획득의 기회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끊임없이 몰려들던 때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도시인구를 좁은 길이 거미줄망처럼 얽힌 중세의 도시구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리버풀은 도시인구의 반 이상이 지하에 거주했다고 하며, 런던에서는 3평남짓한 방에 10명의 식구가 기거하는 일이 보통이었습니다. 거리에는 오물이 넘쳐나고 공장과 집에서 땐 석탄의 매캐한 먼지는 앞을 보지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질병의 창궐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공포의 스페인독감이 물러간 후, 그 원인이 열악한 도시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식한 일단의 학자와 건축가들이 주목한 단어가 있었는데 ‘기능’입니다. 기계문명이 꽃을 피우던 시기였고 기능과 효율이 새로운 시대의 좌표라고 믿은 ‘세계건축가연맹’의 그들은 1934년 아테네에서 도시헌장을 발표하며 도시를 주거, 노동, 교통, 위락의 4개 기능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합니다. 바로 오늘날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구 등으로 구분하는 용도지구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시는 물론 오랫동안 살았던 역사적 도시들도 모두 용도로 구분하며 재편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도시는 자동차 위주의 도로로 구획되고 건물들은 고층화되어 밀집되었으며 건축은 밀폐되고 그 속에서 접촉은 더욱 밀접해졌습니다. 더구나 20세기말 고도산업사회는 전대미문의 기후위기를 초래하여 우리는 그 위기를 피하느라 더욱 밀집 밀폐 밀접한 건물 안으로 숨어든 결과, 바로 코로나라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서로를 적대하여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둔 모습으로 삽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를 밀실로 몰아넣고 비대면의 가상현실 속에 일상을 보내게 했습니다. 마스크, 비대면, 거리두기, 이들은 무너진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며 이로 인한 사회의 붕괴는 당연한 수순으로 곳곳에서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32년전 한국현대건축의 대들보였던 김수근선생님 문하에서 15년의 건축수업을 마치고 독립한 후, 저 자신의 건축을 모색하다가 작은 책을 내었습니다. ‘빈자의 미학’. 누구는 이를 선언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이들을 위한 건축지침서인 이 작은 책에서 제가 앞으로 해야할 건축의 내용을 미리 밝힌 까닭에, 이 책은 저 스스로가 자초한 족쇄가 되었지만 저는 그 안에서만 있으면 너무도 자유로웠으니 제게는 진리였습니다. 물신주의의 포로가 된 그 당시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에 대항하고자 건축의 실천방안 네 가지를 밝혔습니다. 첫째는 붙어사는 동네가 아니라 모여사는 동네를 만들기 위해 건축이 지녀야 마땅할 공공적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도시의 섬이 된 아파트단지, 비 피할 곳 제공하지 않는 빌딩, 이웃을 배척하는 높은 담장들…… 모두 우리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나쁜 건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우리 옛집의 마당을 상기시키며 공간을 채우지 말고 비우자고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체적 삶을 살게 됩니다. 다음으로, 기능과 효율을 따지며 냉랭해진 관계를 회복하도록 오히려 반기능적 건축을 하자고 했습니다. 불편함 속에 궁리도 싹트고 사유도 출발합니다. 누군가 이를 즐거운 불편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잘난 체하느라 난장이 된 우리의 환경을 질타하며 침묵하자고 했습니다. 건축물은 오로지 우리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단순한 건축을 배경으로 해야 우리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제대로 돋보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올해가 이 빈자의 미학을 말한 지 딱 30년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적지 않은 건축설계 작업을 쌓아가면서 실천방안 두 가지를 더 보태게 되었습니다. 기억과 영성입니다. 새 역사 창조라는 헛된 구호를 지적했습니다. 새집을 지을 때라도 그 땅에 남겨진 사실들을 들추어 미래와 연결시켜 역사적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기억하게 되면 운명을 알게 되고 따라서 겸손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경제개발의 광풍이 초래한 물신의 시대를 떠나 우리들 모두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찾아 잃어버린 영성의 풍경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연대하는 공동체, 비움의 공간, 불편한 삶, 침묵의 형태, 죽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영성의 풍경, 이 여섯 가지 실천항목은 물신주의의 교리와 정반대의 가치일겝니다. 그렇다면 이 ‘빈자의 미학’은 우리들 삶을 파편화시킨 이 코로나팬데믹을 극복하는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 전 이 주장을 했을 때, 더러는 틀린 방향일 수 있다며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고 또는 비아냥거리는 이들까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울리던 성경구절 때문입니다. 필리피보서 2장의 구절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스스로를 비우는 삶, 실제로 저는 그 실체를 가난과 순결과 순종을 좇은 수도사들의 건축에서 너무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그 흔적들을 무수히 좇아 배웠으며 결국 수도의 공간은 제 건축에 중요한 교본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지난 세월 제가 실천한 내용을 모아 ‘빈자의 미학 재론’이란 책을 펴낼 수 있다면 아마도 제 건축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깁니다.

저는 이 ‘생활성서’에 글을 싣기 시작할 때, 어릴 적 신학을 전공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는데, 어느 분이 승효상은 건축으로 신학하는 자라고 말씀한 걸 들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건축은 한갓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설계일을 시작한지 반백년 가까운데도 제 건축 속에 살게 되는 귀한 생명들이 제 잘못으로 잘못된 삶을 살까 늘 두려워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생활성서에 글 써줄 것을 요청 받았을 때, 어쩌면 개신교도로서 가톨릭 잡지에 객관적일 수 밖에 없는 글을 쓰며 제 건축을 다시 점검하고 다짐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과욕이었음을 한해를 지나며 깨닫습니다. 여전히 편견과 아집에 찬 제 글이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상처를 드렸을 수 있다고 여기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한 무지한 개신교도 하나가 난입하여 어지럽히다가 제 힘에 부쳐 도주한 것으로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지난 한해 이 칼럼을 허락해주신 편집부 선생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생활성서’의 번창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늘 평화하시길 빕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