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끼문화’

중앙일보 시론

2003. 7. 25

나는 건축재료 중에서 페인트 쓰기를 가장 꺼려한다. 페인트 칠을 하게 되면 그 속을 아무리 엉터리로 만들어도 이 칠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고 덧칠만 하면 또 새 것처럼 보인다.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건축의 역사며 삶의 기억이며 하는 이런 단어들은 그 두께처럼 경박한 페인트라는 재료 앞에서는 속수 무책이 될 뿐이다.
그래서이다. 새 것 같은 구조물이 어느 날 느닷없이 갈라지고 무너져서 우리들을 경악하게 한다. 성수대교가 그랬고 갑자기 핑크빛으로 칠해졌던 삼풍백화점이 그래서 무너졌던 것이다.

외국의 오래된 도시에서는 페인트를 보기란 쉽지 않다. 그들 도시는 역사의 때가 건축의 마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경건하고 진솔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주된 마감재료가 페인트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 페인트와 친숙하게 되었을까. 내 기억 속에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때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초라하지만 세월의 축적을 고스란히 보이게 하던 옛 집의 구조와 때 묻은 부재가 우리 삶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양철지붕이 등장하고 시뻘겋고 시퍼런 칠을 해대면서 우리의 환경은 개벽한 것이다. 농촌개량사업의 최종결과나 불량주거환경개선은 항상 페인트로 마무리 되었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거나 북한에서 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급조된 가림막들이 설치되어 도시는 페인트 칠 속에 묻혀 버렸다. 새파란 미래를 가시적 보아야 하는 조급심이 우리의 환경을 가설 세트로 만들어 ‘뺑끼칠 문화’를 양산하고 우리의 시각 기능은 그 선정적 색채의 자극으로 마비가 된 것일 게다.
마비된 감성은 더욱 자극적인 환경을 요구한다. 우리는 집의 내부구조 보다는 외형과 장식에 더 관심이 많아졌고 구조물은 일그러진 형태에 집착하게 되었다. 색채심의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과해야 하는 아파트들은 너나 없이 기괴한 그림과 현란한 색채를 벽화랍시고 해대고 도시환경을 개선한다고 한강의 다리들은 희한한 형태를 얹더니 또 기괴한 조명으로 건축의 진지성을 농락하고 말았다. 최근 발표된 청계천 다리 모양들을 보라. 천박하고 천박한 것이다.

위로 받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단군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고속철도 사업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구조물이었다. 사업이 시작될 때 즈음 한 젊은 프랑스 건축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프랑스가 고속철을 팔면서 그 철도가 지나는 장소의 변화에 대해 조사하는 임무를 부여 받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아, 약 오르는 말이었다. 문화국가라면 이런 것이었다. 그 이후 나도 알게 모르게 고속철도가 건설되는 현장에 마음이 끌려가곤 했다.

아마도 너무도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이라 장난을 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고속철도가 고가로 지나는 곳에는 콘크리트의 열주가 구조의 기본적 법칙을 그대로 표현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거대한 열주의 형식이 만드는 구조미에 나는 열광하였고 콘크리트 재료의 물성이 주는 진실에 감동하였다. 마치 바로크의 음악처럼 대위와 반복의 아름다움이 한적한 농촌의 뜰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로마시대의 아퀴닥트(도수로)보다도 더 장엄하였고 감히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교하며, 그 프랑스 건축가에게 우리도 이제 후세에게 물려줄 좋은 유산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어느 정도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실로 우리 시대에 만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위대한 인간의지의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지난 달 추풍령 부근을 지나면서 이 고가 구조물의 아름다움을 쳐다볼 즐거움에 설레다가 참으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구조물에 예의 그 시뻘겋고 싯누런 칠-뺑끼질을 해댄 것이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선함과 아름다움과 진실됨을 이렇게 황칠하고 개칠하여 뭉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저주 받아야 한다, 이 ‘뻉끼문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