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름다움

조선일보 일사일언

2000. 8. 28

서울의 홍보 사진집을 보면 하나 같이 숲 속의 고궁과 한복 입은 남녀, 고층빌딩, 한강의 야경 등이 실려 있는데 이런 상투적인 내용이 외국인에게 기억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울의 자연이 베이징이나 도쿄와는 달리 아기자기한 산과 강들을 지천으로 끼고 앉아 탁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포장된 모습은 이들 도시의 한 아류로 짐작되기 일쑤이다.
나를 찾아 오는 외국 건축가들을 보면 안다. 그들의 관심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혹은 63빌딩에 있을 리가 없다. 내가 그들을 즐겨 안내하는 곳은 북촌 마을과 신림동 달동네, 남대문 저자거리 혹은 세운상가 등이다. 십중팔구 이 곳들은 그들을 환호하게 할 뿐 아니라 깊게 생각하게까지 한다. 여기는 대부분이 좁은 골목길과 지저분한 세간들이 즐비하며 냄새도 퀴퀴하고 더러는 위험하기까지 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오랜 세월을 지탱해 온 삶에 대한 치열한 애착과 그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때로는 우리의 어린 시절 추억도 남아 있어 우리의 근거를 되새기게 한다. 따라서 이런 참 된 건축은 새로운 삶을 그려야 하는 건축가들에게는 그들 상상을 자극하는 더 없이 좋은 원천이 되어 한결같이 이 매력적인 서울을 그리워 하게 하는 것이다.
공원을 넓히고 넓은 길을 닦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쩌면 오랜 영욕의 역사를 가진 서울을 성격 없는 도시로 만드는 일일 수 있다. 그 보다는 서울의 어두운 곳으로 여겨지던 소위 불량자구들을 감추거나 없앨 일이 아니라 밝혀서 나타내 보이는 일이 우리를 더욱 당당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게 참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