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에 서서

좋은생각

2006. 3. 26

조선왕조 수도로서 서울의 영역은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 소위 내4산을 이은 성곽 안이지만, 큰 영역은 이들을 감싸는 또 다른 네 개의 외산, 삼각산과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 등으로 형성된다. 이 내외부 산들이 중첩되며 만들어지는 풍광이 서울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다. 이 속에 왕도를 건설하자면, 중심축을 설정하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고 도시시설은 그 축을 따라 순차적으로 놓으면 되는 일이다. 당연히 이 축 위에 경복궁이 배치되고 그 앞에 육조거리가 조성되었으며 그 끝에 종로가 직교한 후 이 길이 성곽과 만나 동 서대문이 되었다. 이 축은 그 당시 중요한 이론적 토대였던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과 관악산의 정상을 잇는 남북의 선으로 만들었는데, 실제로 북악산에 올라 관악산을 바라보면 그 선상에 정확히 경복궁이 앉았으며 멀리 남대문도 그 위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근데 이상한 것은 광화문만이 이 축과 어긋나 있다. 왜 그랬을까. 연유는 다음과 같다.
일제가 조선왕조를 묵살하기 위해 총독부청사를 건설하며 경복궁 축과 5.6도를 틀어 지었다. 이는 남산에 지은 그들의 신사를 바라보기 위해서였고, 경성부청사(서울시청)도 그 축선 위에 지으면서 조선왕조를 버티던 축을 비튼 것이다. 문제는, 지난 1968년 없어진 광화문을 콘크리트 모조품으로 다시 지었는데 그 축을 총독부청사에 맞추고 세종로도 이를 따라 정비하면서 이 뒤틀어진 축은 서울의 중심축이 되고 만다. 그리고 지난 문민정부 시절 조선총독부건물을 파괴하고 경복궁을 복원하기 시작한 후 이 역사적 공간은 뒤틀린 채 노출된 것이다.
그래서 세종로에만 가면 공간에 민감한 체질인 나는 불안하다. 박제되어 나타난 경복궁과 가짜 광화문, 쌩쌩 달리는 차량들의 위협이 불편한 축에 얹어져 나를 잠시도 머물 수 없게 하는 게 서울의 중심이라니……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이를 바로잡고자 광화문을 원상 복원하고 그 앞에 광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쌍수 들어 환영하지만, 이왕이면 과감하게 육조거리도 다시 추적하여 원래의 축인 북악과 관악을 잇는 선형의 시민광장으로 만들면 어떤가. 천년 역사의 서울이 구태여 역사박물관에만 있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면 이 경박한 시대에 사는 우리의 삶이 좀더 진중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