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의 도시-선암사

주간조선

2003. 12. 17

어느 유산균음료 광고에, 한 동자승이 손 씻을 물을 들고 시원치 않은 배변습관을 가진 상좌스님을 기다리는 어느 사찰의 변소 풍경이 나온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로 일컫는 그 변소가 있는 절이 전남 순천의 선암사(仙巖寺)이다. 일을 볼 때 빗살 나무창을 통해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긋이 감상할 수 있어 그렇다고 한다.
이발소에 걸려 있는 달력의 풍경화나 사진 속에 무지개 형태로 된 돌 다리가 나오면 이는 거의 틀림없이 승선교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 다리라는 칭호가 붙는 이 다리가 있는 곳도, 선암사로 오르는 길목이다.
우리의 전통 예술품을 소개하는 책자에 곧잘 나오는 네 개의 연이어진 물확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소재지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데, 이도 바로 선암사의 승방인 달마전 마당에 있다.
선암사는 송광사와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지척의 거리에 있으면서도 송광사에 비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승보종찰(僧寶宗刹)로 이름 높은 송광사의 위세에 눌려 세력을 얻지 못했지만, 신라 경문왕 때 창건된 선암사는 조선 정조임금 때에 백일기도를 올려 세자의 탄생을 이루게 했다는 공으로 왕실의 원찰로 지정을 받아 한 때는 백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으며 수 백 명의 수행승들이 기거했던 대 사찰이었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한국의 수 많은 절집들 중에서 이 선암사 가보기를 제일 좋아한다. 부석사의 사무치는 그리움도 감동적이지만 건축을 하는 나에게는 그런 애잔한 감정을 마냥 좇을 수 없다. 건축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선암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찰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데에 있다. 어떤 종파이건 수기(修己)의 자세가 원하는 진리에 도달하는 첫 걸음이며 그 조건은 청빈이고 여기에는 다소의 고행이 따르게 마련이건만, 요즘 얼마나 많은 종교단체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가. 호젓하여 속세에 찌든 몸을 씻게 하던 절로 가는 길을 아스팔트로 뒤엎어 차량의 소음으로 오염시키고 불사를 중창한다며 옛 사찰의 고졸한 풍경을 지우고 사바세계의 천민 상업건물의 행태 무색한 풍경을 만드는 오늘날의 절들을 보면 해탈은 아직 요원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선암사는 여전히 산사의 고졸한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위엄이 더해가며 우리로 하여금 경건과 침묵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있다. 사실은 그렇게 된 연유가 좀 다른데 있다.
선암사는 1970년에 창종된 태고종의 본산인데 이 사찰의 재산은 조계종의 것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사철정화유시로 시발된 비구승과 대처승 간의 반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직 그 재산 분규가 결말이 나지 않아 아무리 사찰의 재정이 넉넉해도 함부로 건축물들을 건드릴 수 없는데 기인한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오히려 선암사의 원형을 보전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선암사에는 인근 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괴한 중창불사도 없고 무법천지의 현대불교건축도 없어 우리에게 옛 산사의 깊은 맛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암사에 대해 찬탄하는 실제 이유는 그 건축들이 갖는 공간구성의 드라마가 대단히 다이나믹하다는 데 있다. 옛날 중흥기에 비해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대웅전 외에도 여러 요사채와 선방 불전 등 여전히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이 각 기의 건축들이 죄다 보물 같은 건축공간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대웅전의 서편에 있는 설선당이나 그 앞의 심검당 혹은 창파당 같은 요사채는 대개 2층 혹은 3층의 단면 구조를 가진다. 이 단면의 비례는 외부와 충분히 격리된 느낌을 가질 정도를 이루고 있어 가운데 있는 마당만이 유일하게 하늘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장소이다. 수도자로서는 더 없이 용맹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인 이 마당을 중심으로 아래층에 승방이 배치되고 위층에 곡식을 저장하거나 휴게의 용도로 쓰이는 공간을 두고 있는데, 때로는 벽으로 막히고 더러는 뚫려 있는 공간의 전개 수법이 탁월하다.
위쪽에 있는 무우전에 가보면 더욱 놀라운 공간을 보게 된다. 이 승방의 출입은 다른 요사채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외부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부엌을 통해 이루어진다. 남서 측 귀퉁이에 붙어 있는 문을 통해 들어가면 부엌의 어두운 공간에 시야가 암흑으로 되다가 이내 밝은 마당으로 나오면 그 눈부심에 초점을 다시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부비고 다시 뜨면 마당의 위쪽에 오른 편으로 지우쳐서 각황전이라는 불전이 햇살을 가득 안으며 보석처럼 등장한다. 가히 극적이다.
뿐 만 아니다. 응진전은 몇 개의 불전과 승방, 산신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영역의 크기는 작지만 또 다른 완전한 사찰의 모습을 드러낸다. 왼편 달마전의 마당을 들어서면 앞 서 언급한 아름다운 물확들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자태로 놓여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암사 경내의 모든 건물군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공간을 만들며 뚜렷한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다. 선암사는 일개 사찰이 아니라 수도자들을 거주민으로 가진 도시였다.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리 중심시설인 대웅전의 축을 다른 건물들이 따르지 않고 죄다 다른 축을 가지고 다른 중심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건물군이 없어져도 선암사는 그대로이며 한 부분이 덧대어져도 그도 선암사인 것이다. 부분이 전체보다도 결코 덜 중요하지 않는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야말로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 모습 아닌가.
자연과 건물을 엮는 길들이 더러는 넓게 더러는 좁고 급하게 놓여져 이 개성적인 도시의 건축들을 묶어 놓고 있다. 거기에 물길들은 또 다른 조직망을 형성하며 이 도시의 전역을 배회한다.

선암사를 일개 건물 차원으로 보면 송광사나 해인사 같은 조직적 건축과 비견하여 더러 폄하할 지 모르나, 하나의 작은 도시로 이해하게 되면 그런 건축에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지혜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선암사는 건축이 아니라, 작은 도시이며 몸을 닦고 영혼을 닦는 수도자의 도시인 것이다.
늦은 봄 오후쯤 이 도시에 몸을 던져 보라. 모란과 연산홍과 자목련 수국 들이 길과 마당을 가득 채우며 도시의 풍경을 취하게 한다. 마치 극기하여 득도한 이 도시의 거주자들에게 내린 부처님의 자비처럼 천지를 수 놓고 있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건축의 신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