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독의 집

대우건설 사보

1999. 12. 13

루이스 바라간과 산 크리스토발 경주마 훈련장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건축의 이론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체계가 거의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건축이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의한 것임에도 역사적 배경이 서구와 다른 우리는 그 지식의 역사와 경험의 과정을 알지 못한 체 그저 저네들이 만든 결과를 가지고 우리의 건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이라는 것도 그렇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도 그러하였으며 최근의 해체주의라는 것도 그 껍데기의 파편 만을 건축의 중심 된 사조인 양 애지중지 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러한 학문이나 이론이 직수입되지 못하는 것도 많아 왜곡된 형태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본말이 전도되어 건축화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물론 서구의 건축이론이 우리에게 소개되기 이전에 우리의 이 땅에는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건축들이 당당히 존재해 왔던 터임에도 ‘우리의 견해’는 저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도 줄곧 무시되기 일 수였으며 그런 터에 우리의 건축 이론이 이어질 리가 만무하였다. 심지어는 지난 날 개발시대에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은 빈곤의 상징이요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하는 잔재였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과거 군부 독재의 정권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 하여 ‘ 한국적 민주주의’ 인가 뭔가를 우리에게 세뇌시키고 있었을 때에는 곡학아세하는 건축가와 건축학자들을 동원하여 ‘ 한국적’ 건축이라는 괴물들을 이 땅의 중요한 곳 마다 만들어 놓는 바람에 우리는 올바른 ‘우리의 건축’을 이 땅에서 찾는 일이 더욱 요원하여 지고 급기야 우리의 현대 건축은 미궁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들이 만든 ‘ 한국적 건축’은 대개 옛날 우리 선조들이 만든 건축모양을 흉내내어 기둥양식을 본뜨고 그 위에 기와를 얹고 원색의 색으로 칠하거나 계란 색인가 뭔가를 칠한 후 이것을 ‘한국적 건축’이라고 우겼다. 지금이라고 별 달라진 것도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구호가 신통한 말인 양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 왔었다. 과연 그러한가. 김덕수 사물놀이 패가 세계적이 된 것은 그 음악이 한국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물놀이는 우리의 전통 음악이 아니다. 전통적 악기인 북과 꽹과리, 장고, 징 등은 악기 중에서 가장 원시적 형태인 타악기에 속한다. 이 타악기의 리듬은 세계 어느 곳이든 통하게 되어 있는 음악이다. 바로 보편적 음악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김덕수 패의 신명이 세계인들에게 지극히 어필 되는 것이지 한국 고유의 리듬이 어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명훈이나 백남준이 세계 제일이 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세계적이고 보편적이어서 그렇지 그들이 소위 대한의 건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면 한글이라든가 판소리 같은 가장 독창적인 것이 이미 세계적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들이 세계적이 되기는 가까운 세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이것은 열등감일 뿐이며 편협한 국수주의자의 단견이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건축 현장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의 주변은 온통 공사장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내 곳곳에 타워 크레인이 서 있고 우리는 이미 불도저의 굉음에 친숙해 있다. 이런 우리의 도시들은 건설현장 찾기가 쉽지 않은 서구의 도시들과는 월등히 비교된다. 세계에서 가장 빈번한 건축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이 땅이지만 우리 한국의 건축은 아직 세계 주변국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우리의 도시에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기를 원하여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 외국 건축가들에게도 우리의 건축 현장은 단지 비즈니스이고 돈 버는 현장이지, 새로운 건축이념을 세우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이 심각한 현실이다. 우리의 건축주들이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함에도 그들에게 한국의 건축은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한국에는 건축이론이 없고 한국에는 건축가가 없다고 그들이 업수이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불쾌하지만 자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나는 건축가가 있다.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Luis Barragan ).
그는 1902년 멕시코의 북쪽 과달라하라( Gudalajara )에서 가축목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과달라하라 대학 토목과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건축수업을 하여 결국 불세출의 건축가가 된 사람이다. 그는 20대의 청년 때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과 그리스의 마을들을 여행하고 그 당시 유럽 건축계에 새로운 물결을 이룬 국제주의 건축과 모더니즘의 이념에 깊은 영향을 받고 고향에 돌아온다. 몇 개의 주택과 조경작업을 하던 중 30세가 되는 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르 꼬르뷔제의 강연을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후 건축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이때 만난 조경건축가 겸 작가인 페르디난드 바크는 그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며 영향을 주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조경에 대한 혜안을 가지게 된다. 이후 그는 멕시코로 거주지를 옮겨 1988년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기까지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멕시코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름다운 현대건축을 성취한 업적으로1980년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상( Pritzker Award )을 수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언설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건축 만큼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 신화와 모든 참된 종교적 체험 속의 비이성적인 논리가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의 예술적 행위의 원천이 된다. …..아름다움을 빼앗긴 인간의 삶은 가치가 없다……내가 그린 마당과 집에서는 침묵을 들을 수 있다……고독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만이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 고독은 좋은 반려이며 내 건축은 고독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이들에게 맞지 않다…… 평정함은 분노와 공포에 대항하는 위대하고 진정한 치유제이다 그리고 더욱이 오늘날 그것은 건축가의 의무이다. …… 예술작업은 그것이 침묵적 즐거움과 평정함을 찾을 때 완성된다…… 죽음에의 확실성이 행동의 원천이며 따라서 삶의 원천이다. 예술 속에 있는 절대의 종교적 요소에서 삶은 죽음을 이긴다…… 내 건축은 자전적이다. 내가 성취한 모든 것에서 내 아버지의 농장과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본다. 내 작업에서 나는 현대의 삶의 필요에 맞게끔 아득한 노스탤지어라는 마법을 부리도록 애써왔다…….건축가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본질적인 것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이성적 분석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본다는 것이다. 천진성을 갖고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스탤지어는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에 대한 시적인 놀라움이다. 예술가 개인의 과거가 그의 창조적 잠재력의 원천이듯이 건축가는 그가 가진 노스탤지어가 주는 계시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나는 이러한 미적 진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건축을 한다……”

다소 장황하게 그의 연설을 인용하였지만 그의 이 명구들은 그의 건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되었을 뿐 아니라 물질로 혼탁해진 이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명제가 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멕시코라는 땅에서 활동한 소위 제 3세계의 건축가였다. 멕시코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16세기에 스페인으로부터 침략 당하고 기독교 전교의 미명아래 무자비한 살육과 수탈을 당하기 전 까지 멕시코는 아즈텍과 마야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유한 문화의 민족이었다. 그들이 오늘날 남기고 있는 유적과 유물을 상상해 보면 과거 그들의 영화를 잘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고유한 전통이 서구인들의 의식과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오랜 세월동안 간직해 온 그들의 생활과 가치를 졸지에 날려 보내게 하면서 멕시코의 땅은 비극과 한탄의 역사로 들어 가게 된다. 스페인의 식민지로 수 백년을 신음하여야 했고 근세에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수탈을 겪었으며 이후 독재의 압제와 정치적 변혁기를 보내야 했다. 아직도 선진국의 주변국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땅이다.
이런 땅에서 나올 수 있는 문화의 형태는 무엇일까?
스페인계지만 멕시코 근세사의 비극을 목격하게 된 바라간에게는 노스탤지어와 침묵 그리고 고독이란 단어가 그의 황폐한 땅 멕시코에서 발견한 키 워드가 된 것이다.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과묵했으며 금욕적인 수도사와도 같은 삶을 산 건축가였다.
1964년에 캘리포니아의 라호야에 소크 생물학연구소를 설계하고 있던 루이스 칸은 그를 초청하여 조경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 루이스 칸이 그 때 그렸던 건축은 두 개의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수목이 가득찬 정원을 두는 것이었다. 이 마당의 중요성을 간파한 바라간은 칸에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한 개도 두지 말 것을 이야기 하고 오로지 비워 둘 것을 권고한다. 불멸의 건축이 된 ‘태평양을 향한 비운 마당’은 이때 태어 나게 되었으며 그 소크 연구소는 정작 그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이 한정하는 이 비움의 마당으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건축이 될 수 있었다. 칸은 두고 두고 자기가 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그렇듯 바라간의 건축의 주제어는 절제와 침묵이며 그 속에는 비움의 아름다움이 충만하여 있다. 멕시코에 있는 그의 자택을 가보면 길 거리에 면해 있는 소박한 외관은 이웃한 집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내부로 들어가면 품격 있는 건축 공간과 디테일들이 방문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바라간의 건축에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옥상으로 나가면 멕시코 시의 파노라마 경치를 볼 수 있으리라고 여긴 방문자들을 맞이 하는 것은 사방으로 높게 둘러 싸인 하얀 벽이며 오로지 하늘 만 뚫려 있다. 이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왜 바라간은 이렇게 막힌 공간을 만들었을까. 그의 프리츠커 상 수상 연설에서처럼 그는 철저히 고독하기를 원하였으며 그 속에서 본질을 사유하고 그 스스로를 발견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렇게 결론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멕시코시의 남부에 있는 카푸친 수녀회 소속의 한 성당을 개수 하면서 바라간은 지극히 소박한 질료와 장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절제된 벽체를 통해 절대적 묵상과 은총의 공간으로 만든다. 마치 구원의 세계가 그러하듯 평온과 감사가 넘치는 종교적 장소이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색채는 때때로 아주 강렬하다. 처음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러한 색채는 멕시코의 전통적 요리에서도 발견되는, 멕시코 특유의 색상이었다. 멕시코 평원에 내리 쬐는 강렬한 햇살 그리고 한 점 구름 없는 짓 푸른 하늘, 그 밑 황토의 구릉 위에 낱게 드리워진 길다란 하얀 벽 또는 때때로 육감적 색상, 이러 한 풍경이 바라간이 한 평생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노스탤지어인 것이다.

1967년에 그가 설계한, 멕시코 시의 교외에 순수 혈통을 가진 경주용 말을 훈련하는 장소 및 그 소유주의 주택인 ‘산 크리스토발 경주마 훈련소( San Cristobal Stable )’는 그러한 바라간의 건축 어휘의 정수들이 집합된 건축이다.
이 건축은 길 거리와 높지 않은 벽으로 막혀 있어 그 속에 뭔가 특별한 풍경이 있을 것을 유추 시킨다. 이 벽은 훈련하는 말들의 시각을 보호하기 위한 높이로 계획되어 있으며 그 내부는 말들을 훈련하는 부분과 주거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고 마당 한 가운데 놓인 수영장이 집과 출입구를 연결한다. 몇 개의 마당들이 단순한 형태의 박스에 의해 둘러 싸여 있고 채색된 벽들은 색채별로 다른 기능을 갖는다. 이를 테면 말들을 위한 시설은 밝은 색조로 되어 있고 자주색은 마부와 기수들을 위한 색채이며 핑크 빛은 대문과 마당과 연습장의 경계로 사용되는 등 색채 마다 제각기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색채들은 서로 보완하고 때로는 대비됨으로써 형태와 기능을 구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 건축의 일차적인 인상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이 건축에서 정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 전체에 흐르는 침묵의 시간이다. 특히 이중의 벽 속에서 흐르는 분수는 말들을 위한 수영장으로 물을 공급하는 통로이면서 말의 영역과 집을 가르는 경계이지만 그러한 기능을 띄어 넘어 이 수평의 분수는 이 건축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침묵을 공급하는 원천이다. 이렇게 공급된 침묵은 길고도 단순한 벽체와 그 벽체 속에 뚫려진 공허부들에 의해 한정되어 이 건축을 관조와 사유의 결정체로 만드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고독의 정경을 여기서 볼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산 크리스토발 경마훈련장’을 비롯하여 바라간의 다른 건축 거의 모두가 세계 건축의 중요한 텍스트이며 경외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계 건축의 변방인 멕시코의 건축가이며 세계건축계가 격렬한 변화를 꾀하고 있을 때에도 그저 멕시코의 평원 위에서 로우 테크( Low Tech )의 건축을 만들고 있을 뿐이었음에도 세계가 그의 건축에 존경과 성원을 보내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바로 그는 비록 특수한 장소에서 작업하였으나 그의 건축은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즉 멕시코의 전통을 인류의 공통적 감동을 통하여 공명 시킨 것이다.
언젠가 한번 쓴 적이 있다. ‘ 건축가는 지적 감수성을 통하여 보편적 세계를 보는 자이다’ 이 말은 루이스 바라간을 적확하게 표현한 듯 한 말이다. 그는 평생을 구도자 처럼 살며 고독해 했으나 침묵과 절제 속에 건축의 본질을 구현함으로써 각종 사조며 이즘이 난무하던 세계의 건축계에 건축의 중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물질적 팽창으로 껍데기는 풍요하나 한 없이 허탈한 알맹이를 가진 20세기말의 한국 건축계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반드시 얻어야 할 교훈이, 이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 속에 있다.
건축은 사유의 결과이지 물질의 소산이 결단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