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깨닫는 일상의 힘-‘노여움과 천박한 욕망

2007. 3. 19

여행을 왜 할까.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 보면 여행하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 아름다운 추억에 기대어 그 노고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게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순간적 일탈일 뿐이며,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일탈은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으로 사로잡힌 우리의 현실을 증오로 모는 방편이 되어 결단코 건전하지 못하다. 오히려, 여행은 일상의 삶으로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 즉 새로운 양식을 찾기 위한 동물들의 본능적 행위라는 사전적 정의가 더욱 건전하다. 다시 말하면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나는 직업을 핑계로 여행을 자주하는 편에 속한다. 핑계라고 말했지만, 건축설계라는 일이 다른 사람의 삶을 조직하는 일이고 보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평소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임이 틀림이 없다. 흔히들 건축공부라는 것이 보통 예술이나 기술에 대한 공부로 알고 있지만 진정한 건축공부는 우리 삶의 진정성에 기반을 두는 인문학적 탐구이어야 한다. 즉, 문학을 통해 우리의 다른 삶들이 어떠한 지를 끊임없이 살펴야 하고, 우리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며, 나아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위해 철학을 놓을 수가 없는 게, 건축공부이며 건축이 지향하는 바다.
그런데 문자를 통해 우리의 삶을 살피는 일은 이내 환상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때때로 사진도 있고 그림도 있어 문자적 삶을 구체적 이미지로 전환시키기도 하지만, 그런 그림과 사진도 사실 누군가에 의해 전달된 ‘현실적 환상’이고 보면 어쩌면 순수한 환상보다 더 실체를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때는 바야흐로 고도의 정보시대여서 여행에 소요되는 수고를 절약하기 위해 인터넷이나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른 현실의 실체에 접근하는 일이 완벽하다고도 믿는다. 그러나 이것 역시 환상이다.
현실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컨텍스트는 너무도 막대하다. 공간적으로 무한히 연결된 장소는 아무리 큰 화면으로도 담을 수 없는 크기이며, 수 만년의 시간적 축적을 가진 그 장소를 대단한 길이의 다큐멘터리로 담는다 하드라도 족탈불급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놀라운 정보통신으로 현실의 장소를 재현한다 하드라도 그것은 파편일 뿐이며 그 화면으로 우리의 뇌리에 남는 이미지는 환상이다.
진실은 항상 현장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땅 위에 서야 하는 건축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나는 그 진실을 보기 위해 현장으로 여행한다.
20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를 선택하라면-불필요하고 별 가치 없는 선택인 줄 알지만- 르 코르뷔제라고 나는 답한다. 그는 젊을 때 구습에 얽매여 있던 그가 혁명적 사유의 전환을 이룬 것은 동방여행을 통해서였다. 그가 받은 얄팍한 건축수업은 현장에 존재한 역사적 건축의 진정성을 목도한 충격의 결과였던 것이다.
우울한 날씨의 에스토니아 출신인 루이스 칸이 오늘날 빛과 공간이라는 주제어적 건축가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지중해변의 여행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눈부신 장소를 경험한 결과였으며 그로 그는 가장 영감에 찬 건축가가 되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실마리를 끄집어낸 아돌프 로스는 어떤가? 그는 신문명의 미국여행 이후 그가 품었던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확신으로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외치며 허무에 뒤덮인 세기말의 위기를 구하게 된 바 있다.
정규 건축교육이라고는 전혀 받지 않은 안도 다다오가 오늘날 세계의 건축가가 되고 급기야 동경대학의 정교수가 되어 동경대학으로 하여금 그들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한 것이, 그의 젊은 시절 떠난 여행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행의 가치는-적어도 건축에서는 어떠한 교육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를 근본적으로 가르친 것도 사실은 여행을 통해서이다. 내가 오랫동안 김수근선생의 건축에 함몰되어 내 스스로의 건축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을 무렵, 마치 밤바다의 선원처럼 방향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찾아 나선 건축의 현장들은 그 밤바다 위를 비추는 선명한 별이었고 내가 쫓아가야 할 진실이었다.
그전에 이미 20년간을 건축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훈련하고 익혔었지만 그 축적은 근육과 살점이었을 뿐 생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여행을 통해 비로소 나의 실체를 조우한 것이다.
그렇다. 여행은 실체를 만나게 한다. 우리가 살면서 가지게 되는 환상이 얼마나 많은가? 환상은 기만이며 사기라고 루카치가 말했던가? 환상은 한 낱 주관적일 뿐이며 자신의 균열되고 불구적인 인격의 무가치성 때문에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게 하는 방편일 따름이다.
그래서 실체를 만나는 여행은 우리를 둘러싼 허무한 환상을 깨고 힘있는 오리지날리티에 접근하게 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시베리아기행을 준비해 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페테스부르그까지……극동항의 엑조틱한 풍광과 시베리아평원의 적막과 바이칼호수의 고독, 우랄산맥의 차가움과 짙은 무채색 도시들의 편린들이 오버랩하며 그 행선과 자료들 사이에서 몇 달을 보내며 이미 러시아 땅에 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어릴 적부터였는 지도 모른다.
나는 시베리아기행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베리아와 러시아의 도시들은 문학과 영화, 음악 그리고 역사와 정치 등에서 이미 나에게 상당한 양의 지식축적을 만들고 있었으며 이 막대한 양이 만든 환상은 아마도 실체와 다른 세계일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므로, 낭만적 여행이기는커녕 그 실체의 발견이 내게 가져다 줄 괴리에 대해 불안해 했다.
그러나 이번 시베리아 기행을 준비하면서 나를 묘하게 흥분시켰던 것은 발터 벤야민 글귀였다. 그가 1927년에 쓴 모스크바일기의 몇 구절이다.
….. 저는 이 순간의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그곳은, ‘모든 사실들이 이미 이론’이며 따라서 모든 연역적 추상, 모든 예측, 나아가 일정 한도 내에선 모든 판단들마저 보류하고 있는 곳이다.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정신적 상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신적 상태에 대해 이런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이야말로 러시아 체류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확실한 것이다……이 도시는 처음엔 수백 개의 경계장벽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구역의 경계였던 성문과 교회들이 불현듯 길 한가운데 서있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나면 이 도시는 신참자에게 미로로 변한다……대도시는 신참자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하고, 가면을 쓰고, 달아나고, 공모하고, 유혹하면서 결국 그가 완전히 지쳐 떨어져나갈 때까지 자기 주위를 헤매 돌아다니게 한다…모스크바의 거리들엔 어떤 특별한 것이 있다. 러시아 마을들이 그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다……거리가 풍경의 차원으로 자라난다……

이방인인 나에게 스스로 방어하고, 가면을 쓰고, 달아나고, 공모하고, 유혹하면서 결국 내가 완전히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내가 내 주위를 헤매고 돌아다니게 한 도시, 아니 러시아 땅……
이 불길한 문구는 사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한 장소를 오래 살아야 그 장소를 잘 알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은 우매한 자의 자위적 부언이다. 장소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 있고 그 분석에 지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자라면 그 장소에 거주한 시간의 길이는 그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영감이란 학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이라는 코르뷔제의 말은 거의 항상 옳다.
나는 러시아 땅에 대해 내 나름대로 많은 지식을 가졌으며, 그리고 그로 인한 이미지가 역시 환상일 것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고, 이 모처럼의 여행으로 여느 때처럼 그 환상을 깰 것이라는 ‘불안에 대한 기대’를 가졌지만, 그 불안마저 이루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 땅의 크기에 비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너무도 작았고 지식은 거의 밑 바닥이었으며 마음 또한 그런 자만으로 완강해서 러시아는 저기 있는데 나는 부단히 내 주변만 돌다가 오고 만 것이었다. 민망스러웠다. 오리지널의 힘을 입은 게 아니라 상처투성이로 일상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히려 더 ‘떠들썩한 세상의 가운데서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으로 가득 차게 된 내 자신을 보고 있다.
그러나……어쩌면 이미 나는 이 일상의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더욱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그럴 게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항상 비관주의자여야 하며 현실도피를 항상 꿈꾸는 자이고 그래서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내가 서 있는 땅을 부정하고 나의 언어와 심지어 사유의 근저마저 그릇되다 일컫게 되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자존을 포기한 입장의 말이 아닌 한, 진실이라는 현장은 내가 서있는 이 땅이라는 사실은 보다 명백한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여행에서 만난 러시아 땅은 그렇게 내 주위에서 서성이고만 있었을 게다.
부둥켜 안을 수 없었던 그 땅 위에서 내가 보낸 지난 여름 두 주간,
그 못난 추억을,
그렇게 자위한다.
2007년2월5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