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억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다.”

2012. 1. 01

도시를 중국어로는 성시(城市)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에 도시의 본질적 성격이 있다. 즉, 城은 도시의 물리적인 형상을 나타내며 市는 그 속에 형성된 삶의 모습이니 사회를 뜻한다. 영어로 파악하면 이 뜻이 더욱 확실하다. 도시를 뜻하는 영어는 두 가지, 시티(city)와 어반(urbanism)이 있다. 모두 그리스어에 기원을 갖는데, 시티는 사회를 의미하는 civitas에서 비롯되었고, 어반의 어원은 물리적 형상을 뜻하는 urbs이다. 그러니, 도시라는 것은 물리적 형상과 그 속을 채우는 사회가 합해서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물리적 형상인 어반에 비해 소프트웨어 격인 사회-시티라는 것은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동체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찾기 위해 모인 곳인 만큼 각기 주장하는 바가 달라 그 공통점을 찾아 같은 사회를 형성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도시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본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근세기 들어 우리는 수십만 명이 사는 신도시를 수도 없이 쉽게 만들어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은 체, 그저 물리적 형상인 어반만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해서, 우리의 공동체를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전혀 생략하고 서둘러 만들어 왔다. 이에는 마스터플랜이라는 유효한 방법이 있었다. 이 마스터플랜은 서양이 전시대에 신도시를 만든 방법이었던 바, 땅이 평면인 것을 전제로 용도별로 구분하고 계급적으로 나누어서 철저히 기능과 효율을 따지며 보랏빛 미래를 약속했던 그린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신도시는 결국 분파적 사회를 만들 뿐이었으며 오히려 온갖 갈등과 대립을 잉태하고 도시범죄는 더욱 증가되어 그 서양마저 이 방법을 이제는 폐기하였다. 그러나 서양화가 근대화인줄 알았던 우리는 이 그림을 우리의 산하에 깔아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메우고 물길은 돌리고 축대 쌓아 만든 게 모두 그런 천편일률적 전시대적 우리의 신도시였던 것이다. 그런 도시라고 사회가 형성되지 않을까. 그 속에서 형성된 사회는 당연히 구태의연한 공동체일 뿐이었으며, 그래서 점점 동일화된 도시에 특별함은 사라지고 급기야 지방은 서로의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신도시를 만드는 것은 그렇다 치고, 우리가 오랜 삶을 새겨온 옛 도시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 뻔한 난장처럼 만드는 일이 더욱 심각하다. 국토의 7할이 산인 이 땅의 도시들은 평지에 세워진 서양의 도시와는 그 근본이 다르다. 우리의 평지는 농경작지로 사용되는 땅이었으며 집터는 양지바른 산 밑동이 비탈에 자리 잡았다. 배산임수며 풍수며 지맥이 다 그런 연유의 말들이다. 아름다운 산세와 수려한 물길이 이룬 자연적 풍경 속에 오랫동안 우리는 고유한 삶을 기록하여 왔고, 땅에 새겨진 그 삶의 기록이 터의 무늬가 되었다. 그래서 터무니 있는 삶이란 오랫동안 한 장소에 거주하며 이뤄낸 근거 있는 삶을 의미했으며 우리의 자존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서양의 마스터플랜을 느닷없이 재개발이라는 미명으로 갖다 대더니 그 무늬들을 깡그리 지우고 천민자본의 토건질로 우리의 기억도, 존재도 지웠다. 급기야 우리 가족의 안정을 이루어 가문의 역사를 새겨야 할 집은 매매의 상품으로 전락하여 스스로를 끊임없는 도시의 유목민으로 몰아내었으니, 하이데커의 말을 빌리면, 정주하지 못하는 까닭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바로 터무니 없는 삶이 된 것이다.

광주, 나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임되어 지난 가을 그 행사를 무사히 마치기까지 20개월간, 이 의미 있는 도시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광주 역시 믿음직한 산과 유려한 물길이 넉넉한 풍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우리의 도시며, 이미 백제 때 그 기록이 있는 역사도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도시풍광은 마치 급조한 듯 보였다. 구도심은 분별없었고, 상무지구의 신도시 풍경은 서양인이 쓰다 버린 마스터플랜의 찌꺼기를 갖다 놓은 듯 거칠며, 구도심과 이 신도시는 그 결합마저 어정쩡하다. 그러니, 가는 데 마다 써 붙인 예술과 문화의 도시나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단어가 끝없이 공허하였다.
그러나, 이곳을 수 없이 오가면서 이 거친 도시풍광에 익숙해질 무렵 이윽고 나는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깊고 그윽한 향내를 맡게 된다. 광주 내부에 퍼져있는 음식의 향이며 소리의 향이며 필묵의 향이며 언어의 향이었다. 그 향내는 20세기 이 도시를 덮친 광기로도 덮지 못한 것이었으며 못난 도시개발로도 몰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짙어졌다고 했다. 그게 역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더욱 광주스러운데 눈에 보이는 풍경은 광주가 아니었으니…

이 도시를 위해 뭔가 해야 했다. 해서 비엔날레와 관련하여 하나의 제안을 했다. 우선 광주의 역사가 보이게 하기 위해 사라진 광주읍성을 상징적으로라도 복원하는 일이었다. 광주읍성은 1920년대 일제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그 둘레는 현재 도심의 중요가로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2.2킬로의 읍성이 꺾어지는 부분과 출입문이 있던 자리에 광주폴리라는 작은 공공시설물을 세워 읍성의 안과 밖을 알게 했다. 다행히 읍성 내에는 여전히 옛 길들이 남아있어 잘만하면 옛 고을의 공간구조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변이 다시 활력을 찾게 되면 도심은 재생하여 광주의 역사성을 다시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가들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운동임을 주지시켰으며 불비한 여건을 흔쾌히 감수하며 동의하였고 그들로 인해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만약에 이 광주폴리가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광주의 바른 터 무늬를 찾아 바른 건축가들에 의해 적합하게 계속해서 서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점이 중요한 문화적 거점으로 작용하여 주변을 자극하고 주변의 상점과 주택들이 반응하여 스스로 재생하게 된다면, 광주는 이제 다시 고유한 장소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지 않을까?
나는 이러한 방법이 광주를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태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 세월 터무니 없는 도시재개발로 원주민을 좇아내고 역사를 지우며 우리의 존재방식을 부정해 왔던 잘못을 대체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 방식의 성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보이지 않는 향들이 더욱 짙어가는 과정이니 섬세하고 민감하며 그래서 터무니 있는 광주정서에 딱 들어맞을 것이라 또한 믿는다. 그렇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다. 늘 변화하고 생성되며 오랜 기억 위에 욕망이 덧대어지는 생물체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렇게 얘기한다. “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떤 아름다움도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