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암-우리와 더불어 완성되는 건축공간의 신비

주간조선

2003. 10. 22

내가 5년 전 런던에 소재한 북런던대학의 객원교수로 1년 동안 체재하고 있을 때, 런던의 건축가뿐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단어가 ‘emptiness’ 라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이 비움이라는 개념어는 본디 우리의 고유한 미학이 아니던가. 서구의 지식이 한계에 도달한 지음 그들은 이제 동양의 아름다움에서 그 탈출구를 발견하려 드는 것인가. 실제 많은 건축가들이 그들의 건축을 설명하면서 이 비움을 보편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에겐 잊혀진 이 아름다운 미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2000년 격년제로 개최되는 베니스 국제건축전의 테마는 ‘ Less Aesthetic More Ethic’ 이었다. 의역하면 검박한 건축이 더욱 윤리적인 것이라는 뜻일 게다. 이 질문에 많은 건축가들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대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한스 홀라인은 일본 교토에 있는 료안지(龍安寺)의 정원을 패러디 한 작업을 제시하였다. 이미 료안지는 적지 않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비움의 공간에 대한 중요한 典範이 되어 있는 것을 알지만 그의 인용은 너무도 적나라한 것이었다.
사실 이 정원을 방문해 보면 그 놀라운 정적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많은 방문객이 마루에 조용히 앉아 불과 돌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인 이 공간이 주는 고요함을 숨죽이며 관조하고 있다. 아무도 소리내지 않으며 그 정원을 피안의 세계인 양 그냥 바라볼 뿐이다. 그렇다. 그 정원은 결단코 변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으며 어떤 것도 바뀌어질 수 없다. 이것이 비움의 미학일까…… 그렇지 않다. 이 공간은 비워져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물체가 가득 담긴 듯, 다만 금지된 영역이며, 나에게 그 비움은 죽은 것이다.

우리의 마당과 비교를 해보면 잘 안다. 비워져 있는 우리의 옛 마당은 그 속에서 잔치를 해도 괜찮으며 노동을 해도 무방하다. 놀이판을 벌릴 수도 있고 제례의 의식을 거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이 나면 다시 비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마치 모든 삼라만상을 머금은 듯 고요해진다.
이 것이 참된 비움이며, 창조적 비움이고 살아있는 공간인 것이다. 료안지의 비움이확정적이라면 우리의 마당은 불확정적이요 이 개념은 현대건축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대개의 우리의 옛 건축은 이 보물 같은 공간인 마당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 불확정적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옛 건축을 내가 꼽으면 두 말 않고 영선암이다.
영선암은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봉정사의 작은 암자이다. 영화에 밝은 독자들은 알 것이다. 지난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에서 늙은 스님이 문을 열고 해진을 부르는 곳이 이 영선암의 법당인 응진전이다. 이 영화 이후로 이곳은 명소가 되었다. 그 결과 몰려드는 방문객을 편히 맞기 위해 영선암과 봉정사 사이에 흐르는 계곡에다 널찍한 다리를 놓는 바람에 이 암자를 찾아 돌아 오르는 고즈넉한 맛이 사라져 버린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화루(雨花樓)라는 현판이 걸린 길다란 누마루가 긴 세월의 무게를 담으며 휘어져서 앞을 가로막은 모습을 보면 이 건축이 쉽사리 바깥 사람에게 그 내부를 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출입을 위한 누마루 밑의 문과 그 높이는 불과 다섯 자 남짓하여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게 하였다. 따라서 우리 눈의 시선은 누마루 밑을 통과할 때까지 자연 아래로 향하고 댓 단의 돌계단 앞에 와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면 한 길 높이 위에 햇살 가득한 마당이 있다. 머리를 조아려야 오를 수 있는 마당이라……
그러나, 그리고서 이 마당에 오르면 볼 품 없는 암자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이내 실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영선암의 건축 하나 하나는 별 볼 품이 없다. 쓴 부재도 시시하고 그 결구방법도 그저 그렇다. 공간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괜한 시간 낭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엉성한 건물들이 집합하여 만드는 공간의 구성은, 공간을 볼 수 있는 이에게는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자아내게 하고 드디어는 한 없는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영선암은 여섯 채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의 불사건축은 법당을 정면에 두고 반듯한 마당을 구성하는 단아한 건축이 좌 우측과 앞쪽에 놓여지게 마련일 것이다. 여기서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남쪽의 우화루와 마당을 마주하는 법당인 응진전과 그 옆의 삼성각 그리고 마당의 좌 우측에 승방과 주지실, 노전채 등이 참으로 엉성하게 집합되어 있다.
마당은 법당 앞에서 단이 높아 그 사이를 바위와 소나무가 심겨져 법당과 삼성각 사이의 공간을 적당히 둘러 싼다. 그러나 바로 이 공간이 누마루 밑에서 오른 입구와 대각선을 이루어 시선을 늘어뜨리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다. 주지실은 툇마루 모퉁이가 누마루와 붙어 있다. 마치 떨어지는 님의 치마 한 쪽을 슬며시 당기는 듯 자못 애처롭다. 그러고 보면 마당을 둘러싼 툇마루들은 모두가 같은 레벨로 되어 서로 애절한 동위성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 사이 사이로는 끊임없이 외부의 풍경이 드나 든다. 그 속에 나는 어느새 이 건축이 만든 무대의 위에서 끊임 없이 사유하는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다. 완벽하지 않은 영선암의 개별 건축군의 구성은 마치 무대 위의 배경이다. 마당은 비워진 무대이고 나의 행위는 자연에 의해 관망되는 연기였다. 물론 누구든 여기선 독백하는 모노드라마의 주역이며 집단행위의 출연자가 된다. 그렇다. 영선암은 그 마당에 담기는 사건에 의해 건축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서 누하루의 누대에 올라 바깥과 영선암의 마당 사이의 경계에 걸터 앉아 쏟아지는 햇살 속에 몸을 맡기면, 나는 사바세계와 극락의 경계에서 그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우리네 삶을 관조하고 있다는 것을, 이윽고 깨닫게 된다. 그 것은 축복이며 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