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지도

생활성서

2022. 11. 01

제가 하는 건축설계 중에 10년이 넘도록 저를 붙들고 있는 일 하나가 사유원이라는 수목원입니다. 아직도 숙박시설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데 이 수목원이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 올랐다고 합니다. 10만평이 넘는데도 하루 방문객을 2백명으로만 제한하고 있어 인터넷 예약창구에는 예약마감이라는 글자가 늘 떠 있습니다. 6백년 수령의 모과나무들이나 수백년 된 배롱나무들과 소나무들 그리고 느티나무 숲이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온 산맥의 끝자리에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목원이라면 더 크고 오래된 곳도 많은데 왜 이리 많은 이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곳을 와보고 싶어 할까요?

이 수목원은 대구에서 철강사업을 하는 한 기업인이 일구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강력한 문화예술 후원자로 활약하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걸 극구 꺼려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10여년전에 생애 마지막 일이라며 상의해왔을 때, 사유와 명상을 위한 장소로 만들자고 한 저의 제안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름을 사유원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공자의 논어에 정명(正名)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름에 부합하는 실제를 가져야 바르게 선다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이 직설적 이름의 수목원에 걸맞는 부대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시설마다 또한 합당한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예컨대, 보잘것없는 집이란 뜻의 현암(玄庵)이라는 관리용숙사에 들어서면 인공시설물 하나 보이지 않는 대자연 속에 망연자실하며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게 합니다. 명상의 뜰이라는 명정(暝庭)은 전망대지만 오히려 수목을 보지 못하게 땅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아름다운 수목들을 거쳐온 자신만을 보는 시설입니다. 또한 사유의 연못이라는 사담(思潭)은 물가에서 행해지는 공연의 배경이 되는 사색적 건물입니다. 그 밑 계곡에 조성된 다섯 연못을 이어주는 휴게시설은 이름마저 누운 수도원이라는 뜻의 와사(臥寺)라고 짓고 지형을 따라 놓인 길다란 박스 속에 기도소와 식당, 채플을 연상하게 하는 시설을 두었습니다. 심지어 새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새들의 습성을 조사하고 높이에 따라 달리 날아드는 그들 공간을 나누어 수직적으로 배치하여 새들의 수도원 곧 조사(鳥寺)라고까지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수도원의 시설에 맞는 가구들도 있습니다. 마침 사업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런 종교적 분위기를 반겼고, 급기야 그 부인의 요청으로 천주교 경당까지 지었습니다. 이 경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바로시자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여 이미 세계적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경당을 내심낙원(內心樂園)이라고 이름했으니 正名은 이곳에서 당연한 절차가 됩니다. 이 이름은 그 부인의 아버님인 김익진 프란치스코 선생의 저서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수목원에는 방문자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묵상하게 하는 시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방문객들의 후기를 보면 다시 오겠다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눈으로 본 것보다 더한 울림이 여기에 있다는 알게 된 까닭이며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렸을 지 모르는 영성을 다시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고침정사(高枕精舍)라고 이름하며 수도원처럼 설계한 숙박시설이 곧 완성되면, 밤하늘에 가득찬 별들과 아침의 물안개 속에 감긴 산속의 수목원인 이 사유원은 더욱 깊은 사유와 맑은 명상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왜관에는 그 유서 깊은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이 있습니다. 전에도 여러번 말씀드렸 듯이 이곳에 제가 설계한 피정의 집이 지금 한참 공사중에 있습니다. 세상의 경계 밖으로 스스로 나아가 홀로 머물고 다른 이가 되어 돌아오게 하는 피정을 위한 이 건축은, 평소 그러한 삶을 늘 꿈꾸었던 제게 각별합니다. 그래서, 내년 말이면 완성될 이곳과 사유원을 엮을 생각을 하다가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곳과 가까운 하양이라는 동네에 제가 5년전에 설계한 작은 교회당이 있습니다. 20평 남짓한 이 건축의 설계를 의뢰 받았던 그 당시 저는 영성을 주제로 특별한 순례길에 오른 때입니다. 로마에서 파리를 잇는 길에 있는 수도원들을 순례하는 이 여행을 마치고 ‘묵상’이라는 책도 결국 펴냈지요. 그 무렵에 설계한 이 하양무학로교회는 제 마음에 품고 있었던 영성의 건축에 대한 질문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뜻인 에클레시아, 즉 부름을 받은 자, 이들이 모인 공동체를 위한 공간인 교회당이라는 본질적 명제를 해결하느라 이 건축은 건축비도 부족했지만 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지어야 했습니다. 간결한 구조에 모든 재료를 벽돌로만 쓴 이 소박하고 엄정한 공간, 여기에 가만히 앉아 눈물을 흘리는 방문자도 여럿 목격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폴 발레리는 명료한 만큼 신비로운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 까닭일겝니다.

하양에서 한시간을 차로 내려가면 밀양의 명례성지가 있습니다. 낙동강변 언덕 위의 이 성지는 구한말 병인박해 때 신앙을 지키느라 순교한 신석복 마르코를 기리는 곳입니다. 오래전부터 한옥으로 된 작은 성당이 있는 곳인데 마산교구에서 이 언덕 전체를 성역화하기로 하면서 이 일을 주도하시던 이제민신부님이 저로 하여금 설계를 맡게 하였습니다. 7천평 가까운 면적의 언덕 전체를 성지화하기 위해 기존 집의 필지들을 14처의 장소로 만들어 전 지역을 순환하게 한 마스터플랜에 기념성당을 비롯한 사제관 수녀원 방문자의 집 등 여러가지 시설을 배치하며 그리고 전체를 ‘성서적 풍경(Biblical Landscape)’이라 이름했습니다. 현재는 기념성당만 완공되어 있지만 마스터플랜대로만 다 된다면 세계 어느 성지보다 더욱 감동적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강변의 기념성당만으로도 순교라는 절대적 평화에 이르는 절박함을 공감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속절없는 삶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명례성지가 면한 낙동강 건너편에는 봉화산이 있는데 그 너머가 바로 노무현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입니다. 제가 그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었지요. 저 높은 곳에 묻히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 제가 평지의 땅을 고르고 광장적 묘역으로 만들었습니다. 늘 경계 밖으로 자신을 던지시던 대통령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파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때 이곳에 와서 서성이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곳이라고 여기며 돌아가신 지 1년후에 완성했습니다. 실제로 한해에 무려 백만명의 방문객들이 온다고 하는데, 처음 오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러 번 오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묘역 건너편에 대통령기념관을 지었는데, 여기 역시 건축의 형태보다는 풍경을 만들기로 하고 땅을 들어올리고 그 속에 전시시설을 두었습니다. 밖으로는 사저를 향한 경사진 광장에 작은 건축들이 솟아 오르게 하고 이 모두를 ‘일어서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노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이후 13년간 대장정이 끝을 맺습니다. 거짓과 탐욕이 난무하는 현실과 마주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경계 밖으로 잠시라도 추방하여 우리의 선함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풍경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어떠십니까? 이만하면 이들을 묶어서 둘러보실만 하지 않은가요?  마침 부산에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구덕교회가 있는데, 15년전에 그 선한 기억을 담아 제가 설계하고 새롭게 지었으니, 저 때문이라도 한번쯤 방문하실 수도 있을겝니다. 그래서 사유원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지도를 그렸습니다. 그 여정에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이며, 작은 도시 같은 구조로 된 통도사도 있어 불교건축에 대한 이해와 그 건축에 스며있는 영성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통도사를 품는 산의 이름 또한 영축산이지요. 또한 제 건축의 중요한 텍스트 중의 하나가 안강에 있는 독락당(獨樂堂)입니다. 선비가 홀로 머물며 세상의 부질없는 권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이 아름다운 고독의 집까지 연결하게 되면, 4백킬로에 이르는 순례길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는 이 길을 ‘영성의 지도’라고 이름하며 이미 여러 사람들과 다니고도 있습니다. 한번 떠나시지 않겠습니까? 종파와 정파, 탐욕과 분노를 떠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