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꽃을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앙일보 사회

2011. 8. 24

어떤 곳을 여행할 때, 그 장소의 면적이나 크기에 대한 감각이 있으면 그 현실을 훨씬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예컨대, 나는 우리나라의 면적이나 서울의 크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사는 집이나 일하는 사무실의 치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안다. 지구 둘레나 지구의 면적까지 알고 있으니 지나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치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공간과 위치에 대한 감각을 인식한다는 말이어서 어느 곳을 가든지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게 된다.

몽골에 갔을 때다. 몽골은 면적이-내 방식으로 따지자면-4천7백4십억 평이나 되어 한반도의 7배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인구가 불과 2백7십만 명이라 우리나라 남북한 총인구 7천2백만 명의 4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의 면적은 1억4천만 평으로 2억 평의 서울보다 크게 작지는 않은데 전체인구의 반이 산다고 했다. 그러니 나머지 백 수십만 명에 불과한 인구가 5천억 평에 가까운 면적에 살고 있어 평균적으로 따지면 1인당 거의 4십만 평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경우 한 사람당 8백 평 꼴이니 상상해 보시라.

이 몽골에 20년 넘게 일년에도 몇 차례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있다. 대구에서 철강사업을 하는 유재성회장이라는 분인데, 그 멀건 곳에 왜 그렇게 자주 다니는 지를 알지 못했다. 드디어 6년 전에 몽골로 나를 처음 초대하였다. 몽골의 초원은 생각보다 광활했다. 한참을 달려야 양과 염소 떼를 기르는 가족이 사는 게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한 가족이 관리하는 영역이 어림잡아 1천만 평의 넓이 쯤으로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대대손손 한 지점에서만 고독한 삶을 사는 저들은 이 자연과 가축의 관리자적 사명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닐까

그곳에서 유회장으로부터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몽골의 초원은 겨울이 워낙 길어 눈이 쌓이면 5월이 되어야 녹는다고 했다. 초원의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에게는 재앙의 기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눈이 오기 전 풀을 먹을 수 있는 한 먹어서 자기 몸을 3배 이상으로 불려놓는다. 그리곤 긴긴 겨울 동안 몸에 비축된 지방을 소진하며 버틴다는 것이다. 드디어 봄이 오면 동물의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는데, 그때 초원에 남아있는 눈을 들치고 나오는 최초의 풀은 약 성분이 있어 이 약초를 뜯어 먹으며 건강을 신속히 회복한다. 힘을 얻은 동물이 봄풀이 솟아 나오도록 언 땅을 헤집으면, 초원은 다시 온갖 풀과 야생화로 뒤덮이게 된다고 했다. 아, 이런 생명의 신비라니…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로 본 몽골의 광활한 초원은 그냥 초원이 아니었다. 그 원시적 적막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유회장이 자주 여기를 찾는 이유가 납득되었다.

지난 6월 유회장은 나와 건축가 몇 명을 그곳에 다시 초대했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초행이었다. 6월 말은 야생화가 가장 많이 피어있는 때였다. 동행한 조경가 정영선선생은 초원에 가득한 야생화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선생으로부터 꽃 이름을 들어 알게 되었다. 백리향, 양지꽃, 물매화, 말나리, 미나리아제비, 할미꽃, 앵초, 엉겅퀴, 원추리가 십만 평 백만 평의 단위로 펼쳐져 있었다. 어떤 꽃은 한국에서 비싸기도 하지만 구하기도 힘든데 여기에는 지천이라고 놀라워했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들판은 푸르게 되었다가 백색으로 뒤덮였다가 붉은 꽃이 다시 올라와 물들이는 등, 초원에서 전개되는 꽃들간의 생태적 드라마를 들으면서 그 놀라운 섭리와 질서에 대해 우리 모두 말을 잃었다. 신의 정원이었으며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건축은 여기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풍경을 보는 게 여행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크게 깨달은 게 있었다. 꽃 이름을 아는 게 그 꽃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 속에 내재된 자연의 질서를 깨닫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면 그 꽃을 다시 보았고 더욱 아름다웠다.

나는 다음 주 개막을 앞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일을 맡아 한달 전부터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상황과 전시성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내 몸은 이미 지쳐있다. 이런 나를 위로하는 게 있다. 광주지역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붉은 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곳은 산이며 계곡이며 온통 다 붉다. 배롱나무가 가로수로도 쓰일 정도이다. 그야말로 ‘천지 삐까리’다. 비엔날레의 성공여부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백일의 생명이 다하면 사라질 저 붉은 꽃을 보는 일이 내겐 지금 당장 더 급한 일 아닌가. 광주로 오시라. 오늘 배롱나무 붉은 꽃을 보는 일이 우리 삶의 윤택함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덧붙이자면, 광주는 그 크기와 인구가 울란바타르와 거의 똑 같다.